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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ylin Jun 23. 2020

작은 식당 창업기

창업, 그 거창함 속에 담긴 소소한 일상 2

가게를 인수한 지 딱 6개월이 지났다. 6개월 동안 어땠냐고? 말해 뭐해 굳이 놀이동산에 놀러 가서 돈 쓸 필요 없이 하루하루가 롤러코스터였지. 관할 세무서에 사업자 등록을 하러 간 날, 대표자란에 내 이름 석자가 적힌 사업자 등록증을 받고 한참을 그곳에 앉아 들여다보았다. 100g도 채 되지 않는 그 종이가 참으로 무겁다고 생각했다. 막 인쇄된 따끈따끈한 사업자 등록증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좋은 구도를 잡아 사진도 찍어 주변 사람들에게 '드디어 끝났다.'라는 메시지와 함께 전송했었다. 끝이라니... 그건 시작이었지.


나는 회사라는 안정적인 수입처를 떨쳐버릴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평일에 가게를 맡아서 운영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었다. 일단 구인 공고를 올리기 전 주변부터 둘러보기 시작했다. 때 마침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던 내 동갑내기 사촌이 떠올랐고, 그녀는 선뜻 내 제안에 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모든 일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막힘없이 여기까지 왔고, 이제 바뀐 새 대표자 이름으로 영업만 시작하면 된다고.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생각지 못했던 난관은 곳곳에 있었다. 하루 이틀 정도면 업무 인수인계를 마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내 판단은 처음 배우는 사람의 상태를 전혀 고려치 않은 오만하고도 섣부른 생각이었다. 적어도 나 없이 가게가 운영되기 위해서는 일주일의 시간이 더 필요해 보였고 오픈은 결국 내 예상보다 일주일 후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오픈이 보류된 그 일주일 간 내 감정은 하루에도 열두 번, 아니 적어도 만 이천 번쯤은 요동을 쳐댔다.


가게 문을 다시 열고 나서도 문제는 곳곳에서 터졌다. 생각보다 내 컨펌을 요하는 사항들이 많았고, 나는 거기에 없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받으러 회사 자리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들고 종종걸음으로 나가야 했고, 점심시간은 못 다 한 다른 사항을 처리하느라 굶기 일쑤였다. 퇴근하고 나서는 가게에 가서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놔야 했고, 그렇게 모든 게 그나마 안정적으로 자리잡기까지 두 달여 간이 흘렀다. 친구 중 하나는 나의 이런 모습을 보더니 인생의 에너지가 100이라면 본인은 한 6,70 정도를 살고 있고, 그 나머지 3,40은 내가 대신 살아주는 거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그녀의 말처럼 허투루 보내는 시간을 용납하지 못할 만큼 그때 나는 무척이나 바빴고 하루가 끝나면 전소된 상태로 기절하듯 잠들곤 했다.


내 취미 중 하나는 달리기인데 봄이 되면 좋은 날씨를 동기부여 삼아 하프마라톤에 도전하기도 한다. 한 시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21.0975km를 뛰고 나면 주변 사람들은 그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쉬지 않고 뛰냐고 묻고들 한다. 어떻게 뛰냐고? 그냥 뛰는 거다. 그저 결승점을 향해 말이다. 가게를 다시 열고 하루하루 130%의 에너지로 쪼개 사는 동안 다들 대단하다는 말과 함께 걱정의 말들을 건넸다. 하지만 나는 그때 그들의 염려와 걱정이 의아했다. 나는 그저 조금 바쁘게 살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태풍과 같은 그 시간들이 지나고 나니 당시 조금은 무뎌졌던 나의 태도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게 아닐까 싶다. 삶의 힘든 순간들이 닥쳐올 때 때로는 무덤덤하게 그 순간을 지나쳐도 되지 않을까. 긴 여정을 달리다 보면 내가 달리고 있다는 것을 자각 하는 순간 남은 여정이 너무 길게 느껴져 페이스를 잃고만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매 순간을 모두 정면으로 맞이하기엔 우리는 너무 작고 연약하지 않은가. 때론 그냥 흘려보내야 하는 순간들도 있다. 일단 달려보자 결승점은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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