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아닌 생각 #1
올해로 96세인 할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내를 떠나보낸지는 벌써 햇수로 8년이 되었다.
그 후 할아버지는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는 일이 없었다. 매번 할아버지의 집에 찾아갈 때면 나는 현관문을 열고 인사를 크게 한 뒤, 비어있는 거실을 지나 복도를 통해서 집의 가장 안쪽에 위치하는 할아버지의 침실로 갔다. 침대 위에 누워서 일어날 생각이 없는 당신을 흔들어 깨운 뒤에야 당신은 비로소 "내가 아직 죽지는 않았구나." 하면서 일어나 자세를 고치고 침대에 걸터 앉아 또 다시 한참을 멍을 때렸다.
할머니의 발인식 날 이야기다.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입술에 마지막 키스를 하겠다고 선언했고. 할아버지의 입술이 할머니의 입에 닿았다 떨어지기까지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눈물을 흘렸지만, 할아버지만이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고. 감정이 무뎌졌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나는 노인이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지하철 의자에 기대어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또는 아파트 공원 평상에 걸터앉아 초점 흐린 눈으로 정면의 빈 공간을 바라보고 있는, 얼굴이 짙은 노인들을 본 적은 있었다. 그러나 엉엉 소리내어 울거나 울음에 얼굴이 잠긴 노인을 본 적은 없었다. 나이가 들면 눈물샘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거나, 인생의 풍파를 맞으며 감정이 둔해져서 그런거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쳐진 눈주름살에 의해 단추구멍만하게 작아진 눈구멍 사이로는 내면의 감정을 읽어내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언젠가 한번은 피카소나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90세가 넘어서도 활동한 유명인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나이가 들어서도 내 마음을 표현할 능력이 있고. 들어줄 사람이 있고. 진지하게 생각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표현을 위한 신체의 각 기관들이 하나씩 탈락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외롭게 살다가 죽을 운명이었다. 소리쳐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보다 소리칠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이 더 큰 비극일 터였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감정을 표현할 능력을 보유한다는 것은 굉장한 특권임이 분명했다.
표현되는 감정 없이는 공유되는 감정도 없기 마련이기에 노인의 삶은 노인이 아닌 자들의 삶과 단절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노인의 귀가 이전처럼 안 들린다고 생각하니, 귀에 거슬릴 말을 서슴치 않는다. 눈이 이전처럼 안 보인다고 생각하니, 행동을 조심하지 않는다. 눈치가 늦어진다고 생각하니, 거짓말을 티내지 않으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연장자 앞에서 갖춰야 한다는 예(禮)는 그 나이가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오히려 지켜지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몇 년이 지난 후의 이야기다. 하루는 할아버지를 데리고 동네의 일식집에 간적이 있다. 오래되고 촌스러운 동네라 새로운 가게가 생길 일이 많이 없는데, 얼마전 늙은 상점가 가운데에 젊은 가게가 하나 생겼다. 커플 초밥 19,000원. 젊은 메뉴, 젊은 가게.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할아버지는 기댈 수 있는 벽이 있는 자리에 앉고 싶다고 하셨다. 가게 직원은 벽쪽 자리가 전부 예약석이라고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재차 벽쪽 자리로 안내해달라고 고집했다. 서너 번 정도 반복 됐던걸까. 직원은 할아버지에게 언성을 높였다. 볼륨의 높낮이만이 아닌 분명한 말투의 차이가 있었다.
그것은 내가 화장실에 가있는 잠깐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무어라 소리가 들리길래 밖에 나가보니 어느새 할아버지는 진상손님이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런 취급을 받게 된 사실에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속상했지만 직원을 욕할 이유는 없었다. 남들 입장에서는 억지 주장 부리면서 같은 말 반복하는 진상손님과 다름이 없었겠지.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도 하고. 다만 노인임을 고려하여 좀 더 상냥하게 대해주었다면 좋았으려만. 하고. 애써 생각을 제한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더이상 식당에 있을 수 없었다. 직원들이 할아버지의 뒷통수를 앞에 두고 흉을 보았기 때문이다. 어이없는 진상을 겪었다는 듯이 서로 무어라 깔깔대면서. 당연히 듣지 못할 거라는 듯이. 노인이니까.
얼굴에 열이 오른 채로 가게를 나와 옆에 있는 늙은 식당에서 익숙한 식사를 하는데 목구멍을 쥐어짜는 듯한 불쾌함에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다. 그 불쾌함은 단순히 직원의 태도에 대한 분노 때문 만은 아니었다. 그보다 당신의 삶도 이제 단절된 삶이 되었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슬퍼졌기 때문이었다. 눈 앞의 노인은 화가 안나는 모양인지. 아니면 무슨 상황이었는지조차 인지를 못 하는건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단추구멍 눈을 들여다보았지만 생각을 읽어낼 수 없어 답답함에 화가 났다.
수 년 전의 일이었다면 할아버지는 파이터 마냥 젊은 직원과 치고박고 했을 것이다. 어린 나는 창피하고 두려운 마음에 멀찌감치 숨어있었을테고. 그러나 이제 할아버지는 당신 면전에서 흉보는 것조차도 눈치채지 못하는, 그리고 남들도 당신 앞에서 굳이 격식을 차리려는 노력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타인과의 관계를 구축하는 능력을 상실한 그런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다.
불쾌함의 또다른 이유는 할아버지의 변화를 직감하면서 언젠가 내게도 닥쳐올 미래가 두려워졌기 때문이었다. 소리칠 능력을 상실한다는 것.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지만 존재감이 없는 자가 된다는 것. 아직 먼 미래이지만 동시에 필연적인 미래였다. 연민이라는 것은 자기자신을 투영하기 때문에 느껴지는거라하던데, 할아버지를 연민하며 나는 그게 그렇게 슬펐다.
몇 년 전부터의 이야기다. 언제부터였는지 할아버지는 이제는 당신만이 이용하는 침실을 할머니와 당신의 젊었을 적 사진으로 도배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사진을 붙이다보니 할아버지의 방은 금세 사진으로 가득 찼고, 급기야 방문 밖으로 뻗쳐 복도를 따라 거실의 한쪽 벽을 가득 채우기에 이르렀다.
어떨땐 파란 빛으로 바랜 사진들이 마치 물결처럼 보이기도 했다. 환기 한답시고 창을 열어 바람이 이를때면 엉성하게 붙여진 사진들이 미세하게 일렁였다. 할아버지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시작된 감정의 파도가 좀처럼 나서지 않는 방문 밖으로도 수미터 물결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놀란건 사진 사이사이에 드문드문 붙여진 할아버지의 글이었다.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표현된 감성, 기억, 생각. 사진의 파고를 타고 떠있는 감정의 부유물. 더 이상 울지도 못하고 소리도 지르지 못하지만 여전히 할아버지는 감정을 가지고 있고 표현할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