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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cado May 14. 2024

소주가 좋았던 마지막 추억이라면



     오늘 조식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노신사께서 외투 주머니를 뒤덕이다 200ml 포켓소주를 꺼내 몰래 커피잔에 붓던 중 나와 눈이 마주쳤다. 재즈가 흘러나오는 차분한 분위기의 조식당에서, 갑자기 매번 상상했던 일이 드디어 현실로 벌어졌다.

     행색을 보아하니 이런 곳에서 소주나 드실 분은 아닌 것 같은데, 객실 미니바의 독주를 모두 소비하고도 부족했을 때 수틀리면 바로 깔 수 있는 비상용으로 하나 챙겨 오신 느낌이었다. 순간 그분과 함께 온 자손들이 핫푸드 세션에서 접시에 담을 음식을 고르는 모습이 보였고, 얼마나 시달리셨으면 혹은 답답하셨으면 아침부터 위로 삼을 수단이 필요했을까 이해도 됐다.

     무릇 술이란, 즐겁게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하여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나 살다 보면 타인과 어울리기 위해 술을 마시기보단 스스로의 감정을 다스리고 위로하기 위해서 마시는 날이 많다고 느낀다. 아무래도 취기가 돌면 긴장이 감소하고, 타인과 경쟁을 하고 싶지도 않고, 내 의사를 표출하려는 의지도 모두 꺾이기 때문이다.

     제아무리 5성 호텔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하더라도 마음이 편치 않다면 집에서 홀로 티브이를 벗 삼아 보내는 시간이 더욱 그리울 수밖에 없다. 노신사께서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했겠지만 이번 일정에서는 그게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니 작은 일탈로 재미를 추구하는 동시에 자손과 웃음 짓는 식사를 해보려고 나름 소주라는 매개물이 필요했던 것이지. 갑자기 나폴레옹처럼 티스푼에 올린 라빠르쉐 각설탕에 브랜디를 붓고 불을 붙인 것까진 아니었으니 괜찮았다.

     아무튼 이런 생각의 꼬리 잡기 끝에, 나는 입술을 굳게 다문 채 지그시 눈을 감고서 살짝 고개를 끄덕여 묵시적 동의의 사인을 보냈다. 그러자 노신사께서는 멋쩍은 미소를 보이셨고, 한 잔 하지 않겠냐는 듯이 내쪽으로 술병을 슬쩍 내미셨는데 느린 목례로 정중히 사양했다.

     기껏해야 여름철 외출하면 카페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투고로 주문해 두어 모금 마신 후 힙플라스크에 담아 온 보드카를 부어 마시던 나로서는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것을 능숙하게 실행에 옮기는 노신사의 호방한 기상이 내심 부러웠고, 지켜보는 내 심장이 다 쫄깃했다.

     문뜩 군입대를 앞두고 부친의 술을 도둑질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처음으로 양주에 호기심이 생겼을 때 부친께서 진열장에 모아둔 전리품들 중 뒤 열 가장 구석에 처박힌 진갈색 술병 하나를 꺼내 뚜껑을 열었다. 묘한 향기가 났는데 그 순간 무슨 용기였는지 주둥이를 입에 가져가 크게 한 모금 벌컥 들이키자, 목에서 불이 나고 날숨에서 역한 냄새가 났다. 놀란 나는 질끈 눈을 감고서 발을 동동 굴렀고, 그때 손에서 놓친 술병이 대리석 바닥 위에 그대로 낙하하며 반쪽이 났다. 큰 일이었다. 나는 당시 세상에서 가장 두려웠던 존재가 부친이었다. 갓 스물이 되고 몰래 엄마차를 운전했다가 돌아왔는데 같은 자리에 주차하지 못해서 들켰던 때보다 더 큰 두려움과 불안이 온몸을 휘감았다. 그때 그 쪼들림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소주는 우리의 일상에 늘 가까이 있어서 구하기도 쉽고, 취기가 오르는 비용도 가장 저렴하기 때문에 친숙한 술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정이 안 간다. 나의 대학시절과 직장생활을 돌아보면 대인관계의 시작과 끝에는 늘 소주가 함께 했었는데, 소주 그 자체를 좋아하거나 원해서 마셨던 기억은 거의 없다.

     소주가 좋았던 마지막 추억이라면 내 생애 스물세 번째 첫눈이 내리던 밤, 갓 연애를 시작한 여자친구와 한 대폿집의 비좁은 다찌에 몸을 구겨 앉아, 서로의 몸이 닿다 못해 점차 기대어 둘 사이에 국물 요리 하나를 두고 소주잔을 마주치던 기억이다.

     당시 나는 갓 군복무를 마친 후 복학을 준비하던 학생이었고, 그 친구는 하염없이 늦어지는 데뷔로 혹독한 준비의 시간만 다지느라 심하게 시들어 있던 연습생이었다. 함께 미래를 그리기도 어려웠고 근시일 내 어떤 약속을 하기도 힘들었던 두 사람이 온갖 속박과 흥정 투성이의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 안갯속으로 몸을 숨기고 현실의 불만을 쏟아내기에는 대폿집이 최적의 장소였고, 감정이 우울에 잠식당하기 전에 빠르게 취하려면 소주만큼 가성비가 좋은 술도 없었다.

     두 사람이 함께 소주를 마시던 그 순간만큼은 어떤 토로도 공통의 감정을 사로잡을 수 있었고, 알코올 섭취량과 누적된 대화 시간에 비례해 맹목적인 신뢰를 느낄 수 있었으니까. 서로의 볼과 코가 벌겋게 익을 정도로 취하면 서로를 끌어안고 따뜻한 온기를 느끼는 일만으로도 크나큰 위로가 되었으니까. 그 역겹고 비릿한 취미의 소주를 즐겁게 마실 수 있던 것이지.

     그 친구는 소주를 들이켜고 나면 안주를 찾기보단 자신의 손에 바른 핸드크림의 향을 맡았다. 소주의 알코올 향이 역하니까 일부러 상큼한 시트러스 향의 핸드크림을 발랐다고 했다. 이미 들이킨 알코올의 잔향이 식도를 타고 몸안 가득히 퍼지는 와중에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며 빈정거리자, 그 친구는 말없이 빈 잔에 소주를 채우고는 잔을 들어 내 잔에 부딪혔고, 내가 소주를 들이켜자 기다렸다는 듯이 한 번 맡아보라며 자신의 손등을 내 코 앞으로 가져왔다. 말을 말로 되갚지 않고 부드러운 행동으로 내 마음을 사그라들게 만들던 재주가 있었다. 향기도 좋고 기분도 좋으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 후로 소주를 마실 때마다 그 친구의 손목을 잡고 내 코에 대면서 향기를 맡았다.  "너는 손등에 향긋한 지중해를 담고 왔구나."라고 실없는 농담을 해도 그 친구가 밝게 웃어서 좋았다. 나는 그 시간이 영원하길 바랐던 것 같다.


     술은 말이 없다. 그저 내 차가운 속을 뜨거운 열기로 채우고, 지우고 싶은 기억들을 흐리게 만들 뿐이다. 그림도 말이 없다. 그저 선과 색으로 내 시야를 채우고, 과거에 내가 이해할 수 없던 사건들을 이해시키며 상처를 보듬을 뿐이다. 그러나 글은 말이 많다. 내가 잊고 지냈던 힘든 기억을 다시 상기시키고, 내가 이미 이해하고 넘긴 일들도 다시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들어 꼭 시시비비를 가리자고 싸움을 걸어온다. 역한 냄새만 맡아도 많은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그 기억을 곱씹으려면 반드시 삼켜야만 하는 쓴 맛의 소주처럼. 삼킬수록 끝내 분노와 환멸을 일으켜 그 울분을 다시 살아갈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힘이 글의 매력이다. 생각의 꼬리 잡기는 소주와 글의 매력이 서로 닮았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사진: Pecado

글: Peca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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