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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아 Apr 10. 2024

당신이 자신을 믿어준다면

다섯번째 산을 오르는 사람처럼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 다섯번째 산을 읽었다. 책 뒤에 이런 메시지가 있다. 피할 수 없는 일에도 끝이 있어. 그러나 그것이 남기는 교훈은 영원하지. 거센 물살처럼 시련이 밀려드는 순간 폐허가 된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인생의 새로운 이야기로 나를 해방하는 용기 나를 향한 무한한 사랑을 깨닫는 삶의 가장 위대한 축복.


파울로 코엘료의 다섯번째 산을 이해하기 위해선 기독교적 세계관 속 엘리야 이야기를 알아야 하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선지자 엘리야는 신이 명령한 일을 하기 위하여 아크바르로 가게 된다. 거기서 신이 부여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사람들은 신의 말을 전하는 엘리야의 말을 귀 기울여 듣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군중을 선동한다. 그 결과 아크바르라는 도시는 적군들에 의해 폐허가 되고 엘리야가 인생에서 처음 사랑하게 되었던 여인은 아크바르에 땅 속에 묻히게 된다.


엘리야는 이 사건을 계기로 신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다. 그리고 신을 떠나고자 하지만 여인을 닮은 여인의 아이가 엘리야에게 어떤 기억을 상기시킨다. 여인은 자신이 살던 도시 아크바르를 자신의 새로운 이름이라 여길 정도로 아꼈다는 것이었다. 엘리야도 사랑하는 여인을 잃은 고통과 신에 대한 회의감에서 새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신에게 [해방]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여인이 사랑했던 아크바르가 적군들의 공격에 무너지지 않도록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운다. 고아여도 과부여도 노인이어도 각자 새로운 이름을 정하고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것이다.


고통에 대해서 작가가 적은 문장 중에 인상 깊은 대목들이 있었다.


"때로는 신과 맞서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잊지 않도록 그 이야기는 대대로 전해 내려 왔다. 인간은 모두 살아가다 보면 때때로 비극을 마주하게 된다. 터전을 일궈놓은 도시가 외세의 침략을 받을 수도 있고, 자식이 죽을 수도 있고, 이유 없이 다른 이들에게 비난받을 수도 있고, 이럴 때 하느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과 정면으로 맞서고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게 하신다. [왜 너는 그토록 짧고 고통으로 가득한 존재에 그토록 매달리느냐? 너의 싸움의 의미는 무엇이냐?]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은 운명이라고 체념하지만, 존재의 의미를 찾기 원하며 하느님이 정의롭지 못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자신의 운명에 도전한다. 용감한 자들은 오래된 것들을 불태우고 내면에 큰 고통이 찾아온다 해도 하느님을 비롯한 모든 것을 버리고 앞으로 나아간다. 주님은 각자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신께 맞서는 일이 죄가 되지는 않을까요?" 천사가 대답했다. "전사가 그의 스승과 맞서는 일이 스승을 욕되게 하는 것인가?" "아닙니다. 그것은 전사가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을 배우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자기 인생에서 한 단계가 끝났을 때를 알아야 해. 이미 끝나버린 단계에 너무 오래 머물러 있으면 그다음 단계의 행복과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거든. 그러면 주님께서 네 존재를 흔들에 깨우치게 할 수도 있어." "주님은 엄격하시군요." "주님은 선택한 자들에게만 그러신단다."




나의 유년기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어른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서른을 살아내면서 비슷한 일을 직장에서 겪게 되었다. 질서를 잡아줄 어른이 필요했지만 아무도 그 역할을 담당해주지 않자 나의 선한 의도와 노력 모든 것이 무질서에 빨려 들어갔고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고 폐허가 된 아크바르처럼 직장에서 무고한 이들이 살려달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때가 가장 힘들었다.


나는 책 속의 선지자인 엘리야처럼 소리 없는 아우성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은 축복처럼 보이는 고통이었다. 무질서한 아크바르에는 서로를 향한 비난과 공격이 가득했고 무고한 이들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회사를 나가거나 포기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책 속 엘리야가 그랬듯 총독을 포함하여 권위자들에게 도움을 청해보았지만 도와주는 이가 없었다. 깊은 심연의 고통이었다. 여전히 유신론자임에도 불구하고 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어렵고 힘든 환경을 내게 주었음에도 나는 있는 힘껏 신의 말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했고 선한 것은 무엇일까 고민해 온 삶이었다. 물론 인간이기에 실수도 했지만 그 과정에서도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전심으로 노력했다. 그런데도 상을 받기는커녕 계속 해결할 수 없는 시련을 허락하는 것은 형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신을 자주 원망했다. 그럴 때마다 신은 나를 사랑한다고 했다. 지독한 역설이었다.


그럼에도 마음속엔 주어진 환경에 굴하지 않겠다는 마음이 불같이 일었다. 압박이 주어지면 질수록 나는 더욱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버텼다. 나를 생포해 광장에 전시하려는 적들이 내 등 뒤에 있어도 굳건히 서서 품 안에 약자들이 다치지 않도록 지켰다. 전쟁의 끝이 다가오는 게 느껴질 때쯤 나도 한계가 왔는지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나는 물러설 수 없었다. 그렇게 2년의 시간이 지났고 신은 나를 새로운 도시로 이끌었다.


나의 아크바르에서의 경험은 무의식에서 스스로를 지켜낸 경험과 동시에 해결되었어야 할 운명적 사건이기도 했다. 도움을 받을 수 없던 유년시절과 달리 이젠 동일한 문제 생겼을 때 스스로를 지켜낸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의 유년시절을 닮은 사람들을 함께 지켜내었다. 반드시 해소되어야 할 문제가 해소된 탓일까.


새로운 도시에선 전혀 다른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환영받는 선지자가 되었고 환영식이 끝나도 나는 군중들의 심리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적절하게 나를 숨기고 드러내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도시의 군중들은 아크바르와 닮았지만 지역적 특색이 다른 사람들도 많이 존재했다. 새로운 도시에선 선지자의 노력을 인정해 주는 사람들 먼저 물을 건네는 사람들 그리고 선지자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운명적인 사건은 나의 환경을 바꾸었고 내가 살아가는 길에 오히려 확신을 주었다. 그러니 선의를 베풀 사람들에게 진심이 잘 전해져 회사 밖의 나의 생활에도 전환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독서모임의 리더인데 이번 달 독서모임에서 경륜이 높은 한 멤버 분이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저는 지난 시즌 리더가 한 달에 한번 하는 이 모임이 너무 소중하고 자신을 행복하게 한다고 하길래. 처음엔 믿지 않았습니다. 무슨 한 달에 한번 일어나는 일이 자신에게 다른 일보다 중요하다고 말을 하는지. 근데 멤버가 되어보니 여러 독서모임을 하는 저에게 이 모임이 제일 안정감과 유대감을 줍니다."


다음 날엔 독서모임을 운영하는 곳에서 멤버의 후기가 들어왔다고 전해주었다.


"멤버들의 열의가 대단하며 글에 대해 서로 주고받는 피드백도 도움을 많이 받는 느낌이다. 파트너의 개입과 리딩도 적절했다."


그동안 모임을 이끌면서 불편했던 부분도 운영진에게 말을 했더니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주 셨다. 그러면서 오히려 소요기간이 걸려 미안하다고 했다.


회사에서도 아크바르에서 나의 도움을 받았던 이들은 서서히 안녕을 찾아가고 있었다. 도움받지 못하던 아이가 도움을 주는 어른이 되었다. 필연적 문제가 해결되니 도움을 청하기도 가벼워지고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내가 머물던 아크바르를 내 마음속에 남겨두면서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 됨을 느꼈다. 책 다섯번째 산에서 시간이 지나 아크바르의 총독이 되어 평안과 안녕을 누리던 엘리야에게 신은 다시 그를 부른다. 네가 있어야 할 곳으로 가라고.


모든 것엔 때가 있는데 언젠가 나도 내가 누리는 이 평안함을 내려놓고 또 한 번 도약을 해야 할 시기가 올 거라 생각한다. 그때는 더 이상 신을 원망하지 않고 아크바르를 기억할 지팡이를 들고 새로운 여정을 떠났던 엘리야처럼 나도 그렇게 새로운 여정을 주저하지 않기를 기대해 본다.


눈에 밟히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반드시 겪어내야 할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 그 과정을 겪어내고 계신 분이 있다면 자신을 믿어주시길. 신에게 맞서더라도 질문하고 스스로의 답을 찾아나가시길. 그리고 이후엔 신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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