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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cado May 11. 2024

분노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내가 18살 때, 태권도 특기자로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여성을 소개받았다. 당시 나는 비전 없는 자퇴생 신분에 온통 미래 걱정으로 연애를 할 의지나 기력조차 없던 nerd 그 자체였다. 그런 나에게 같은 학원을 다니던 친구가 소개팅을 제안했다.

     고등학교 중퇴 사실을 알게 되면 보통 사람들은 낙오자, 문제아로 인식하며 색안경을 끼고 거리를 둔다는 사회적 시선을 알고 있고, 당시 내 상황이 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를 소개받을 생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주선자 친구는 거절을 만류하며 한 번 만나보라고 적극 권했다. 결국 나는 일요일 오후에 딱히 할 일도 없으니 알겠다며 나가보겠다고 했다. 내 인생의 첫 소개팅이었다.


     약속 당일, 약속장소인 번화가의 한 카페에 도착 후 입구와 가장 먼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그녀를 기다렸다. 얼마간의 기다림 후 약속시간이 되자 문이 시원하게 열리더니 큰 키에 팔다리도 길쭉한 여성이 들어와서는 아주 잠깐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한눈에 나를 알아보고는 성큼성큼 다가왔다.

     걸을 때마다 5:5 가르마를 타고 턱선에서 싹둑 잘린 단발 머리칼이 찰랑였고, 하얀 피부에 반짝이던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그 시절 ceci, ecole, cindy the perky, elle girl 잡지와 johnsons clean&clear 티브이 광고에서나 볼 법한 수수한 여고생 모델의 느낌이 강했다.

     그녀가 내 앞에 서자, 나는 자동반사처럼 엉덩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다 허벅지로 테이블을 치는 어리숙한 모습을 보였고, 순간 컵에 있던 아이스커피가 넘치며 테이블 위로 조금 쏟아졌는데, 그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녀가 불쑥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동시에 반갑다며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순간 칙칙했던 카페 분위기가 생기를 띠기 시작했고 창가로 들이치는 햇살은 스포트라이트처럼 그녀를 향해 비추기 시작했다. 초중고 모두 남녀 공학을 다녔지만 그렇게 예쁜 아이는 난생처음이라 구경을 하듯이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와 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자체만으로 마치 내가 무슨 대단한 남자라도 된 것처럼 턱이 들리고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자리에 앉자마자 어깨에 메고 있던 메신저백의 반도를 들춰 머리 위로 빼더니 자신의 무릎 위로 가지런히 놓았고, 양팔을 들어 테이블 위로 팔꿈치를 대고는 양 손바닥으로 턱을 받치며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내 이름 기억 안 나니? 정말 오랜만이다."라고 말했다. 휴지로 테이블에 흘린 커피를 닦던 나는 순간 이게 무슨 의미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고,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인가 싶어 한참 동안 기억을 더듬었다. 그녀는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깔깔대며 웃기만 했다.

     사연인 즉, 우리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같은 보습학원에 다녔던 친구 사이였다. 심지어 우리는 같은 반일 때도 있었다고 한다. 당시 담임선생님께서 국어선생님이셨고, 매월 마지막주가 되면 담임선생님께서 자습하려고 늦은 밤까지 남은 아이들을 불러다 치킨을 사주셨던 이야기까지 듣고서야 완벽하게 기억이 났다. 당시 시점에서는 6년 전이기도 했고, 우리는 성장기를 거치며 겉모습이 너무 달라져 있었고, 사실 나는 학창 시절 남에게 관심도 없고 시야도 좁은 아이였다. 그녀의 이름조차 기억에 남았을 리 없었다.

     그녀와 주선자는 같은 아파트에서 자라온 친한 친구였고, 최근 두 사람이 무슨 대화를 나누다 그녀가 우연히 내 얘기를 했는데, 주선자가 내 이름을 듣더니 지금 자신과 같은 학원에 다닌다고 알려줬단다. 이후 그녀는 나를 알고 있는 사실을 숨기고 소개팅처럼 만나게 해달라고 주선자 친구에게 부탁을 했단다.

     우리는 성장기를 거치며 서로 몰라보게 달라진 키와 외모로 한참을 신기해했고, 어린 시절에 대한 추억으로 이야기꽃을 정겹게 피우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그날부터 거의 매일 밤마다 통화를 하면서 많은 정말 대화를 나눴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사이나 다름없던 관심밖의 인물이 순식간에 나의 일상에 침투해 나란 사람에 대하여 깊이 알아가는 느낌이 새로웠다. 당시 외톨이였던 나는 속에만 담아둔 채 차마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함께 나눌 친구가 생겨서 좋았다. 그 후로 주말마다 우리는 조조영화를 봤고, 시간이 남으면 함께 점심식사를 하기도 했었다.


     하루는 그녀가 닭갈비를 좋아하냐고 물었다. 나는 아직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내 팔을 당겨서 무작정 한 식당으로 끌고 갔다. 그렇게 난생처음 닭갈비라는 음식을 먹었다.

     커다란 불판 위에 토막 난 닭고기를 매콤한 양념과 야채에 볶아서 먹는 음식이었다. 젓가락으로 닭고기를 다 건져 먹은 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계산을 하려는데, 그녀는 내 손목을 붙잡고선 아직 끝난 게 아니라며 “여기 볶음밥 추가요.”라고 외쳤다. 그러자 식당의 직원분께서 우리가 먹고 남긴 철판에 밥과 참기름 등을 부어 현란한 주걱질로, 말 그대로 볶음밥을 만들어 주셨다. 충격이었다.

     어려서부터 늘 새것에만 익숙했던 나로서는 중화요리의 볶음밥처럼 주방에서 갓 조리된 볶음밥이 새 그릇에 정갈하게 담겨 나올 줄로만 기대했는데, 우리가 먹고 남긴 음식물 찌꺼기에다 밥을 섞어 볶는다는 것이 무척이나 비위가 상하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녀는 철판을 박박 긁은 숟가락으로 볶음밥을 한입 떠서 내 입으로 가져오는데, 나는 거부감이 들어서 차마 입을 벌리지 못했다. 그래서 “아니야. 난 배불러. 너 많이 먹어.”라며 몇 번이나 정중하게 거절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맛있으니까 쫌 먹어 보라며 자꾸만 내가 입을 벌리기를 강권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하면서 수차례 거절했음에도 계속 먹어보라며 숟가락을 들이미는 게 성가시고 짜증이 났던 나는 “제발, 개밥 치워!”라고 소리치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고, 순간 숟가락은 바닥에 나뒹굴며 식당 안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우리에게, 아니 정확히 나에게 집중됐다.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던 그녀의 표정에서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고, 그제야 내 행동이 부끄러우면서도 그녀에게 너무 미안했다.

     나는 그때 그녀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눈물이 고이던 슬픈 눈빛 그런 게 아니라, 필살기를 쓰기 직전에 분노 게이지를 모으던 광전사처럼 초점이 사라진 어두운 눈빛이었다.


     어쩌면 그날 나는 엘리트 태권도 유망주의 발차기 콤보를 맞고서 무자비한 폭행치상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성난 그녀를 어르고 달래느라 그녀의 집 앞까지 따라가 배웅을 했고, 그 과정에서 결국 입술까지 허락한 후에야 사지 멀쩡히 귀가할 수 있었다고 본다.






사진: Pecado

글: Pec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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