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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층간소윤 Oct 10. 2021

스페이스 사루비아 <제3의 과제전> - 제3의 감상기





 대부분의 서울사람들이 직장에서 현타와 싸우고 있을 평일 오후는 저같은 백수에게는 전시를 관람하기 최적의 시간입니다. 큰 시험을 치른 후 잠시 백수로 지내고 있는 친구를 데리고 비가 내릴지말지 망설이는듯한 평일 오후, 스페이스 사루비아에서 열리는 <제3의 과제전>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제3의 과제전>은 2015년부터 시작된 사루비아의 기획전이라고 합니다. 국내 미술대학의 관행적인 과제전과 졸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부터 출발했다고 하네요. 저역시 졸업전시를 준비하며 누구를 위한 졸전인지를 자주 생각해봤던 기억이 납니다. 세부적으로는 무엇을 위한 등록금인가, 무엇을 위한 야작인가, 무엇을 위한 피부노화인가.. 등등을 말입니다. 

판에 박힌 과제전의 시스템과는 의도적으로 멀찍이 떨어진 기획이니만큼 통일성과 규칙, 컨셉을 강요하지 않은 느낌입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스페이스 사루비아 라는 공간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루비아'라고 일필휘지로 스르륵 써내려가보았습니다. 









 그대로 사루비아 꽃으로 만들어주겠습니다.












 잠깐 최근 다녀왔던 다른 전시 < 예술적 거리두기>를 소개하자면, 이쪽은 네 명의 작가들이 릴레이 소설을 쓰듯 작업을 이어나간 과정을 보여주는 전시였습니다. 

1번 작가의 작업물을 2번 작가가 받아서 기반으로 삼아 본인의 작업을 한후 3번 작가에게, 3번 작가는 4번 작가에게, 4번 작가는 다시 1번에게.. 이런식으로 세 번 정도의 싸이클을 돌아 최초의 작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갔는지 그 스토리텔링을 펼쳐놓은 것 자체가 작업인 전시였죠. 

협업은 하되 전시의 골자만 회의를 통해 결정하고 각자의 작업은 유기적이지만 개인적으로, 따로 또 같이 해나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습니다. 

<예술적 거리두기> 관람 후 그려뒀던 '연결된 손들'을 불러와줬습니다. 


 이제 <제3의 과제전>이 어떤식으로 구성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개개인의 자유로운 창작을 표현하는 것으로 기획되었기에, 서로 다른 개념과 매체를 다루는 세 명의 작업을 하나로 엮는 뚜렷한 주제를 갖지 않는다 "

-  << 제3의 과제전>> 전시서문 中-



<예술적 거리두기>가 사슬처럼 작가들의 작업들을 연결시킨 형태라면 <제3의 과제전>은 각각의 작가들이 혼자 작업한 아트웍을 들고 중심에서 모이기만 한 형태에 가깝습니다. 작업들간의 공통점은 전시된 공간 말고는 없는것 같습니다. 

여기에 맞게 그림을 수정해볼까요? 









  

3인전













손을 꺾어 중심으로 모아줍시다.












개개인의 고뇌가 쏘아올린 3인전을 표현해보았습니다.


전시관람 경험이 적은 저의 동행은 두통을 호소했습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무슨소리인지 알 수가 없어 발생한 편두통인듯 합니다. 미술관을 조금 더 다녀봤어도 현대미술을 어떻게 봐야할지 막막하기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무제' 라는 타이틀을 건, 한 색으로 캔버스 전체를 균일하게 덮은 추상화 앞에 서면 바보가 되는것같아 얼른 지나가곤 합니다. 


거장들의 '무제' 추상화에 비하면 장한이 작가님의 작품들은 친절한 편이었던것 같습니다. 

작가 노트에는 '생각과 감정들을 비유로 치환된 이미지로 그린다'라고 설명되어 있었는데 어른의 그림일기와 비슷한 느낌이라고 해석하면 적절할까요? 

장한이 작가님의 그림을 보면 정말 많은 생각들이 한 땀 한 땀 짜임새있게 정돈된 느낌입니다. 제목 또한 고심해서 고른 단어들로 섬세하게 짜낸 문장들같습니다. 






 장한이,우리는 흐르는 강에서 만나 모든 걸 전하지 못하고 헤어져,2020,korean paint on hanji,130X162cm







장한이,각자의 속도가 있다는 걸 자꾸만 까먹네,2020,korean paint on hanji,162X130cm




  

이런 노랫말같은 제목들은 전시를 관람하는 동안 머릿속을 바쁘게 만듭니다. 

툭 던져놓고 상상할 여지를 많이 주는 시크한 타이틀의 작품들도 매력적이지만 저는 적당히 친절한 작업앞에 더 오래 머무릅니다. 


이러한 제목들로 제 버전의 그림을 그려보는것 또한 제3의 관람이 될 수 있겠고요. 













 장한이,네 말의 무게는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거야,2021,korean paint on hanji,35x27cm






이 그림을 제 버전으로 그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층간소윤,네 말의 무게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거야,2021, apple pencil on ipad


 

장한이 작가님은 그림 -> 제목 순으로 작업을 완성하셨겠지만 저는 역순으로 제목을 보고 그림을 그려보았습니다. 이렇게 나홀로 그림과 소통을 하다보면 작가님과의 내적친밀감이 쌓이는것같은 착각이 들곤 합니다. 

어려운 현대미술과 저 사이의 벽도 조금은 낮아지는것 같은 착각 또한 들곤 합니다. 







 최정고은,바늘구멍이 낙타를 통과한다,2021,mixed media


 최정고은 작가님은 "변화량을 포착해 물질과 공간의 상태를 드러내는 작업"을 하고있다고 합니다. 

설치 작업은 옆에 작가님이 계시면 직접 설명을 듣고싶을때가 많은데 이날은 계시지 않았으므로 혼자 골똘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해체되고 연결된 가구들, 물질의 상태, 낙타, 공간, 바늘구멍.. 맞아 떨어지는 지점을 알 듯 말 듯하면서 빠져드는 블랙홀같은 작업이었어요. 




이것역시 저의 버전으로 재해석 해보겠습니다.






조합된 구조물이 낙타 모양처럼 보이기는것 같기도 하고 '바늘구멍이 낙타를 통과한다'는 메시지 자체가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같아 일단 낙타를 그려주었습니다. 


물질의 상태를 변화시켜 바늘구멍이 낙타를 통과시키는 방법을 고민해봅니다.





낙타가 블랙홀로 빨려들어가면 블랙홀 조석력에 의해 가로로는 늘어나고 세로로는 찌부러져서 스파게티화(Spaghettification)될것이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대로 그림으로 적용시켜보겠습니다. 









마침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러스트로 마무리 해보았습니다. 

난해해 보였던 최정고은 작가님의 설치작업과도 내적으로 친해질 수 있었어요. 




세 번째 작가님은 김상소 작가님입니다. 

회화라는 장르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을 하고 계셨어요.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 하단으로> 시리즈는 만화책을 읽는 규칙에서 그 형식을 빌려온 회화작업들이고 <뽑아 듣는>이라는 작업은 색과 형태에 따른 감각에 대한 실험이라고 합니다. 


김상소,뽑아 듣는,2021,acrylic on acrylic plate in steel shelf,13.6X13.6X13.6cm ( 사진출처: 아트바바 )


 아무 소리도 없지만 보자마자 음반가게가 생각나고 자연스럽게 뽑아서 플레이어에 넣어 듣는 시늉을 해보게 됩니다. 

직관적인 작업이라 쿨한 느낌 그대로 두는것이 최선일 것 같아 재해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감각적인 작업을 보면 그림에 대한 영감이 떠오를때도 있지만 '2차'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때도 있습니다.

김상소 작가님의 <뽑아 듣는>을 보고 어디서 저녁을 먹을지가 떠오른 저는 

듣고싶은 신청곡을 뽑아서 틀어주는 멋쟝이 DJ 아저씨가 있는 맥주집으로 이동했습니다.












 온라인 탑골공원보다도 더 올드하고 인스타 핫플보다 훨씬 힙한 이곳에서 시대와 국경을 초월한 신청곡메들리를 듣곤합니다. 핫한 힙스터 성지는 알바하시는 분들과 손님들의 인싸력과 기에 눌릴때가 더러 있지만 이  맥주집에서는 뭘해도 예쁨받을것같은 편안함이 있습니다.



가시지 않는 숙취와 함께 아직 귓가에 맴도는 노래들을 적어넣어주며 감상기를 마무리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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