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크기도 색깔도 모두가 다른 집들이 줄지어 빽빽하게 자리했던 미로 같던 골목의 내가 살던 동네는 창문을 열면 옆집의 마당이 훤히 보였다. 끝없이 이어지던 계단의 끝에 위치했던 우리 집.
그 좁고 가파르던 계단을 단숨에 뛰어다니며 이 집 저 집 할 것 없이 그 동네의 아이들과 무리 지어 놀던 그때의 나는 골목대장 이자 말괄량이 었다.
그런 내가 집보다 더 좋아했던 장소가 하나 있었다. 골목 어귀 순하고 커다란 누렁이가 한 마리 살았다.
그곳에 있던 '누렁이 집'을 유독 좋아했던 나.
커다란 플라스틱 누렁이 집에 꼬질했던 담요 위에 누워 곧 잘 잤다. 나에게 집을 빼앗긴 누렁이는 그 앞에 쭈그리고 누워 나를 지켜줬다. 저녁 먹을 때가 되었는데도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으레 할머니는 그 집 마당에 있는 '누렁이 집'으로 나를 찾으러 오셨다.
"이 육시랄년! 또 여 와있네! 제골 하고 앉았네! 네가 개냐! 누렁이 너는 네 집 뺐는데 뭘 가만 섰어! 물어! 물어야 안기어오지! 누렁아! 물어라! 물어!"
하시며, 내 등을 기어코 한 대 때리셨다.
당시에 그 골목 모든 집들은 밤이 늦도록 대문이 열려 있었다. 어느 집에 누가 살고 뭐 하는지까지 모두가 알던 시절. 이 집이 내 집이고 저 집도 내 집이었던 그때의 그 골목. 처음에는 기겁을 하며 나를 집에 데려다주던 누렁이 주인 할머니도 반복되자 포기하셨는지 혀를 끌끌 차셨다. (기억 속 누렁이 할머니와 우리 할머닌 그다지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도 같다.)
한 번은 동네의 또래들을 다 이끌고 4차선 도로 건너편 동네까지 원정을 떠났다가 잡혀 들어온 일도 있었다. 너무 오래전의 일이라 왜 그 멀리까지 동네 아이들을 모두 이끌고 갔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날의 주동자 역시 나였음을 친정엄마가 나의 아이들을 앉혀두고 말씀해 주셔서 겨우 듬성듬성 기억이 떠올랐다.
"네 엄마의 무용담을 알려줄까? 얼마나 개구졌는지 말도 못 해! 가시나가 웬만한 사내 애들보다 더 난리였다!"
보통은 소란스럽던 그 골목이 수상쩍게 고요했고,
한참이 지나도 고요함이 지속되자 이상하게 생각하신 어른들이 한 명 두 명씩 나와 아이들을 찾기 시작하셨다. 저녁시간이 지났음에도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그제야 사태가 심각해짐을 아셨다고...
결국 경찰에 신고하셨고 한참 뒤 잡혀온 골목의 아이들과 나는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될 때까지 꾸중을 들어야 했다.
그 와중에 주동자가 나였음에 사색이 되어 동네의 어른들께 손이 발이 되도록 빌던 엄마가 씩씩거리며 집으로 들어와 세차게 대문을 닫고는 회초리를 들었다.
"너 이놈의 계집애 겁도 없이! 너 오늘 혼나봐"
겁에 질린 나는 할머니의 뒤로 단걸음에 뛰어 들어가 할머니의 치맛자락 안에 숨어버렸다.
화가 난 엄마도 어쩌지 못했던 할머니는
" 됐다 애미야! 저것두 놀랬는데 여서 더 혼내면 애 경기 일으킨다. 둬라! "
하시며, 치마 속에서 나를 끌어내서 마당 수돗가로 데려가 꼬질 해진 얼굴을 씻겨주셨다.
투박한 손길에서 느껴지던 따스했던 할머니의 감촉.
그러고는 요강을 깨끗하게 씻어 방에 들여놓고, 미리 깔아 둔 이불속으로 나를 이끌었다. 포근한 이불속에서 그날의 힘들었던 여정은 모두 잊고 금세 단 잠에 빠졌들었던 그날의 어린 나.
30년도 더 지난 지금 그 가팔랐던 골목은 다져지고 다져져 평지가 되었다. 골목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집들은 사라지고, 높고 삭막한 아파트가 세워졌다.
내 아지트였던 누렁이의 집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나랑 뛰어놀던 그때의 그 골목 아이들은 지금쯤 나와 비슷한 삶을 살고 있을까?
나에게 기꺼이 뾰족구두를 내어주던 어느 집 이모도, 계란프라이와 사과 반쪽을 간식으로 주던 피아노집 이모도, 100원 짜리 새우깡과 자갈치를 팔던 골목의 슈퍼도... 갑자기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던 그 계단 많던 골목의 나는 참 해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