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이 예술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오랜 시간 동안 게임계와 예술계 모두에게 아주 흥미롭고, 논쟁적인 주제였다. 이에 미술관에서 전시의 형태로 선보이는 게임에 대해 알아보고 실제 전시 사례(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전시되었던 2개의 사례 중심으로)를 살펴보며 과연 게임이 ‘예술’로서의 가치를 어떻게 이어갈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개념과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인간의 ‘이야기’는 노래로 불리고, 말로 전개되며, 글로 남겨진다. 그렇게 인류는 ‘예술적 행위(대상에게 감흥을 전달하는 노래, 글쓰기, 신체 표현 등)’를 함으로 ‘예술’을 탄생시킨다. 그런 이유로, 인간이 유·무형적으로 만들어내는 대부분은 편견 없이 ‘예술 작품’이 된다.
이러한 행위를 독창적이고, 인상적으로 표현하여(이것의 인정 및 정의는 시대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멋진 미(美)로 성취한 사람을 ‘예술가’라고 칭한다. 예술가의 지위는 누군가가 부여하거나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즉, 우리 모두가 예술가이고, 예술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단지 ‘좋은 예술’과 ‘부족한 예술’, 혹은 ‘예술성이 떨어지는’ 결과물만이 존재할 뿐이다.
인간이 ‘예술’을 만들어 내는 방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진화해 왔다. 여기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종’의 진화 방식과는 다른 패러다임이 존재한다. ‘종’의 진화는 진화 후 앞의 ‘종’이 퇴화함으로 완성된다. 이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 호모 하빌리스 - 호모 에렉투스 -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 등등으로 이어지는 인류의 진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은 대체 성격을 지닌 예술이 등장하여도(이야기-> 가극-> 연극-> 영화 등의 예를 들 수 있다.) 그 예술 고유의 영역을 지키며 남아있고, 심지어는 스스로 ‘진화-확장’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또 다른 예술로 그 특성을 ‘파생-전이’한다는 특징 또한 가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소모적인 논쟁인 ‘게임이 예술인가’라는 이야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것은 ‘예술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게임’이라는 형식으로 표현되는 ‘예술’이 어떻게 미술관에 전시되었는지를 두 가지 사례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플로렌스(Florence)는 2018년 마운틴 스튜디오 (Mountains studio)에서 개발하고, 안나푸르나 인터렉티브(Annapurna Interactive)에서 발매한 모바일 게임이다. 만화와 웹 코믹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이 게임은 마치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듯 전개되는데, 게임과 영화, 애니메이션의 장점을 두루 가진 새로운 형태의 예술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2019년 3월에 열렸던 《안 봐도 사는 데 지장 없는 전시; Unnecessary Exhibition In Life》는 하루 24시간 동안 무의미하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이 ‘예술’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그래서 그것이 내 삶에 무슨 영향을 미치는지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획되었다. 마운틴 스튜디오의 플로렌스가 전시에 참여하게 된 이유는 게임 역시 우리 생활의 일부분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되었고, 전술한 내용과 마찬가지로 게임을 체험하고 몰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예술적 심상’이야말로 새 시대에 걸맞은 ‘예술 경험’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여주인공 플로렌스는 우연히 거리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크리시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들의 풋풋한 첫 만남부터 사랑의 설렘, 소소한 다툼, 그리고 이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드래그와 터치 등 단순한 조작으로 구성된 단편 미니게임들로 진행되는데, 간단하게 반복되는 조작이지만 설명을 최소화하여 감상자들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함으로써 몰입감을 최대화하고, 일러스트로 채워진 장면 속에서 저마다의 경험을 끌어와 각기 다른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전시장에선 관람객들이 간단하게 게임을 경험할 수 있게 하려고, 게임의 주된 컬러링을 도입했다. 이는 관람객들이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게임 속의 한 주인공으로 ‘몰입’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굳이 게임을 실행해 보려 하지 않으려는(많은 관람객들이 이와 같다) 분들을 위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게임의 플레이 화면을 챕터별로 나누어 상영하였다. ‘플로렌스’는 장면 장면마다 미감이 너무나 좋았기에, 그 자체로도 훌륭한 예술적 감흥을 가져다주었다.
한편에 소개된 작품의 작업 과정 및 기초 스케치들은 다소 생소하게 보일(게임을 낯설어하는 대상에겐) 관람객들에게 보다 흥미롭게 새 시대의 예술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렇게 게임을 독자적으로 전시하는 것이 아닌, 기존의 미술작업들과 함께 나란히 큐레이션 하는 사례는 흔치 않았기 때문인지 많은 관람객들이 흥미롭게 작품을 감상했고, 게임도 예술이라는 명제에 큰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듯 보였다.
2021년 9월에 시작한 《연애의 온도 2-다시 사랑한다 말할까》에는 라이트닝 로드 게임즈가 ‘어 폴드 아파트’라는 게임으로 참여하고 있다. 마운틴 스튜디오의 ‘플로렌스’ 때만큼 대대적으로는 아니지만, 다른 작품들과 더불어 위화감 없이 관람객들을 만나고 있다. 전시 제의를 받은 라이트닝 로드 게임즈도 대단히 기뻐하며 적극적으로 전시에 참여해 주었다. 기간상 구현되지 못했지만, 라이트닝 로드 게임즈는 전시를 위한 종이접기 참여도구 제공으로 관람객들이 더욱 능동적으로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애써 주었다.
‘어 폴드 아파트’의 전시 방식 역시 챕터별 실행화면과 목업 스케치, 그리고 전반적인 영상물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번 전시의 특성상 너무 큰 공간을 할애하지 않고 다른 작가와 균등하게 공간을 배정했으며, 이전 전시보다 더 ‘특별하지 않게’ 디스플레이하고자 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그만큼 게임을 더 이상 ‘새로운’, 혹은 ‘낯설지만 최신의’ 시선으로 보여주기 싫었고, 그냥 공간 속에 덤덤하게 다른 작업들(특히 이번 전시에는 애니메이션, 일러스트레이션도 다수 출품되었다)과 섞여서 보여주길 바랐다.
‘어 폴드 아파트’는 장거리 연애 중인 두 사람이 서로의 애틋한 마음을 전달하고 확인하는 게임인데, 그 과정을 화면을 접는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풀어내어 신선한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종이를 접는’ 행위는 관람자(혹은 플레이어)에게 단순한 인터페이스를 제안하여 누구나 부담 없이 게임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며, 동시에 마음을 ‘접어’ 보내거나 마음을 ‘정리’한다는 중의적인 감정을 전달해주고 있다.
이렇게 단순하게 접근해서 의미를 곱씹을 수 있게 되어 있는 구조 설계는 아티스트가 바라는 의미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부담감 없이 받아들이게 도와준다.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체험형 전시-이머시브 아트’ 역시 이러한 지점에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게임’은 이러한 이머시브 아트의 ‘직관적 인터렉티브’를 넘어 이야기와 의미를 관람객들로 하여금 깊숙이 전달받게 하는 아주 훌륭한 예술 경험 크리에이트 툴이 될 것이다.
게임이 끝나고 나면 해냈다는 뿌듯함보다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은 여운과 함께, 그 게임의 이야기 속에서 어느덧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돌아보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이는 다른 예술(책, 회화, 영화….)들이 주는 감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수용방식과 감상의 형식이 다를 뿐, 그것이 주는 ‘예술 경험’은 동일하다. 수용방식과 감상의 형식이 달라진 건, 단지 기술의 발전에 의한 매체의 변화뿐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상자의 ‘진화’에 발맞춘 것이라 생각한다. ‘체험’하고 ‘경험’을 공유하길 더 좋아하는 새로운 ‘예술 감상자’들에 맞춰 새 예술이 ‘게임’이라는 날개를 달고 멀리 비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게임이야말로 책, 음악, 영화, 회화, 뮤지컬까지 모든 장르의 예술을 아우르는 진짜 ‘종합예술’이다.
글
석파정 서울미술관 학예연구실장
2021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2015-2021(현재) 석파정 서울미술관 학예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