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게임이용 접근권 향상과 관련하여 -
들어가며
게임은 전 국민에게 외부활동이 줄어든 작금의 상황에서 즐길 수 있는 보편적 놀이가 되었다. 2020년 초부터 현재까지 코로나 19가 장기화함에 따라 외부활동과 신체활동이 줄어든 만큼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이들은 건강한 비장애인뿐이 아니라 장애가 있는 시민들도 포함된다. 게임을 즐기는 과정에서 사회화, 경제화 과정의 경험을 자연스레 느끼고 습득할 수 있는데, 이 게임이, 장애인들에게는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콘텐츠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 게임이용자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만10세~65세의 일반인 응답자들은 2020년 6월 이후 71.3%가 게임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국민 게임 이용율은 전년도 조사 결과 대비 0.8%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일반 국민들의 게임 이용이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장애인(2020년 12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은 2,633,026명)의 보편적 게임 이용 현황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바가 없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결과에서 디지털 정보화 접근 수준과 역량 수준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을 뿐, 게임 이용과 같이 구체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장애인과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접근 수준은 각각 평균 95.4%, 92.8%로 다른 취약계층과 비교했을 때 조금 낮은 수준이나 디지털 정보화 역량 수준은 여전히 취약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게임 접근성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이제 게임은 모든 시민들이 즐기는 보편적 콘텐츠 중 하나라는 관점에서, 유니버설 디자인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시민들은 비장애인, 장애인, 노인, 어른, 어린이, 외국인 등 다양한 계층과 문화권의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범용디자인’으로, 미국과 일본에서는 ‘보편적 디자인’(Universal Design), 북유럽에서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영국에서는 ‘인클루시브 디자인’(Inclusive Design)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이는 어떤 차별도 받지 않고 누구나 동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제품이나 환경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유니버설 디자인과 게임 산업 모두가 발달한 일본의 경우, 엑세서블 게이밍(Accessible Gaming)이란 테마로 신체장애인을 비롯하여 유니버설 디자인의 근본 취지대로 다양한 게임 이용에 제약을 받는 이들이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게임 디자인, 게임기, 주변기기 등에 게임 친화적이고 보편적인 게임 이용 환경을 만들어가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는 장애인 접근성 향상을 위한 정책을 발표했으며, 일본에서는 거동이 불편하거나 시청각 장애가 있는 이들도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이나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Xbox 공식 블로그를 통해 장애인 게임 이용과 관련하여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프로젝트는 모든 사람이 편하게 참여할 수 있는 커뮤니티 환경,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게임 디자인, Xbox 게임 및 서비스 전반에 걸쳐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신규 기능과 같이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처럼 해외의 대형 게임회사들은 다양한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접근성 문제 개선에 커다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 반면, 국내 게임회사들은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편적 게임 접근성 향상 토대 마련
그동안 국내에서 게임 이용이 증가하고 보편적 놀이문화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변화를 위한 수많은 노력이 있었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다. 장애인을 비롯한 보편적인 게임 이용을 위한 접근권 향상의 문제 역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전환을 필요로 한다.
게임 이외에 정보화 기기 활용을 위한 교육을 통해 정보화 격차를 해소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해서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전환된 모바일 환경, 무인 단말기 등의 UI, UX 설계 시 취약계층에 대한 고려가 이뤄지지 않은 채 개발 및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활동 인구 대부분이 스마트폰, 모바일 폰을 가지고 있지만, 그 기기를 가지고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큼 이용하느냐의 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 할 수 있다. 각자가 처한 상황, 위치에 따라 접근 정도가 다를 것이고, 그에 따른 역량 수준 차이는 더욱 크게 나타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6조에 의하면, 장애인, 고령자의 디지털 정보접근권 보장이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지능정보화 기본법」에서도 ‘과의존 관련 전문인력 양성’ 규정은 있으나 정보격차 해소를 위한 인력양성 규정은 없어 한정된 영역에서 인력양성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디지털 사회, 정보기기 이용과 관련하여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며 올바르게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가기보다는, 과의존이라는 시각에서의 접근과 그에 대한 해소 방안을 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6조(장애인ㆍ고령자 등의 지능정보서비스 접근 및 이용 보장)
① 국가기관등은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정보나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인·고령자 등이 웹사이트와 이동통신단말장치(「전파법」에 따라 할당받은 주파수를 사용하는 기간 통신역무를 이용하기 위하여 필요한 단말장치를 말한다. 이하 같다)에 설치되는 응용 소프트웨어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무선 정보통신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보장하여야 한다.
제53조(지능정보서비스 과의존 관련 전문인력 양성)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은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 지능정보서비스 과의존의 예방 및 해소와 관련된 전문인력 양성에 필요한 정책을 시행할 수 있다.
다행히 제21대 국회에서도 장애인의 게임물 접근성 향상을 위한 가이드라인 마련 및 게임물 관련 사업자가 이를 활용하도록 권고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되어 있다(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2021.04.20. 하태경 의원 대표 발의).
장애인의 게임이용 접근권에 대한 고민의 첫발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둘 수 있으나 실질인 개선을 기대하기에는 매우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보편적 게임 이용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장애를 지닌 다양한 이들에 대한 선행 조사, 연구, 그리고 이들을 위한 UI/UX 설계와 적용을 위한 고민의 시간과 그에 따르는 예산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한다. 개별 회사 입장에서 이를 위한 시간과 충분한 예산이 지원되지 않는 상황에서 치열한 경쟁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다양한 계층을 배려하는 노력을 하라고 강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법으로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전술한 바와 같이 개발 인력, 개발 기간의 한계 등의 제한을 정부에서 실질적으로 효과를 발휘할만한 수준에서 지원해주지 않는다면 이러한 문제는 해소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국외를 구분하지 않고 새로운 게임이 나와 경쟁을 벌이고 6개월 이내에 살아남지 못하면 도태되는 것이 현재 게임 산업의 현실이다. 보편적 게임이용을 위한 별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던 기존의 개발 관행에서 갑자기 다수가 아닌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사업 역량을 분산 시켜야 하는 현실에 대한 고려는 반드시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기존 게임의 변환이 이뤄지는 것을 기다리는 것보다 우선하여, 장애인들을 위한 기능성 게임을 보다 다양하게 제작하고 유통하는 방법이 게임 접근성을 높이기에 더욱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접근법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기능성 게임 제작 및 유통지원을 하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사업인 '기능성 게임 제작 지원사업'은 그 목적이 장애인들의 게임 접근권 향상을 위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목적의 전환, 확장을 통해 예산 활용, 사업 전환 내지는 확장을 꾀하는 것이 선결과제로 남는다. 그리고 위와 같은 접근은 본질적으로 장애인의 게임 이용 접근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 어렵다. 장애인들을 포함한 이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보편적으로 게임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것이 게임 이용 접근권이라 개념 정의할 수 있는데,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마찬가지로 ‘장벽 없이’ 다른 이들과 ‘함께’ 같은 게임을 즐기고픈 바람이 있는 것이다. 섣불리 기능성 게임 = 장애인용 게임이라는 낙인 속에 장애인들만이 즐기는 게임이라는 인식 속에 그들만을 소외시키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게임 접근성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한 다르면서도 같은 두 가지 방향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해 기존 게임을 컨버전 하는 방향, 다음으로는 보조기구를 통해 즐길 수 있게 하는 방향이다.
장애인들이 실질적으로 기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보조기구의 마련 및 보급을 위한 고려는 현실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이 일찌감치 도입된 미국의 경우는 이미 장애인을 위한 게임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나은 상황이다. 미국 크레이그병원(Craig Hospital)은 장애인과 함께 가장 적합한 게임 옵션과 게임보조 기기를 찾아주기도 한다.
미국과 비교하면 한참 부족하지만 국내에서도 진일보한 노력을 찾아볼 수 있다. 국립재활원에서도 기존 개발된 게임기(Xbox, PS4, Switch)에 장애인이 컨트롤러를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게임보조 기기(인터페이스)를 설치하여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하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나가며
국민 대다수는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남녀노소, 비장애인, 장애인 할 것 없이 게임을 디지털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야 할 미디어이자 콘텐츠로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과 함께 실제 접근하기 어려운 이들에 대한 고려의 필요성이 이전보다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보편적 게임 이용을 위해 생각해볼 수 있는 유니버설 디자인 개념은, 앞으로는 장애인이나 노인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개념을 넘어 모든 사람들의 다양한 특성과 전체 생애주기(生涯週期, life cycle)를 수용하는 토털 라이프 디자인(Total Life Design)의 개념으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국립재활원의 “‘같이 게임, 가치 게임’ 자조 모임”에 참석한 뇌병변장애인들은 게임을 통해 삶의 질이 높아지고,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졌으며, 향후 경제활동을 하고 싶은 꿈도 생겼다고 말한다.
게임을 즐김으로써 얻게 되는 긍정적 기능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손쉽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어쩌면 또 하나의 차별일 수도 있다. 게임이 주는 즐거움과 혜택을 경험하도록 하려면 우리 사회도 사회적 인식 전환과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 부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할 시점이라 생각한다. 게임을 만들고 유통하는 회사, 게임 관련 컨트롤러 등을 제작 유통하는 회사들과 국가가 함께 고민하고, 법으로 강제하고 채찍질하기보다는 실질적인 지원책을 모색하여 보편적 게임 이용이 가능한 토대를 만드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민간에서도 이와 같은 실질적 게임 이용 접근이 이뤄지도록 게임회사들의 주체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시민들이 차별 없이 보편적으로 게임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첫째, 사업 시행을 위한 적절한 예산과 둘째, 게임회사들이 협력할 수 있는 유인책 제시와 마지막으로 교육 프로그램 구성이 필요하리라 생각된다. 수혜의 대상, 시혜의 대상이 아닌 장애인들도 똑같은 시민으로서 바라보고,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뒤늦게나마 제공한다는 시각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부터는 유니버설 디자인이 약자를 배려하는 차원보다, 모두가 동등한 이용자라는 개념으로 보기 시작했고, 아울러 심리적으로 만족하며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 명료해졌다는 점에서도 위와 같은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누구나 게임을 즐기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글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
2021년 게임문화포럼 투고분과 위원
2021~현재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사무국장
2018~2021 한국게임정책자율기구 사무국장
2019~2021 청소년보호정책위원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