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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십이월의봄날 Oct 13. 2024

엄마도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큰 아이의 뜻밖의 문자, 그것이 계기가 되다.

"엄마~" "엄마 아아아"

하루 종일 쉼 없이 나를 찾아대던 아이들의 입이 어느 순간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각자의 방에서 컴퓨터 앞에 혹은 스마트폰을 끼고 앉아 각자의 할 일에 집중하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 알겠다.

정말이지 눈 깜짝할 사이가 지났을 뿐인데 언제 나의 작은 천사들이 이렇게나 커버렸단 말인가!

엄마의 키를 훌쩍 뛰어넘은 지 벌써 한참 전이고, 배고프면 스스로 라면 정도는 끓여 먹은 지도 한참 지났다. 학교에서 혹은 운동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들도 점점 내가 모르는 것들이 늘어만 갔다.




사춘기를 벗어나 치열한 입시 전쟁의 한가운데 서서 열심히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고3 큰 아이.

4년 동안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우며 달려가다가 멈춤을 선택하고 다시 학생으로 돌아온 중3 둘째.

여전히 축구 선수의 꿈을 키우며 달려가는 중1 막둥이. 고만고만한 아들 셋을 그야말로 정신없이 키워냈다. 고물상하는 남편을 도와 하루 두세 시간 쪽잠을 자면서도 아이들이 엄마가 필요한 순간엔 늘 곁에 있어주려고 노력했다. 나 역시도 늘 엄마의 손길이 그리웠으므로...

제발 빨리 커라! 제발~엄마 좀 그만 찾아라! 했던 순간들도 있었지 싶은데, 너무 안 찾으니 이거야 원 도무지 적응도 안되고 좀 서운한가? 싶어 진다.

" 얘들아! 엄마 거실에 있다!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불러~"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엄마! 엄마도 이제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 >


작년 2월 즈음 축구하던 둘째의 대회 뒷바라지로 집을 일주일째 비우고 타 지역에 있을 때 집안일을 온전히 맡아하게 된 첫째에게 미안함을 가득 담아 보낸 문자에 대한 답이 왔다. 엄마는 계속했는데 자기는 고작 보름 정도 하는 건데 뭘 그리 미안해하느냐며, 앞으로는 종종 도와줄 테니 엄마도 이제 엄마의 인생을 살아도 좋다 허락해 주는 큰 아이의 문자에 주책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하필, 축구팀 다른 엄마들과의 수다 자리였던 탓에 가까스로 눈물을 참았는데,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나도 모르게 싱글거렸나 보다. "뭐야~뭐 보는 거야~" 궁금해하는 엄마들에게 못 이기는 척 큰 아이의 문자를 보여주자 여기저기서 어쩌면 그렇게 다정하게 아이를 키워냈느냐며 칭찬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렇죠? 이 녀석이 좀 스위트해요!"


그때 큰 아이의 나이가 고2.

폭풍 같았던, 사춘기를 막 벗어났던 시기이자 조금 멀어졌던 아이가 다시 곁으로 다가오던 그 무렵이었다. 맏이답게 늘 엄마의 편이 되어주는 살가운 녀석.


그날의 문자를 받은 그 밤 쉽사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상하게 자꾸만 맴도는 그 말에 생각이 생각을 꼬리를 물고 끝도 없이 이어가기 시작했다.

도무지 떠오르지 않던 ' 나 ' 의 모습...

엄마인 나는 쉽사리 떠오르는데, 왜 그냥 ' 나 ' 그 자체로는 떠오르는 게 하나도 없는 걸까?

엄마이기 이전에 ' 나 '는 누구였을까?

당장 내일 새벽부터 둘째 녀석의 팀 스케줄이 잡혀 있어서 서둘러 자야 하는데 오라는 잠은 안 오고 서글퍼지기 시작했다. 참으로 어이없이.

몇 시간 전까지는 세상 행복한 엄마였다가, 순식간에 ' 나 '를 잃어버린 서글픈 여인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밤에 끝도 없이 서럽게 흘렸던 눈물...


그날이 계기가 되었다.

엄마가 아닌 ' 나 ' 로 살아봐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게 된 것이.

그래!

그 힘들다는 아들 셋도 우당탕탕 어쨌든 이만큼 키워놨는데, 못할게 뭐야! 살아보자!

찾아보자! 진짜 나를!

진짜 나를 찾는 여정을 떠나보자!


"얘들아~! 엄마 이제 진짜 엄마 하고 싶은 거 다~하면서 살 거다! 응원해 줄 거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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