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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형 Feb 28. 2022

적폐 청산 재판 추적기(2) 밤의 집회에서 혼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제2화 밤의 집회에서 혼자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홍상수<밤의 해변에서 혼자>





수사관 X는 2010년경 서울 종로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이하 지능팀) 소속이었다. 


수사관 X는 힘든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는 성격이 아니었다. 요청을 받으면 자기 이름부터 올렸다. 


그가 스폴(SPOL) 팀에 가입한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전화를 받았고 영어로 뭐라 하는데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들어보니 꽤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었다. 


“내 이름 넣어라.”  


수사관 X는 법정에서 조현오 청장을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분’이라고 분명하게 밝혔다. 



검찰은 수사관 X가 ‘틱스님’이라는 아이디로 댓글을 다수 작성했다고 말했다. 


집회 시위자를 비난하여 시위 동력을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었다. 


이는 조현오 청장 지시를 따른 것이고 더 나아가 이명박 대통령 국정 방향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노컷뉴스 인용


그런데 틱스님은 자발적 댓글이었다고 주장했다. 수사부서는 ‘댓글 평가’ 자체가 없다고 덧붙였다. 




틱스님이 속한 지능팀은 집회 관련 수사도 담당한다. 2010년은 집회시위가 끊이지 않았다. 


집회가 격렬해져 체포 상황이 발생하기 전까지 현장에서 대기하는 동안에는 여유가 있다. 


동영상을 보기도 하고 기사를 읽고 심심풀이로 댓글을 쓰기도 한다. 시위가 밤을 넘겨 진행되면 지능팀 수사관도 야외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2011년 6월 대학생 반값 등록금 시위 때도 현장에 있었다. 


대기 중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는데 검경 수사권 조정 논란이 한창이었다. 틱스님은 한 뉴스에 댓글을 달았다.

 

<조삼모사, 검찰의 보복이 무서운 것인지! 경찰이 힘이 없는 건지! 나 원 참! 검찰 개혁한다는 말은 몇 년 전부터 들었지만...... 나미 아미타불> (수사권 옹호 범죄 댓글) 


집회가 격렬해지면서 불법 행위자가 나오자 현장에서 체포를 진행한다. 수갑을 채우자 시위대는 경찰에게 항의한다. ‘인권 침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틱스님은 자기 집에서 도둑을 잡으면 수갑을 채우지 않고 친절하게 안내하라는 말인가 묻고 싶지만 묵묵히 할 일만 했다.

 

김주완 블로그 제공



시위대는 ‘폭력 경찰’ 구호를 반복한다. 오히려 맞는 쪽은 경찰인데 말이다. 틱스님은 집회에서 받은 짜증을 댓글로 풀었다.

 

<차 밀려 죽겠는데 너희들 뭐 하는 짓이야? 니네 집 앞에서 해라.> (집회시위 비난 댓글) 


반값 등록금 시위에 대학생이 몰려나왔다. 몇몇 취한 듯한 대학생은 욕설을 쏟아냈다. 틱스님은 또 댓글을 달았다. 


<등록금 비싼 것 사실임. 나도 대학생 곧 생김. 그래서 집회 현장 갔더니 인신 비난에 입에 담지 못 할 저질 언행...... 매우 중요한 정책의 장임에도, 이런 저질 난장판이 없었습니다. 목적이 모욕인지 등록금인지. 대학생인지 주정뱅이 싸움장인지 헷갈립니다.>(집회시위 비난 댓글) 


당시 틱스님은 그때 상황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10년이 흐르면서 사회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사건(대한항공 땅콩 회향 사건)이 벌어지고, 문제 행위를 규정할 개념과 용어가 생겨난다. 


방송 화면 캡처


틱스님은 법정에서 2011년 전후로 감정적인 댓글을 올린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집회 현장에서는 경찰이 ‘을’이었거든요. ‘아주 처참한 을!’. 그 사람들로부터 당한 갑질, 지금 말하면 갑질이지요. 그리고 또 다른 경찰관들이 당하는 상황을 봤을 때 당장 내 눈앞에서 보이는 저 짜증 나는 상황, 저 갑질을 보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올렸다.”   



필자는 지금 이 사건이 터무니없는 수사였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다만 이런 점이 의문이다.  


이 사건은 2010년 8월에서 2012년 4월 사이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조현오가 서울지방경찰청장과 경찰청장을 지낸 시절이다. 


당시 모든 서울지역 일선 경찰서에는 스폴팀원이 있었다.  


서울강북경찰서도 예외일 수 없다. 2010년 6월 채수창 서울강북서장이 조현오 식 ‘성과주의’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댓글 공작 활동 언급은 없었다.  


노컷뉴스 인용


경찰 댓글 공작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주제는 ‘수사권 조정’이었다. 경찰청이 주도한 이 작업은 전체 범죄 댓글 중 20%를 차지했다. 


2011년 6월 황정인 경찰청 경정은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수사권 조정 합의를 주도한 조현오 청장을 거세게 비난했다. 


한겨레 기사


하지만 이 인터뷰에서도 댓글 작업 관련 언급은 없다. 조현오에게 큰 약점이 될 사건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  




물론 댓글 공작은 이들 언급 여부와 상관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지난 10여 년간 아무런 소문도 없이 묻힐 수 있었을까? 


혹시 경찰 조직 명령체계를 살펴보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조현오 청장은 와일드애니멀이나 틱스님 둘 다 알지 못한다. 따라서 이런 일선 직원에게 명령을 전달하려면 체계가 있어야 한다. 즉 조현오에게는 공모자가 필요하다. 


공모자를 알아내려면 일선 직원부터 조사해야 한다. 하기 싫었는데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했다는 진술이 쌓인다. 이들을 피해자라고 부른다. 


아시아투데이 인용



이러한 피해자가 누구에게 명령을 받았는지 선을 타고 올라간다. 


경찰청 정보국 조직도를 살펴보자. 조현오 경찰청장 아래로 차장-정보국장-정보심의관-정보2과장-계장 순서다. 


경찰청은 실무가 계장 중심으로 돌아간다. 서로 각기 다른 기능을 맡은 계장끼리 스스로 협조하고 판단하는 부분까지 상급자가 신경 쓸 틈이 없다. 


하지만 댓글 공작 지시라면 윗선에서 계장까지 내려왔을 것이다.  


MBN 방송 인용


전에 모시던 상사를 데려다가 강도 높게 다그치는 수사는 어느 조직이든 재미도 없거니와 쉽지도 않다. 


한마디로 경찰 조직을 들쑤실 수사를 하지 않는 한 밝히기 어렵다. 


강도 높은 적폐 청산을 주문한 청와대와 특별수사팀을 구성해 경찰 조직 기강을 바로 세우겠다는 이철성·민갑룡 경찰청장 의지가 받쳐 줘야 한다. 


민갑룡(좌)-이철성(우) 경찰청장. 뉴스1 인용



여기서 조현오 청장과 스폴팀 운영 공모자로 걸려든 이는 당시 정용선 정보심의관이다. 




정용선은 경찰대 3기 수석 졸업생으로, 필자도 조현오로부터 정용선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2015년 1월 9일 권기선 부산경찰청장이 사과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고서를 늦게 제출한 과장에게 욕설을 한 게 문제가 됐다. 


MBN방송 인용



상사는 직원 업무 능력을 어떻게 파악할까. 조현오는 업무 관련 질문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 업무를 어느 정도 꿰고 있는지 안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조현오가 보기에 정용선은 업무 능력이 탁월했다. 청장이 바뀌어도 정용선이 늘 승승장구한 이유다. 


물론 정용선이 상사 취향을 잘 맞추기도 했을 테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상사 댓글 취향까지 추가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용선 심의관은 언제 어느 시점에 만나서 조현오 청장 댓글 지시에 ‘무조건 따봉’이라고 외쳤을까?  


첫 번째 가능성은 오전 8시 전, 경찰청장 보고 시간이다. 


7시 50분쯤 경찰청장 집무실 앞은 보고를 앞둔 과장들이 줄을 서 있다. 본청 과장은 총 45명 정도 되기 때문에 보고뿐만 아니라 결재도 오전에 받는다. 아침에 많을 때는 20~30명이 대기한다. 


뉴시스 인용

 


조현오는 중요한 사안이 아니면 오전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명했다. 하지만 과장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자주 봐야 정이 쌓이고 눈도장도 찍는다. 승진이나 좋은 보직을 위해서는 사소한 보고라도 들고 가야 한다. 


과장 보고가 끝나면 맨 마지막 정보심의관 보고가 기다린다. 정보심의관이 마지막 순번인 것도 관행이다. 


바로 이때 조현오가 정용선에게 이슈를 정해주고 댓글 지시를 내렸다는 진술이 나왔다. 정용선이 청장 보고 후 다시 사무실에 들러서 계장에게 사이버 대응 지시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에 정용선은 이렇게 답했다. 


“시간도 안 되고, 말도 안 되고, 예의도 아니고…” 




이유는 이렇다. 정보심의관 보고가 끝나면 바로 8시 30분 경찰청장 주재 국관회의가 시작된다. 


노컷뉴스 인용


회의실은 경찰청장 직무실 바로 옆에 있다. 그곳에는 이미 국장과 주요 과장이 앉아 회의를 기다리고 있다. 보고가 끝난 정보심의관이 바로 국관회의실 안에 들어간다. 그리고 바로 청장이 입장한다. 




두 번째 댓글 지시 가능성은 바로 국관회의를 통해서다. 


회의에는 각 국장들이 그날 그 주에 해야 할 일이나 문제가 된 사안을 청장에게 순차적으로 보고한다. 


연합뉴스 인용


청장은 보고한 사안에 대해서 그렇게 하라는 취지로 말한다. 이어 차장이 당부 사항이 있으면 말을 하고 마친다. 국관회의에는 기획조정과 직원도 참석한다. 그날 청장 발언을 기록해 경찰 내부망에 공유한다. 


이 내용은 현직 경찰관은 누구나 조회할 수 있다. 이 기록은 모두 남아 있는데 여기에 정보심의관에게 지시한 내용은 없다.  




마지막은 따로 불러서 은밀히 지시하는 것이다. 


이는 모두 불가능하다고 했다. 공문과 지시가 서로 다르면 13만 경찰 조직을 이끌 수 없다. 


국관회의에서 청장 지시 사항을 받고 국장회의, 과장 회의, 계장과 실무진 회의를 통해서 각 기능 업무를 진행한다. 한 마디로 경찰은 시스템에 의해서 운영되는 조직이다.  


경찰청 주요 실무진은 계장이다. 당연히 댓글 업무 실무도 계장이 담당한다. 그러나 당시 정보국 계장 진술을 보면 정용선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익명의 댓글 대응과 관련해서. 제가 지금도 정확히 기억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어떤 이슈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가족들도 댓글을 달수도 있지 않느냐고 말씀하시기에 ”업무적인 지시에 가족까지 끌어들이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라고 문제 제기했던 기억은 난다. 가족들에게 댓글을 달라는 말이 무슨 말이겠는가. 경찰관임을 밝히지 않고 일반인이 마치 경찰에 우호적인 댓글을 작성하고 있는 그런 의미인 것이지요.” 


반면 정용선은 이렇게 기억했다. 


“그때 인터넷에서 수사권 관련해서 <옳다/아니다.>라는 라이브폴(Live Poll)이 있었어요. 계장들 다 잔뜩 있는 자리에서 어떤 계장이 “그거 했다.”라고 하니까 다른 계장이 “나도 했다.” “나도 찬성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해서 제가 농담조로 “너는 가족도 없냐. 가족 이름으로 한 명 더 하면 되지”라고 말했던 거죠. 왜냐하면 (live poll은) 실명으로 하기에 한 번 밖에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농담조로 “너는 가족도 없냐.”식으로 이야기를 한 것이 저렇게 잘못 기억하고 있거나 와전된 게 아닌가.. " 


이처럼 10년 전 기억은 서로 어긋나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당시 공문 내용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청 특별수사단은 압수수색을 통해 문서를 잔뜩 파헤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인용



한편 퇴직한 정용선도 다시 업무를 재개했다. 


(다음 3화. 참여정부가 댓글에 빠진 날)  







위 제목은 홍상수 감독 영화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서 차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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