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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JO Sep 01. 2022

보말의 맛

 

8월 보말의 맛과 낮잠 


새벽 5시 서울에서는 중요한 촬영이 있으면 모를까 절대 일어나지 않는 시간 

새소리와 기분 좋은 바람에 절로 눈이 떠진다.


까똑! 지은 씨 간조시간에 보말 따러갈래요? 

배울 것이 많은 이웃의 귀여운 카톡  선크림만 바르고 서투른 운전대를 잡아본다


늘 보조석이나 뒷좌석에서 대본을 읽고, 모자란 잠을 보충하느라 운전대를 잡아본 적이 없었다.

'쓸모없는 인간...'  안개 낀 새벽, 차사고가 났었다. 이후 , 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운전대를 잡는 것이 두려웠지만 언제까지 두려움에 도망 다니는 인간이 될 것인가!  나의 똑똑한 개를 위해서라도 운전을 해야 한다. 나를 위한 삶에서 누군가를 보호하는 삶에서 잃어버린 찐 웃음을 찾을 수 있다니, 이기적인 인간도 갱생의 여지가 있다!  


제주의 8월 금어기이다. 동네 아름다운 포구엔 아직 생태계가 버텨주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8월 아기 물살이들과 뿔소라가 무럭무럭 자라나는 중이다.  주먹만 한 보말들이 나를 잡아가라고 꿈지럭거린다. 손이 느린 나도 보말들을 배 터지게 먹을 만큼 담았다. 땀이 나 자연이 만든 천연 수영장에 몸을 담갔다. 나도 씻고 보말도 씻었다. 그대로 다정한 이웃의 집에 가 보말 찜을 배워본다.

 아침시간이지만 화이트 와인도 꺼냈다.  소금기만 씻은 보말을 뜨거운 물에 약 5분간 넣었다 뺏다. 다정한 이웃은 원래 찌는 게 맛있다는 꿀팁을 주기도 했다. 보말을 바늘로 꺼내 초고추장에 찍어먹었다. 아침시간이지만 화이트 와인 한 병 다 먹게 만드는 맛이었다. 아 제주의 여름을 먹는다는 말이 이런 건가!. 주먹만 한 보말은 뿔소라보다 고소하고 짭짤한 것이  쇼비뇽 블랑과 참으로 설레는 조합이 아닐 수 없다. 디저트로는 아기 궁둥이 같은 귀한 복숭아도 한입 먹었다.

제철 보말 우리 개도 웃게 해

밖엔 수영복과 숄이 마르고 있고, 강아지들은 공놀이를 한다. 여름방학이다. 다정한 이웃은 여름방학 할머니 집에 가면 할머니가 이렇게 제철음식을 해주셨고, 아빠는 바다만 보면 바지를 벗고 그냥 바다로 들어가 어린아이처럼 놀았다는데 그땐 창피했지만 지금은 꼭 그게 본인 같다며 ,  어렸을 적 얘기를 해주며, 어린아이가 된 듯이 웃었다. 나도 상상이가 같이 웃었다. 



어릴 적 , 아빠의 고향은 위도였다 전라북도 부안군 위도 , 아빠의 집 근처에는 갯벌이 있었고, 우린 여름방학이면 갯벌에서 무언가를 잡진 못했지만 아무튼 갯벌에서 놀았고, 바다에서 튜브를 타고 놀다가  거친 파도에 튜브가 뒤집어져 아빠가 어린 나를 건져 올려 주었던 기억이 난다.  

꼬르륵 거리는 중력이 반대인  바닷속 그 물속 세상 


가끔 물속이 더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 고요함. 시간이 멈춘다면 그때 그 물속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다. 

어떤 파도가 쳐도 아빠가 건져줄 테니. 더 깊은 물속으로 , 가도 안전하다는 걸,  이젠 안다.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가져와  진정한 공포의 공간이라는 파트를 읽다가 잠이 들었다. 

과도한 자기 확신이 낳은 처참한 결말과 과욕 과신이 부른 슬픈 참사를 읽으며, 나의 치기 어리고 어리석었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 낮잠을 참으로 맛있게 잤다. 아 달다.  다정한 이웃은 소음이 날까 봐 설거지도 미룬 채 남편과 통화를 하며 웃는다. 통화소리가 듣기가 좋아서, 계속 들으며 누워있었다. 책을 읽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다 선셋 시간에 맞춰 천연 수영장으로 향했다. 

자연이 만든 천연 수영장


만조시간이다 파도가 넘어와 맨몸수영을 못하는 사람은 들어와 수영할 수 없는 곳이다. 핑크빛 바다에서 수영하는 기쁨을 어떠한 단어로도 표현할 수 없지만, 황홀하다는 단어가 딱인 것 같다.


무엇을 해야 하나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것인가에 나는 어떤 존재지?라는 고민 따위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쓸모없어도 된다. 난 자연 안에 바다 안에서 유영하는 존재다. 그걸로도 충분하구나. 


다 큰 성인 두 명은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살구빛 바다가 핑크가 될 때까지 깔깔깔 거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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