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그럼에도'의 2024년 5월 과제 도서는 <호모 데우스>. 직전엔 <사피엔스>를, 몇 년 전엔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을 다뤘으니 유발 하라리의 빅히스토리 3부작을 한 번씩 찔러본 셈이다. 멤버들은 하라리의 남다른 통찰력과 현란한 수사에 놀라면서도, 그가 제시하는 우울한 미래, 즉 디스토피아에 대해서는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 가라사대, 호모 사피엔스는 대규모로 유연하게 협력하는 능력을 통해 지구의 패권을 차지했고, 상호주관적 실재라고도 불리는 허구의 이야기를 만드는 능력을 통해 신을 몰아냈다. 인본주의, 그중에서도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를 정착시키면서 기아, 역병, 전쟁의 공포를 없앴고 불멸, 행복, 신성을 꿈꾸며 신이 되려 하고 있다. 그런 인류가 바로 책의 제목이기도 한 <호모 데우스>다. 신이 된 인간, 즉 신인(神人)이라는 뜻이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들으면 바벨탑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어마어마하게 새로운 힘을 갖게 되면, 그리고 기아 역병 전쟁의 위험이 마침내 사라지면, 인류는 무엇을 할까? 과학자, 투자자, 은행가, 대통령은 하루 종일 무엇을 할까? 시를 쓸까? (...) 인류는 지금까지 이룩한 성취를 딛고 더 과감한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이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과거의 기록과 현재의 가치들을 고려할 때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다. (...) 짐승 수준의 생존 투쟁에서 인류를 건져 올린 다음 할 일은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하고,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하지만 소수의 특권층만이 거기에 도달할 것이며, 나머지는 거대 시스템 안의 작은 칩으로 전락할 것이다. 결국 자유, 평등, 박애라는 근대의 가치는 시대적 소명을 다할 것이다. 이것이 유발 하라리가 ‘미래의 역사’라고 부제를 붙인 <호모 데우스>에서, 하나의 가능성일 뿐임을 애써 강조하며 보여준, 인류의 섬뜩한 미래다.
“알고리즘이 인간을 직업시장에서 몰아내면 전능한 알고리즘을 소유한 소수 엘리트 집단의 손에 부와 권력이 집중될 것이고, 전례 없는 사회적 불평등이 발생할 것이다. 아니면 알고리즘들이 스스로 주인이 될지도 모른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벨탑은 인간들이 하늘에 닿으려고 쌓았던 높고 거대한 탑이다. 인간들의 오만한 행동에 분노한 신은 본래 하나였던 언어를 여럿으로 분리하는 저주를 내렸다고 전한다.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생화학적 알고리즘으로서 비유기적 알고리즘과 통합된다는 게 이 책의 포인트. 이때 데이터의 흐름을 전도하는 종교가 그 혁명적 변화를 주도하게 되니, 이름하여 데이터교다. 데이터 앞에서는 인간의 경험과 통찰력 같은 자유주의 시대의 가치는 무력해진다. 그는 “그 시스템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알기만 하면 그날로 자유주의는 붕괴할 것이다”라면서, “개인은 빅브라더에 의해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조용히 붕괴할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하라리는 매우 교묘하게도 아니 어쩌면 너무나 지혜롭게도 이 같은 어두운 전망이 가져올 무게를 혼자 감당하지 않으려는 장치도 곳곳에 심어 놓았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기 위해서라고 수시로 강조하고 있는 점, <자본론>의 경우처럼 역사에 대한 어떤 예측에 대해 그 후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간 사례를 제시한 점, 그리고 마지막 페이지에서는 아예 자신의 핵심 주장에 의문을 던지라고 부추기고 있다는 점 등이 그 증거다.
나는 몇 년 전 빅데이터를 살펴보며, 내가 오랫동안 공들여 공부했던 기호학과 구조주의의 인문학적 통찰이 빅데이터 분석 앞에서 더는 명함을 내밀지 못할 것임을 직감한 적이 있다. 호모 데우스는 그때 내 직감에 대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다음 책으로 한병철의 <리추얼의 종말>을 읽기로 했다. 한병철은 하라리만큼이나 알고리즘이 지배하는 세상을 우울하게 바라보지만, 그와는 달리 이를 극복할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는 내 의견에 다들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