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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송곳 Nov 02. 2024

<에브리띵 이즈 파인>, 모든 것이 온전치 않은 연극

기존 디스토피아 작품 세계관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네이버 웹툰 <에브리띵 이즈 파인(Everything is fine)>의 가장 최신 회차인 시즌 3까지의 연재분을 토대로 작성된 평론입니다. 




이 가면 아래엔 나의 육신보다 더한 것이 있네, 이 가면 아래엔 신념이 함께 하고 있지. 총알로는 뚫을 수 없는 신념이. (Behind this mask there is more than just flesh. Beneath this mask there is an idea... and ideas are bulletproof.) 

 영화로도 제작된 동명 그래픽노블 원작 <브이 포 벤데타>의 주인공 V는 가면 뒤에 정체를 숨기고 혁명을 추동하는 인물이다. <브이 포 벤데타>의 배경은 제3차 세계대전 이후의 2040년 영국이다. 혼돈에 빠진 영국을 통제하기 위해 정부는 반체제 인사를 정신집중 캠프로 보내 표현의 자유를 묵살하고, 종교의 자유, 동성애를 철저히 금하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한다. 이때 등장한 영웅이 바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V다. V는 형사 재판소를 폭파하고, 방송국에 침투하여 정부를 신랄히 비판하는 영상을 영국 전역에 확산한다. 즉, V의 가면은 억압된 영국 시민을 구원하고자 하는 혁명의 발단이다. 

 그리고 여기 V와는 극명히 상반된 이유로 인형 탈을 쓰게 된 사람들이 있다.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배경은 한적한 미국 시골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빨간 지붕의 주택들이 소름 끼치도록 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있다.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주인공 매기와 샘 역시 정갈하게 정돈된 빨간 지붕 아래 거주하고 있다. 단 한 가지 특별한 점은 이들이 고양이 모양의 인형 탈을 쓰고 생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내인 매기는 분홍색 인형 탈, 남편인 샘은 하늘색 인형 탈을 착용하고 있는데, 인형 탈 탓에 본래 매기와 샘의 모습을 누구도 알 수 없다.      

가면을 벗지 못하는 사람들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고양이 인형 탈과 <브이 포 벤데타>의 가이 포크스 가면의 가장 큰 차이는 가면의 탈부착 가능 여부다. V는 정부에게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해 위장 용도로 가면을 착용한다. 반면, 매기와 샘의 탈은 정부로부터 씌워진 가면이다. V가 스스로 은닉하려 자발적으로 가면을 썼다면, 매기와 샘은 얼굴을 함부로 드러낼 수 없도록 정부에게 종용당한다. 

 또한, V의 가면과 고양이 인형 탈 모두 웃는 표정을 짓고 있으나, 웃음이 의미하는 바는 현격히 다르다. V의 가면이 형상화하는 ‘가이 포크스’는 17세기 영국에서 성공회를 주창하던 국왕 제임스 1세를 암살하려 시도한 가톨릭교도다. 따라서 가이 포크스 가면의 웃음에는 권력을 향한 조롱과 비판의 의미가 담겨있다. 정부에 반감을 지닌 V가 의도적으로 정부를 풍자하기 위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선정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매기와 샘은 늘 웃고 있는 고양이 인형 탈을 자의적으로 선택한 적이 없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단 한 번도 벗지 못한 인형 탈로 인해 매기와 샘의 본질적인 감정은 은폐된다. 즉, 이들에게 인형 탈은 자아를 표출하는 페르소나가 아닌, 인격을 상실하게 만든 주범이다. 

 매기와 샘뿐만 아니라,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집 부부 린다와 밥, 홀로 거주하는 찰리 역시 인형 탈을 착용한 채로 살고 있다. 인형 탈로 인해 통제당하는 요소는 단순 얼굴 표정만이 아니다. 정부의 기준에 반하는 언행을 할 때, 인형 탈의 눈은 경고의 의미로 빨갛게 변한다. 마을 주민들의 모든 행동과 대화가 정부, 경찰에 의해 감찰되고 있기에 주민들은 비일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눈다. 6화에서 매기와 샘, 린다와 밥, 찰리는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데, ‘우리 모두를 관리하고, 보호하고, 지원하는 정부에게 감사하다’, ‘남편, 사랑하는 이웃과 식사 자리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다’라며 지나치게 도덕 강박에 치우친 발언을 한다. 

 그런데 매기가 식사 도중 잠시 화장실에서 나오던 중, 갑작스레 마주친 찰리는 ‘혹시 기차를 좋아하느냐’는 의뭉스러운 말을 내던진다. 직접적인 의도를 발화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모든 인물의 대화는 숨겨진 의도를 함의한다. ‘기차’가 정확히 무엇을 은유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매기는 찰리의 집 지하실에 있는 ‘기차’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찰리의 집에 가기로 결심한다.       


혁명의 단초 

 다음날, 매기는 남편인 샘이 출근한 사이 찰리의 집에 방문한다. 그런데 찰리가 매기와 함께 지하실로 내려가려는 순간, 경관 톰이 들이닥친다. 경관 톰은 지하실의 실체를 확인하고는 찰리를 지역사회를 위협하는 반역죄로 체포한다. 1급 범죄자가 된 찰리는 당장 마을을 떠나야 하며, 누구와도 대화할 수 없다. 톰이 찰리를 1급 범죄자로 등록하자, 찰리의 두 눈은 일순간 빨갛게 변한다. 

 찰리가 사라진 이후, 매기는 급기야 환각 증세를 보이며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매기를 둘러싼 온 동네가 매기를 감시하고 있기에 마음대로 트라우마를 표출하지도 못한다. 심지어는 ‘잊자’라는 한마디만 해도 이웃집 린다에게 의심을 살 정도로 촘촘한 감시망 아래 있다.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이러한 전체주의적인 감시 체제는 조지 오웰의 <1984>를 모티브로 한다. <1984>는 가상의 국가 오세아니아를 배경으로 하며, ‘빅 브라더’는 오세아니아를 지배하는 최고 통치자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 역시 24시간 텔레스크린에 의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한다. 윈스턴이 발을 내딛는 곳마다 풀숲에는 그의 말을 도청하는 마이크로폰이 숨겨져 있고, 빅 브라더의 커다란 얼굴이 그려진 포스터가 어디를 가든 그를 지켜보고 있으며, 창문을 통해 사람들을 엿보는 순찰기가 사방에서 그를 지켜본다. 만일 반정부적인 행동을 할 시에는 즉각 사상 경찰에게 체포된다. 사상경찰이 어떤 방법으로 개개인에 대한 감시를 얼마나 자주 행하는지는 단지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작가 마이크 버첼은 작품 곳곳에 <1984>의 오마주를 배치하여 <1984>와의 유사한 전체주의 세계관을 공유함을 시사한다. 예컨대, 매기와 샘이 키우는 강아지의 이름은 <1984>의 주인공인 ‘윈스턴’이다. 매기와 샘 부부가 매일 2:59에 기상한다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일반적으로 2:59는 새벽 혹은 한낮으로, 기상에 적합한 시간은 아니다. 이는 작품 속 시간 체계가 현실의 시간 규칙과는 괴리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1984>는 ‘4월 맑고 쌀쌀한 날이었다. 시계들의 종이 열세 번 울리고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된다. <1984>의 시공간 또한 마찬가지로 종이 최대 12번 울릴 수 있는 현실세계를 벗어난다. 그러므로 <에브리띵 이즈 파인>과 <1984>의 세계관 모두 현실의 규칙을 벗어난 가능세계다. 

 <1984>에서 사건은 윈스턴이 텔레스크린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며 촉발된다. 일반적으로 텔레스크린은 방 안 전체를 볼 수 있도록 벽 끝에 설치된다. 그러나 운 좋게도 윈스턴의 거실에는 창문 맞은편 기다란 벽에 텔레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덕분에 윈스턴은 움푹 들어간 곳에 앉아서 몸을 잘 숨기기만 하면 텔레스크린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있었다. 텔레스크린의 눈을 피해 윈스턴이 하려는 일은 다름 아닌 ‘일기 쓰기’였다. 표현의 자유가 소멸된 세상에서 주체적으로 생각을 기록하는 일은 범법 행위다. 그러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머릿속에 가득한 무수한 독백을 내뱉고 싶은 욕망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윈스턴에게 일기 쓰기란 체제에 대한 저항이자 자기 자신으로 생존하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매기는 윈스턴보다 한층 앞선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확보한다. 찰 리가 떠나간 이후, 매기는 찰리의 지하실에 몰래 잠입하여 과학 101이라는 두꺼운 서적을 발견한다. 과학 101에는 다음과 같은 미스테리한 정보(-패러데이 케이지는 마이클 패러데이가 1863년 발명한 것으로 내부 물질을 보호하기 위해 전자기장을 차단하는 용도로 사용된다. 알루미늄 포일을 사용해서 패러데이 케이지를 만들 수 있다.-)가 적혀있다. 패러데이 케이지는 정부의 감시망을 차단하고 자유롭게 발화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매기는 그 즉시 이웃 주민 주디에게 구한 알루미늄 포일을 이용해 자신의 집의 지하실을 패러데이 케이지로 개조한다. 

 <1984>에서 윈스턴의 저항은 소극적이다. 그는 텔레스크린이 침투하지 않는 공간을 우연히 발견하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에브리띵 이즈 파인>에서 매기의 저항은 보다 도발적이고 적극적이다. 비록 매기는 사각지대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정부에게 감시당하지 않는 공간을 새로이 만들었다. 또한, 빅 브라더의 감시 원리를 파악하지 못한 윈스턴과 달리, 매기는 핸드폰을 통해 10분마다 정부에게 위치 정보가 전송된다는 감시 시스템 체계를 정확히 간파한다. 자유가 부재하는 세상에서 자유를 창조한 셈이다. 

 그러나 매기가 만든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이웃 주민 린다는 포일을 옮기는 샘을 목격하고, 경관 톰에게 신고한다. 샘의 안내로 경관지하실에 입성한 톰은 포일로 둘러싸인 방을 보게 된다. 결국 자신을 의심하는 경관 톰을 매기는 망치로 내려쳐 사살한다. 매기는 린다와 밥을 곤경에 빠뜨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타개한다. 주민들은 인형 탈을 쓰고 있기에 서로의 정체를 정확히 분간하기 힘들다. 이를 이용해 샘은 경관 톰으로 위장하고 린다와 밥의 집에 방문한다. 밥이 한눈을 판 사이, 매기는 톰의 머리에서 빼낸 GPS와 휴대폰을 린다와 밥의 지하실에 숨긴다. 이후 매기와 밥은 린다, 밥의 집에 잠입해서 톰의 시체를 유기하고, 이들에게 완벽하게 누명을 씌운다. 이로써 린다와 밥은 1급 범죄자로 전락하고, 매기와 샘은 호수 마을로 이사 갈 기회를 얻는다.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에서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설탕 뽑기, 줄다리기, 구슬치기, 징검다리 건너기, 오징어 게임 순으로 목숨을 건 서바이벌이 진행된다. 매기와 샘 부부가 초기 거주지에서 호수 마을로 이사하고, 추후 언덕마을로 이사할 기회를 획득하는 장면은 <오징어 게임>의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과 유사하다.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은 전적으로 참가자의 운에 의해 생존이 결정된다. 참가자는 강화유리와 일반 유리가 번갈아 배치된 징검다리를 건너 다리의 끝에 도달해야 한다. 강화유리는 두 사람이 올라가도 깨지지 않을 만큼 튼튼하지만, 일반 유리에는 한 사람만 올라서도 바로 산산조각이 나서 수십 미터 아래로 추락한다. 

 징검다리 게임의 숨겨진 규칙은 ‘뒤로 갈 수 없다는 것’이다. 순간 강화유리를 골라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천만한 선택을 지속해야 한다. 톰을 살해하고 호수 마을로 떠나는 매기와 샘 부부는 징검다리 한가운데 놓여있었다. 호수 마을로 이사 가던 도중, 이들은 충격적인 참극을 목도한다. 이들이 살던 평화로운 마을 전체가 불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매기와 샘이 생존자가 되어 호수 마을로 떠나기 때문에 남겨진 사람들은 데스게임의 낙오자가 되었다. 다시 말해, 매기와 샘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면 그들도 불에 탄 마을과 같이 생존 게임의 패자가 될 것이다. 

 매기와 샘의 새로운 터전인 호수 마을은 한층 강화된 데스게임이다. 이전 마을에서 누군가를 신고하거나, 타자에게 우위를 점한 이들로 이루어진 곳이기 때문이다. 호수 마을에서 다음 징검다리(언덕 마을)로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마일 표시의 상점 3개를 획득하면 보상으로 언덕 마을에 갈 수 있고, 반대로 앵그리 표시 3개가 축적되면 1급 범죄자로 전락한다. 스마일 표시를 얻으려면 체제에 더욱 충실히 복종해야 한다. 스마일 1개를 모으려면 돈이 10,000 정도 필요한데, 호수 마을 내 경제 활동을 통해서 요구되는 돈을 벌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징어 게임>의 작동원리가 456억 원의 상금을 얻겠다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되었다면,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정부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제한해서 권력을 향한 충성도를 높이겠다는 파시즘을 고수한다. 

 스마일 뱃지를 획득하기 위해, 동시에 타자에게 앵그리 뱃지를 부여해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 호수 마을 사람들은 각축전을 벌인다. 먼저 호수 마을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베키는 온 마을에 반란군 포스터를 붙여놓은 다음, 매기와 샘의 정원에 반란군 포스터를 쌓아놓아 범인으로 내몬다. 하지만 매기와 샘의 이웃인 크리스와 지나의 도움으로 베키 노트의 그림체와 포스터의 그림체 간의 유사성을 입증해 간신히 곤경에서 탈출한다. 대신 그 대가로 베키는 1급 범죄자가 된다. 

 호수 마을에서 1급 범죄자가 되면 ‘사냥’을 당한다. 앵그리 뱃지 3개를 얻어 1급 범죄자가 된 대상자가 깊은 숲속으로 도망치면 나머지 구성원이 1급 범죄자를 추격하는 식이다. 1급 범죄자를 사살하는 데 성공한 사냥의 승자는 스마일 뱃지를 얻게 된다. 이처럼 다음 징검다리로 이전하겠다는 생존 목표는 체제 유지의 동력이 된다. 호수 마을의 사냥은 <오징어 게임>의 ‘솎아내기’에 상응한다. 줄다리기, 설탕 뽑기와 같은 규칙이 명확한 다른 게임과 달리, 솎아내기의 규칙은 간단하다. 소등 후 살아남거나, 사라지거나 둘 중 하나의 경우에 몸을 내맡기는 것이다. 호수 마을 사냥의 규칙도 이와 흡사하다. 1급 범죄자는 사냥꾼들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가거나, 혹은 살해당하거나 두 경우에 운명을 맡겨야 한다. 안타깝게도 첫 번째 사냥에서 베키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됐다. 크리스와 지나는 성공적인 사냥꾼이 되어 베키를 사살한 것이다. 

 첫 사냥 이후, 스마일 뱃지 획득을 위한 본격적인 편 가르기가 시작된다. 생존을 건 편 가르기에서는 언제나 비정상으로 규정된 대상이 정상성에 소외되어 밀려난다. <오징어 게임>의 세 번째 퀘스트인 줄다리기 게임의 승패는 어느 편에 서느냐에 달렸다. 줄다리기 게임에서 노인(일남)과 여성(새벽)은 정상성으로 규정된 ‘성인 남성’에 소외되었다. 호수 마을에서의 정상성은 ‘한 쌍의 부부’다.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정부는 통치 초기에 미혼자, 동성애자를 몰살하고, 기혼자 부부에게서는 아이를 볼모로 삼아 정부에 충성토록 강제한 바 있다. 한 쌍의 부부로 편입되지 못하고 홀로 남은 데이브는 크리스와 지나 부부, 샘과 매기 부부 동맹의 표적이 된다. 크리스와 샘은 합동 작전을 펼쳐 데이브가 약국에서 약을 빼돌리고, 샘에게 약을 권한 것마냥 위조한다. 매기와 샘 부부는 이 사건으로 앙심을 품은 데이브가 어떠한 일을 벌일지 한 치 앞도 예측하지 못하고 있었다.      

화씨 451: 반란의 불길

 한편, 매기는 숲속에서 배회하다 주디를 마주한다. 주디는 이전 마을에서 매기가 포일로 둘러싸인 패러데이 케이지를 만들 수 있도록 도운 조력자다. 주디를 통해 매기는 ‘반란군’의 존재를 인지한다. 재판을 거쳐 1급 범죄자가 확정되고, 1급 범죄자를 학살하는 사냥놀이가 그간의 정형적인 시스템이었다면, 주디는 1급 범죄자를 반란군의 기지로 인도해 기존 관습을 붕괴하려 시도한다. 주디의 제안은 이웃 주민끼리 서로를 학살하는 제로섬 게임에서 탈피하고자 하는 시도다. 

 또 다른 이웃 부부인 글랜, 글래디스 부부의 1급 범죄자형이 확정되자, 매기는 주디의 말을 따라 글렌 부부를 살리려 분투한다. 글렌 부부의 목숨을 구하려면 다른 사람보다 먼저 글렌 부부와 접선해 반란군 기지의 위치를 알려야 한다. 매기와 샘은 글렌 부부를 구하려 숲속으로 침투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가시철조망으로 글렌 부부를 포획한 데이브가 있다. 글래디스는 이미 사망한 상태이고, 글렌은 가시덤불에 뒤엉켜 몸부림치고 있다. 글렌은 고통을 호소하며 제발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한다. 샘은 그런 글렌을 활로 쏴서 죽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사냥 시스템을 개혁하려는 작은 반란은 수포로 돌아간다. 

  반란군의 존재를 아는 이는 매기뿐이 아니다. 매기가 글렌의 죽음으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을 때, 호수 마을의 이장인 로라는 매기를 집무실로 부른다. 집무실의 정중앙에는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그림이 걸려있다. 유디트는 성경의 유딧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전쟁에서 패배할 위기에 놓인 유대인들을 구하기 위해 아시리아군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유혹하고 그의 목을 벤 여성이다. 적장의 목을 베는 행위는 강자를 향한 저항을 뜻하고, 암묵적으로 로라가 체제에 저항하는 반란군과 결이 비슷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로라는 반란군의 정체도, 매기가 반란군과 손을 잡았다는 점도 이미 알고 있다. 매기와 마주 앉은 로라는 사냥에서 1급 범죄자에게 먼저 도망갈 기회를 준 배경을 설명한다. 과거에 로라는 목사였으며, 피터와 데이비라는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체 모를 정부 관계자가 로라를 찾아와 출세의 길을 열어줄 테니 가진 자산을 전부 버리고 호수 마을에 올 것을 권유한다. 당시 호수 마을의 이장은 엘리야라는 폭군이었다. 엘리야는 언덕 마을로 갈 수 있는 부부의 수에는 제한을 두었지만, 1급 범죄자의 수에는 인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엘리야가 1급 범죄자 지정권을 독점해 뇌물을 받고, 여자들에게 잠자리를 요구하자 로라는 끝내 그림 속 유디트와 같이 엘리야를 살해하고 이장이 된다. 

 <에브리띵 이즈 파인> 56화의 제목은 ‘화씨 451’이다. <화씨 451>은 1953년에 출간된 레이 브레드버리의 디스토피아 소설로, 독서를 금하고, 책을 불태울 것을 명하는 정부와 이에 저항하는 소방관 몽태그의 이야기를 다룬다. 정부에 순응하며 책 소각에 전념하던 몽태그는 책과 함께 분신자살하는 할머니를 보고 책 태우는 일에 회의감을 갖게 된다. 충격에 휩싸인 몽태그는 책 태우기를 강요하는 상사 비티와 대립하는데, 종국에는 그를 살해하고 책으로 사회를 재건하려 노력한다. 

 로라와 매기의 대화(51-52화) 이후에 곧바로 화씨 451(56화)가 이어진 점은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서사에서 무척이나 핵심적인 부분이며, 작가 마이클 버첼에 의해 정교히 설계된 전개다. 로라와 매기는 현 정부체제에 저항한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하지만 이들이 체제에 저항하는 방식에는 근원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로라는 기존의 독재자인 엘리야를 제거함으로써 호수 마을을 개혁할 수 있다고 신빙한다. 그러나 로라가 엘리야를 살해하고 스마일 뱃지 제도와 1급 범죄자 사냥 제도를 구축했음에도 불구하고, 호수 마을 주민들이 정부에 의해 감시당하고, 충성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을 변치 않는다. 호수 마을의 규칙이 적용되는 한, 누군가는 재판 결과에 따라 반드시 1급 범죄자가 되어야 한다. 

 체제 내부에서 저항하길 택한 로라와 대조적으로, 매기는 <화씨 451>의 주인공 몽태그처럼 반란군을 따라 체제 밖으로 이탈하길 열망한다. 몽태그가 비티를 살해한 것처럼 로라도 엘리야를 죽였으나 체제를 온전히 변혁하지는 못했다. 매기는 아무리 선한 대의명분을 가졌더라도, 체제의 아주 자그마한 파편이라도 체화하거나 순응할 시 아무것도 뒤바뀌지 않는다는 진실을 깨닫는다. 매기는 몽태그처럼 체제 작동원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 이상, 권력에게 영원히 종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고로 시즌 2의 후반부에서 매기는 샘과 같이 반란군에 편입되길 시도한다. 그러나 체제에 순응한 샘의 돌발행동으로 매기의 계획은 어그러지고 만다. 샘은 애초부터 반란군에 가입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으며, 매기의 계획마저 이웃인 크리스와 지나를 반역활동죄로 신고하는 데 이용한다. 매기와 샘은 극명한 입장차로 서로 다른 노선으로 분열된다. 샘은 언덕 마을로 가서 딸 사라를 재회하기를 원하는 쪽으로, 매기는 반란군에 가입해 딸을 앗아간 세상을 뒤바꾸는 쪽으로, 부부는 각자의 길을 걷는다.      


문밖의 세상

 매기는 반란군의 전초기지인 철도박물관에 입성한다. 시즌 1에서 찰리가 매기에게 ‘지하실에 기차를 보러 가지 않겠냐’라고 물었던 이유도 반란군이 철도, 기차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본래 호수 마을은 높은 지위에 있는 광부 우두머리들을 위해 만들어진 동네였다. 그러다 어느 날 광산이 무너지며 기차역만 잔존한다. 그러자 광부 우두머리들은 마을을 재건하며 광부들을 존경하는 의미에서 기차역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철도’와 ‘기차’는 1774년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기관과 뒤이어 일어난 산업혁명을 연상케 한다. 급격한 기술의 발전은 사회, 경제 체제를 완전히 전복시켰다. 18세기 초까지 공장제 수공업이 만연했다면, 증기기관이 개조되어 보급되자 공장은 대규모 노동자를 싼값에 고용해 밤낮없이 착취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시초다. 그러니 ‘철도’와 ‘기차’는 시민들이 속한 사회경제 구조를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는 ‘기차’와 ‘혁명’의 메타포가 뒤엉킨 작품이다. <설국열차>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각국 정상들이 냉각제 CW-7를 살포했으나 그 부작용으로 빙하기를 맞이한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 설국열차는 수평으로 길게 배열된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단면이다. 충분한 재화를 소유하지 못한 꼬리 칸 사람들은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머리 칸 사람들에게 분개하고 혁명을 일으킨다. <설국열차>의 꼬리 칸 사람들과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반란군은 지배 권력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다는 점은 공통되지만, 반란의 동기와 양상은 사뭇 다르다. 우선 꼬리 칸 사람들이 일으킨 반란의 근원은 빈부격차다. 꼬리 칸은 소유하지 못하는 푸짐한 음식, 청결한 의류, 거주 공간을 머리 칸의 상류층이 독점 상태가 반란의 주원인이다. 이와 달리 <에브리띵 이즈 파인>에 등장하는 반란군의 혁명 동기는 볼모로 잡힌 아이들이다. 반란군의 반란 동기는 오래전 정부에게 포섭된 아이를 구하기 위한 모성애, 부성애, 정의감에서 촉발된다. 반란 동기의 근원적 차이는 <설국열차>의 기차는 자본주의의 축소판이고,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새 정부’는 파시즘 정권과 비슷한 속성을 지닌다는 데서 기인한다. 

 이러한 사상적 기반의 차이 때문에 ‘기차’라는 메타포의 함의도 대척한다. <설국열차>의 기차는 부조리한 자본주의 시스템 그 자체이며, 기차의 칸에 따라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신분이 구분된다. 꼬리 칸의 반란 주동자 커티스와 열차의 보안 설계자 남궁민수, 꼬리 칸의 정신적인 리더 길리엄은 열차 한 칸씩 전진하며 상위 계급(머리 칸)으로 나아간다. 꼬리 칸 반란군은 머리 칸에 접근할수록 권력의 추악한 실체에 직면한다. 꼬리 칸 사람들에게 제공되는 유일한 식량인 단백질 블록은 바퀴벌레로 만들어진 젤리였을 뿐이다. 상류층은 무엇보다 열차 체제 유지를 위해 힘쓴다. 열차에서 태어난 일명 트레인 베이비들은 윌포드에 대한 찬양을 주입당하고, 열차 밖으로 나가면 얼어 죽는다고 폭력적으로 세뇌된다. 빈곤한 꼬리 칸의 상황과는 다르게 상류층은 고급 음식을 먹고, 고급 의복을 입은 채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긴다. 커티스와 꼬리 칸 반란군에게 열차는 부조리의 현장이며, 정복해야 할 공간이다. 반면,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기차는 되려 정부의 시스템에서 탈피한 자유와 혁명의 표상이다. 본래 규칙에 따르면, 매기는 스마일 뱃지 3개를 획득하여 호수 마을에서 언덕 마을로 이전하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그러나 매기는 남편 샘을 따라 언덕 마을로 가지 않고, 반란군과 함께 브레드 버리로 향하는 기차에 탑승한다. 매기가 탄 기차는 정부가 규정한 경로에서 벗어나 시민들이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목적지를 설정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설국열차>의 기차가 지배층이 설계한 철도를 따라 무한히 회전하는 양상과 상반되게,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기차의 경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매기가 합류한 반란군은 정상적인 탈을 쓰고 있지 않은 비주류다. 시즌 1에서 1급 범죄자로 낙인찍혔던 찰리의 탈의 입 부분은 찢어져 있으며, 니콜과 팀의 인형 탈은 눈이 찢어져 있다. 오멜은 삐뚤어진 탈을 쓰고 있고, 호러스는 정부가 부여한 인형 탈을 조립해 단추가 달린 개성 있는 탈을 만든다. 이 괴상하고도 이질적인 반란군 집단은 로라가 유품으로 남긴 핸드폰으로 암호 체계를 해킹하고자 한다. 정부의 네트워크 구조에 침투하려면, 아이들이 인질로 잡혀있는 꼭대기 캠프, 즉 무선탑이 있는 브레드 버리에 도달해야 하기 위해 이들은 기차를 타고 질주한다. 

 <설국열차>와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기차는 컨트롤타워의 주체가 다르다. <설국열차>의 최종적인 컨트롤 타워는 설국열차의 설계자인 윌포드다. 윌포드는 꼬리 칸의 성자로 추앙받던 길리엄과 모종의 동맹을 맺고 혁명의 완수를 방해한다. 그러므로 남궁민수가 말했던 열차 문밖으로 탈출하는 방법 이외에는 무한히 달리는 자본주의 열차에서 하차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기차를 모는 주체는 매기와 같은 반란군인 찰리다. 작품에서 매기가 초기에 살았던 마을, 이사한 호수 마을, 이전하길 거부한 언덕 마을은 차례로 수직적인 피라미드 구조를 형성한다. 다시 말해, <에브리띵 이즈 파인> 내에서는 한 마을이 <설국열차>의 기차 한 칸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다음 마을로 옮겨가길 거부하고 기차에 탑승한 매기의 선택은 크로놀을 모아 설국열차를 파괴하고 열차 밖으로 뛰쳐나간 남궁민수의 선택과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슈퍼 히어로물은 아니지만

 드디어 반란군은 기차를 타고 무전탑이 있는 브레드 버리에 종착한다. 그런데 도착한 브레드 버리의 모습은 예상과 다르게 황량하다. 아이들이 가득할 것이라 예상한 무전탑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고, 선혈이 낭자한 길거리에는 기척도 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조우한 아이는 호러스를 칼로 위협한 카스다. 하지만 카스마저도 초록 물감에 뒤덮여 귀가 뭉개져 있다. 브레드 버리에 당도하면 적어도 아이들의 신원은 파악할 수 있으리라 믿었는데, 아이들의 생사여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행히도 호러스는 로라의 핸드폰을 해킹하여 정부의 지령 중 반복되는 지명인 ‘캣 포드’를 알아낸다. 반복되는 지명이 정부의 본거지일 가능성이 높으므로, 캣 포드에 매기와 샘의 딸 사라를 포함한 아이들이 있을 확률이 높다. 시즌 3의 말미에 반란군은 또다시 캣 포드로 떠날 결정을 내린다. 어떤 시련과 고난이 닥치더라도 매기는 다시 언덕 마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며, 반란군과 힘을 합쳐 계속되는 불확실하고도 위험한 모험에 뛰어들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시즌 3가 종결된다. 

 앞서 언급했듯, <에브리띵 이즈 파인>은 조지 오웰의 <1984>의 오마주로 시작된다.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은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지독한 고문에 이기지 못해 사랑했던 줄리아를 배신했으며, 동료인 줄 알았던 오브라이언조차 정부의 수뇌부로 판명됐다. 윈스턴은 강압적인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굴복했다. 하지만 작가 마이클 버첼이 의도적으로 시즌 2의 56화 제목을 <화씨 451>로 지정한 것을 보아,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결말이 비극으로 끝날 것이라 예측하지는 않는다. <화씨 451>은 전체주의 체제에 저항한 소방관 몽태그의 성공적인 저항기다. 정부의 지시로 모든 책이 소각될 때조차 몽태그는 지성인이 되길 포기하지 않는다. 

 <에브리띵 이즈 파인> 64화에서 지나는 ‘이 세상을 구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이게 무슨 슈퍼 히어로 영화도 아니고...’라며 반란군에 관해 회의적인 태도를 보인다. 이에 대한 반란군리더 주디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세상을 구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어요. 역사를 돌아봤을 때, 이렇게 혼란했던 시기도 이번이 처음인 것도 아니고요. 그런 시기가 올 떄마다 세상을 바꾼 건 바로 반란, 저항이에요. 평범해 보이는 사람들이 가만히 숨어서 계획을 짜며 때를 기다렸던 거죠. 그렇게 들고 일어난 사람들의 희생으로 이 세상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날 겁니다.     


주디의 말대로 역사가 혁명과 독재가 반복되는 순환론의 운명을 지닌다면, 시즌 4에 이어질 다음 이야기는 반란의 성공이 아닐까. <에브리띵 이즈 파인>의 결말이 <1984>의 비극에 머무르지 않고 <화씨 451>과 <설국열차>의 성공으로 귀결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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