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아닌 생각 #2
I.
'시간을 죽이는 삶은 정말 슬픈 삶이겠구나.‘
군대에 있을 때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짬은 상경 즘. 아마 8월. 아마 새벽 세 시. 이제는 좀 익숙해진 철야 근무를 끝내고 기대마(경찰버스) 뒷자리로 가 앉았다. 땀에 젖은 근무복을 벗어 대충 의자 구석에 찔러넣었다. 평소 같았다면 벌써 의자를 제끼고 눈을 붙였을텐데, 그 날따라 유독 심했던 열대야에 잠을 이루기가 어려웠다.
우리 소대는 다른 소대보다 근무 인원 수급 상황이 좋다는 이유로 신형 기대마를 운용하지 못하고 대신 십수년은 족히 된 구형 기대마를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더운 여름이면 환기도 어렵고 공간확보도 허접한 시설 안에서 모두가 개고생을 해야했다. 20대 남자들의 땀내가 대충 우겨 메달아놓은 플라스틱 방패 표면에 이슬 맺을 정도로 버스 안을 꽉꽉 채우는데다가, 비루해질 정도로 손상된 가죽 시트는 피부에 쩍쩍 달라붙으니 잠을 자는게 근무보다 더한 고생인 셈이었다.
모기는 자꾸 어디서 들어오는지 귀에서 엥엥 거렸다. 주차를 골목 귀퉁이에 해야하니 문 바로 옆에 하수구가 위치하는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도저히 이건 아니다 싶어서 글이나 쓰려고 다이어리를 꺼냈다. 공기가 텁텁해서 머리도 안 돌아간다. 첫 문두에서 펜을 맴돌다가 글 밖 현실에 빡이 쳐서 북북 긋고 다이어리를 덮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만 잠을 못 이루는건 아니었나보다. 소대원들은 저마다 각자의 방법대로 기대마에서의 지나가지 않는 시간을 죽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었다. 몰래 반입한 폰을 하는 고참들도 있었고, 짬 좀 먹은애들은 pmp로 영화나 드라마 따위를 보고 있었다. 제일 안타까운건 짬찌들인데, 할 게 없으니 눈을 애써 감고 제발 잠 좀 오게해주세요 하고 빌고 있는게 분명했다.
II.
2년의 시간을 죽여야한다고 다들 그랬다. 죽이는 것이 곧 사는 방식이었다.
군대니까 할 수 있는 미친 소리다. 밖이라면 좀처럼 용납되지 않을 생활패턴도 이곳에서는 바람직한 것이었다. 시간을 죽이기 위한 모든 비생산적인 행동들은 전략으로 간주되었다. 하루종일 잠을 잔다든가, 드라마 몰아보기를 한다든가, 게임을 한다든가. 고상한 취미가 따로 있겠느냐만은, 그저 전역날을 앞당기기 위한 행동이라는 점에서 분명한 시간 죽이기었다.
한번은 군외출을 나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눈물이 터져 나온적이 있다. 딱히 군생활에 어려움도 없었는데 볼썽 사납게 까까머리로 서점에서 울었다. 주인공 홀든의 세상에 대한 염세적인 태도가 결국에 자기자신을 향하고 그것이 자기경멸에 이르는 순간, 그리하여 홀든이 무너지는 모습에서, 눈물이 나왔다. 시간을 죽이는 사람들과 죽이게끔 조장하는 환경으로부터 분리되려 애쓰는 척하면서 정작 나도 크게 다를 바없이 고상한척만 하고 있었다는 위선적 태도가 견디기 어려웠던 것 같다.
나는 반복적이고 지루한 군생활에서도 하루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고, 그렇게 얘기하고 다녔다. 아무런 생산적인 기능을 하지 못하는 반복적인 하루에도 다름이 있음을 확인받고 싶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 하루는 남들과 달라야한다."는 허영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진의야 어쨌튼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일. 그리고 기록하는 일. 그리하여 정체되어 보이는 군생활에도 진보하는 게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일. 그것이 시간을 살리는 행위이자 내가 존재함을 확인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기록에 집착하게 된 시점이다.
III.
어쩌면 나는 고시를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을지도.
그런 내가 전역 후 수년의 시간을 고시 공부를 위해 "죽이고자" 마음먹은 것은 단순히 돈을 좇는 일을 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한다면 그것 역시 시간을 죽이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월급날을 기다리며 시간을 죽이는 모습은 내가 그리던 삶은 아니었다. 삼 년을 죽이는 것과 수십 년을 죽이는 것을 비교하자면 전자는 정말 짧은 시간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다. 외교관이란 직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비롯된 생각이었지만 어쨌튼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그렇지 않았지만.
첫 1차 시험에서 현저한 점수 차로 불합격을 한 날이었다. 나는 내가 상대해야 하는 시간의 진짜 크기를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죽여야하는 시간이 순식간에 1년 더 연장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사귄지 얼마 안 된 여자친구는 나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았다. 정신이 아찔해졌다. 좌절감이 물 밀듯이 몰려오는 것과 동시에 애써 외면하던 현실이 직시되었다. 죽이기에는 너무 압도적인 크기의 시간이 눈 앞에 놓여있다는 현실을.
내가 죽여야만 하는 시간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그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나는 더 이상 시간에 대한 생각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좌절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내가 그 동안 죽여 온 시간들이 시체처럼 늘어져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비극적인 광경으로부터 내 정신을 보호해야했다. 그래서 고시 첫 해부터 나는 시간 살리기를 그만 두었다. 기록을 그만 둔 시점이다.
IV.
나는 네 번째 스무 다섯살을 맞이하고 있었다.
세 번째 2차 시험이 끝나고 본가로 돌아와 방 청소를 하는 중이었다. 이제는 안 쓰는 책상의 서랍을 열었는데, 군복무 시절 때부터 쓰여진 노트들이 있었다. 얇게 먼지가 덮힌 커버. 눌러 쓴 글자 하나하나. 사소한 내용까지 꾸덕꾸덕 쓰여진, 시간을 살리고자 하는 발악이 느껴지는 노트.
훈련소에서 별을 본 일. 소대 배치 첫 날부터 맞선임에게 억울하게 몰려 분노한 일. 연등 시간에 공부해 스페인어 자격증을 취득한 뒤 느낀 희열. 첫 중대수인이 되었을 때의 설렘과 불안감. 기쁜일 슬픈일. 좋은일 나쁜일.
전역 이후에는 보다 드물어졌지만. 교환학생 첫 날 나홀로 타지에서 월세 계약을 한 뒤 느낀 뿌듯함. 여행 길에 만난 UN직원에게 들은 진심어린 격려. 스페인을 떠나기 싫어 생긴 우울증.
20대 중반까지의 나의 시간은 4년의 세월을 뚫고 정말 살아있었나보다. 그러나 내 시간의 생사 확인서는 스무 다섯 살이 된 해부터 그 기록이 끊겨져 있었다. 내가 시간 살리기를 그만 둔 시점이었다. 고시판에 뛰어들고자 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 스물 다섯살이었다.
V.
죽여도 남아 있는 것.
몇 번의 시험을 치르면서도 다른 진로를 생각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결국에는 시간을 죽이는 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결과로서야 증명되는 이 시험의 성격 상, 여기서 그만둔다면 나의 지난 시간들이 정말로 아무 의미 없이 죽어버린게 될 것 같아 두려웠다. 그래서 더욱 포기할 수가 없었다.
이번 시험에 불합격한다면 내 지난 고시 생활이 시간 죽이기에 불과했다고, 그렇게 판명날 수도 있겠다. "과정도 아름다운거야."라는 흔한 위로나 받게 되겠지. 그러한 자기 합리화가 무의미하고 결국 내 시간은 죽은게 맞을텐데 말이야. 주인을 잘못 만나 결실을 맺지 못하고 무의미하게 희생된 나의 시간들. pmp로, 낮잠으로, 게임으로, “무의미하게” 2년을 죽인 사람들보다 나는 더한 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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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청소를 마친 뒤, 얼마전부터 시작한 영어 회화 모임을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적적한 하루를 채워내기 위해 만든 모임이었다. 노트를 읽느라 방청소가 늦어진 바람에 자전거 패달을 열심히 밟아야 했다.
초저녁에 수분을 머금은 차가운 공기가 얼굴에 자꾸 부딪히는데 싫진 않고 문득 미소가 지어졌다. 내가 좋아하던 가을 촉감이다.
기록한적 없는 기억. 생각해보니 군 외출을 나오면 나는 항상 자전거를 타고 한강 공원을 달리고는 했다. 물 비린 냄새부터 풀벌레 소리까지 오감을 다해 해방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죽은 시간이 아니라 살아있는 시간임을 알게해주는 순간이었다.
분명 좋은 순간들은 있었다. 20대 초반 군바리의 한강 자전거 기억이 문득 서른 목전의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처럼, 지난 수 년간 독서실을 오가며 제자리 걷듯이 반복되던 하루 속에서도 살아남아 십수년을 같이 할 기억 조각들이 있었을거라 믿고싶다. 그니까. 죽은 시간 속에서도 알고보면 나는 항상 살아있었다고. 몇년 뒤 오늘을 떠올리면서 미소 지을 수 있는 때가 올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