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아닌 생각 #3
우울한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들어 올 때가 있다. 때로는 파도를 온 몸으로 받아낸 적도 있었다. 때로는 파도를 막아보려고 방파제를 쌓아올린 적도 있었다. 때로는 파도를 타는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서 애써 쌓아놓은 제방을 스스로 허물어 낸 적도 있었다.
1. 부정 (否定)
정신이 병든다는 것은 정말로 나라는 존재 자체에 대한 문제다. 연속적인 존재로서의 나를 일단 부정함으로써 과거와 지금의 내가 다른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했다.
4년 전 일이다. 그니까 고시를 시작할까말까 막 고민을 하던 시기다. 인생의 최저점. 아마도. 누군가의 말에 의하면 고시 첫 해에는 초심자의 패기로 똘똘 무장하여 웬만한 일에는 의연함을 유지할 수 있다던데, 그것이 나에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었다. 상황적인 문제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던 근본적인 문제들이 한 데 얽혀 해답 없는 고민들이 일상을 잠식했기 때문이었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지만 살아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심지어 그 의지라 함은 지렁이를 밟았을 때 꿈틀거리는, 겨우 그 정도인 삶에 대한 집착에 불과했다. 절대로 적극적인 의지는 아니었다. 매일 같이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보니 무엇이 정상적인 생각인지도 분간하기 힘들었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내가 우울한 사람이라는 사실이. 내가 나의 감정에 못 이겨 게으르고 나약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은 누군가에게 알릴 수도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였다. 그러다가 코로나 전염병이 발생하고 일상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는 상황까지 오자 내가 만들어낸 우울한 공간에서 나는 혼자 문드러졌다.
2. 봉투 (封套)
병원을 나왔다. 손에는 일주일 치 약봉투가 들려있었다. 요즘은 정신과에서 자체적으로 약을 조제해서 주나보다. 처방 기록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는 환자들을 위한 배려겠지 싶었다. 조현병 수준이 아닌 이상 적극적으로 삶을 이어나가보고자 병원 다니는 사람에게 무슨 불이익을 주고싶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뭐 세상이 아직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이상해보이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약간 설레기도 했다. 방법이 뭐가 되었든 서경증을 해결해준다면 기뻐서 하늘도 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뻣뻣한 손바닥을 파닥파닥 거리는 상상을 했다.
의지할 대상이 된 약봉투를 손에 꼭 쥐고 의욕적으로 자전거 패달을 밟았다. 병원 가는 길에는 지는 해가 도림천 물에 난반사 되는 모습을 보고 온갖 시상이 떠오를 정도로 감수성이 목젖까지 차오른 상태였는데, 고시촌 돌아오는 길에는 정신이 말똥하여 앞만 보고 달렸다.
그날은 공부를 일찍 끝냈다. '자기 전 약'을 먹으려면 어서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어차피 손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에서 공부를 더 해봤자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었다. 눈으로만 글을 읽으니 지루하기 짝이 없었기도 했고. 더군다나 이미 내 마음은 "약을 복용한 나"에 대한 설렘으로 가득해 오늘 공부는 이미 뒷전이었다. 병원 가기 싫다고 질질 끌던 좀 전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3. 증상 (症状)
덜덜덜거리는 냉장고 모터 소리에 눈이 떠진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두 시즘이다. 개운하지 않고 머리가 뿌옇다. 미간에 힘을 주고 생각해봤는데 새벽 다섯 시 즘에 해뜨는 걸 보고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유튜브에는 시청한 영상들 목록에 영상 수십개가 새로 추가되어있다. 스크린 타임 알람이 떴지만 애써 외면했다. 늦게 일어났으니 아침 점심은 스킵해야지. 그러면 살이라도 빠지겠지. 침대에서 뭉그적거리다가 뒤늦게 샤워를 하는데 스스로가 한심해서 눈물이 왈칵 나온다. 내일부터는 열심히 공부해야지. 그러지 않겠지만.
증상이라 함은 병이나 상처를 지닐 때 나타나는 상태나 모양을 가리키며, 질병 따위의 존재를 인식하는 상태를 말한다.
4년 전의 나에게 증상은 절제부족과 무기력증으로 나타났다. 질병의 존재를 외면하고 오랜 기간 허덕였다. 파도에 몸이 깎여나가는지도 모르고 우울함에 취해 내일의 나에게는 증상이 나타나지 않을거라고 막연한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4년 뒤의 나는 서경증을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방파제를 쌓아올리기로 했다.
-- 3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