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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살의 산책자

이야기가 있는 다큐드로잉 22

by 까칠한 서생

※ 이 글은 수정·보완되어 2025년 11월25일 출간된《베이비부머, 네 겹의 시간을 걷다》(루아크 펴냄)에 수록되었음.


1.


우리 가족이 산골 마을에서 이웃 소도시로 이사 한 바로 다음 날이거나 다음다음 날이었을 것이다. 가족들이 이삿짐 정리에 분주한 틈을 타 일곱 살짜리 꼬맹이는 가출을 감행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오전 열 시 무렵부터 오후 두세 시까지 약 네댓 시간 동안의 일탈이었다. 아이를 잃어버렸다고 온 집안이 난리가 난 그 시간 동안, 그 꼬맹이는 1920년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의 쇼윈도를 배회한 발터 벤야민이거나,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의 종로통을 두리번거린 소설가 구보(仇甫) 씨가 되었다.


집을 나와 찻길을 따라 처음 간 곳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장터였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그곳은 그 도시에서 가장 큰 시장인 ‘중앙시장’이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날이 마침 장날이었다. 늘 보던 사람만 보았고 늘 변화 없는 마을과 산과 논밭에 익숙해진 어린 내 눈에 그 광경은 너무나도 경이로웠다. 다양한 행색의 사람들과 점포나 좌판에 늘어놓은 물건들 모두가 시각적인 충격을 주었지만, 그중에서도 몇 가지 장면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짚으로 엮어서 쌓아놓은 계란 꾸러미들, 어떤 아저씨가 자신이 직접 잡아서 판다는 박제된 곰, 세상에 저런 색도 있구나 싶을 만큼 알록달록한 옷가지, 소달구지에 가득 실린 쌀가마니나 땔감들은 지금까지도 내 기억 상자 속에 선명히 남아있다.


여러 종류의 탈것들도 내 눈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열흘에 한 번꼴로 지나가던 군용 트럭도 넋을 놓고 바라보았던 나에게, 끊임없이 나타나는 버스나 트럭 그리고 택시나 각종 승용차 들은 눈을 황홀하게 했다. 무엇보다 사람의 생물학적 조건을 뛰어넘는 그 속도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당시 그 도시에서 가장 번화했던 네거리 모퉁이에서 연신 고개를 좌우로 움직이며 그 차들을 행복하게 바라보았다. 네거리 한복판에서 그 차들을 통제하던 교통경찰도 특별한 구경거리였다. 그때 교통경찰은 나를 매혹한 차들을 향해 간단한 손짓만으로 이리 가라 저리 가라 방향을 지시하는 위대한 존재로 보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장터에서 만난 사람과 물건 들에 대한 호기심이 전근대에 대한 미련이었다면 시가지에서 만난 탈것들에 대한 몰입은 근대에 대한 동경이었다.


2.


“이 시기에 등장한 새로운 문화는 새로운 군중을 창출했다. 이 군중 속 개인들은 선정적인 일상생활의 구경거리를 탐욕스럽게 소비하면서 일상생활이 구경거리로 변형되는 과정을 다 함께 즐겼다. 이로써 파리는 ‘19세기의 수도’라는 꼬리표를 얻었고, 이미 20세기를 예견하고 있었다.” (『구경꾼의 탄생』 중에서)


벨 에포크(Belle Époque)는 프랑스어로 ‘아름다운 시절’ 또는 ‘좋은 시절’이라는 뜻으로 1871년부터 1914년까지 약 40여 년간 이어진 유럽의 평화롭고 번영했던 시기를 일컫는다. 그 중심은 프랑스의 수도 파리였다. 벨 에포크의 초반에 해당하는 19세기말의 파리는 그중에서도 특히 새롭고 다양한 구경거리와 구경꾼을 탄생시킨 시기로 평가된다. 일간신문이나 관광 안내 책자 따위의 대중출판, 대로(大路) 문화, 모르그(시체 공시소), 밀랍박물관, 파노라마와 디오라마, 그리고 영화 등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구경거리들이 장관을 이루었고, 자본주의의 급격한 성장세에 맞춰 형성된 중산층은 구경꾼이 되어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구경꾼의 탄생』에서는 구경꾼을 근대사회 대중문화의 원형질로 해석한다.


당시 어느 구경꾼은 “엄청난 군중, 놀라운 숫자의 마차와 거리의 상인들이 서로 뒤섞인 채 이리저리 돌진하고 있다. 온갖 종류의 상품을 실은 말과, 구경하는 동시에 구경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인도에 놓인 의자들, 프랑스와 이탈리아 가수들과 오케스트라가 있는 카페, 창백한 요리사, 식당 경영자, 꼭두각시, 서커스, 거인, 난쟁이, 맹수, 바다 괴물, 밀랍상, 자동인형, 복화술사 (...)”라고 열거하며 폭포처럼 쏟아지던 구경거리들을 숨 가쁘게 기록했다.


벨 에포크 시대 파리의 야경


3.


“국도는 직접 걸어가는가 아니면 비행기를 타고 그 위를 날아가는가에 따라 다른 위력을 보여준다. 텍스트 역시 그것을 읽는지 아니면 베껴 쓰는지에 따라 그 위력이 다르게 나타난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사람은 자연 풍광 사이로 길이 어떻게 뚫려있는지를 볼 뿐이다. 그의 길은 그 주변의 지형과 동일한 법칙에 따라 펼쳐진다. 길을 걸어가는 사람만이 그 길의 영향력을 경험한다.” (『일방통행로』 중에서)


독일의 문예학자 발터 벤야민은 구경꾼 중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구경꾼을 찾아냈다. 바로 ‘산책자[Flâneur, 플라뇌르]’였다. 산책자는 벤야민이 보들레르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심화시킨 개념이다. 그에게 산책자는 단순히 거리를 걷거나 구경하는 사람이 아니라, 도시의 군중 속에서 익명성을 유지한 채 주변을 관찰하고 사유하는 존재를 의미한다. 산책이라는 행위는 이로써 취미나 여가의 차원을 넘어 인문학적 사유의 한 형태로 격상되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이 잘 담겨 있는 책이 1928년 발표된 『일방통행로』이다.


이 책은 주유소, 비상구, 간판, 벽보, 플래카드, 광고판, 쇼윈도 등 파리의 크고 작은 랜드마크에서 따온 소제목 아래, 그와 관련되거나 거기서 연상된 짧은 생각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벤야민은 그 장소들을 실제로 산책하면서 그곳에서 떠오른 단상들을 기록했다. 얼핏 가벼운 수필집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는 자본주의 문명, 기술의 발전, 소비사회 그리고 역사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그는 ‘몽타주’ 방식으로 이러한 단상들을 배치했다고 한다. 몽타주(montage)란 여러 개의 짧은 장면이나 이미지, 소리 등을 편집하여 나열함으로써 새로운 의미나 감정을 만들어내는 기법을 말한다. 이 책의 한국어판 해제에 따르면, “몽타주 방식은 전통적 의미의 총체성이 붕괴된 모더니티의 공간에서 파편화된 경험을 가지고 총체성을 구성하는 방법적 원리”라고 한다.


4.


“표 찍읍쇼- 차장이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구보는 단장(짧은 지팡이-인용자)을 왼팔에 걸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러나 그가 그 속에서 다섯 잎의 동전을 골라내었을 때, 차는 종묘 앞에 서고, 그리고 차장은 제자리로 돌아갔다. 구보는 눈을 떨어뜨려, 손바닥 위의 다섯 잎 동전을 본다. 그것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뒤집혀 있었다. (...) 구보는 그 숫자에서 어떤 한 개의 의미를 찾아내려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부질없는 일이었고, 그리고 또 설혹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적어도 ‘행복’은 아니었을 것이다.”(『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 중에서)


1930년 문을 연 미츠코시 백화점 경성지점


1920년대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에 발터 벤야민의 『일방통행로』가 있었다면,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수도 경성에는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이 있었다. 1934년 신문에 연재되었고 1938년에 단행본으로 나온 소설이다.


박태원은 근대적 의미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적인 ‘산책자’였다. 그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분신인 ‘구보’를 내세워 당시 경성의 도시공간을 정밀하게 재현해 냈다. 단편소설 ‘애욕’(1934년)에서는 경성 시가지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더 생생하다. “대한문 앞에서 덕수궁 돌담을 끼고 정동 골목을 쑤욱 들어가노라면 경성지방법원 맞은편 쪽에 있는 것은 용강문, 거기까지 가지 말고 바른편에는 전등 달린 전신주, 오른편에는 전등 안 달린 전신주 그사이에 음침하게 울적하게 닫혀있는 문이 바로 건극문이다.”


이러한 묘사기법은 고현학(考現學)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고고학이 과거의 편린 속에서 과거의 삶을 규명하는 것이라면, 고현학은 동시대의 풍속을 통해 당대인들의 일상적 삶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학문이다. 이 학문은 도쿄의 긴자거리를 중심으로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급속히 도래한 서구화 경향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고찰하려는 목적에서 출발했다. 박태원은 동경 유학 시절에 이 방법론을 접하고 나서 이를 자신의 창작 방법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하지만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은 이러한 기법을 넘어서서, 좌절된 아나키즘의 정치학을 모더니즘의 예술로 승화한 소설이라는 평가도 있다. 『경성 모더니즘』의 저자는 앞의 인용문에 나오는 행복에 대해, “그가 찾고자 했던 ‘한 개의 의미’, 그것은 조선의 아나키즘에 대한 열망이었고 이때 ‘행복’은 모든 아나키스트가 공통적으로 ‘원하는 최대의 욕망’이 된다.”라고 분석한다.


5.


19세기말 파리, 1930년대 경성, 1960년대 말의 지방 소도시. 전혀 다른 시대와 장소지만, 내 마음속에는 신기하게도 이 세 공간이 나란히 놓여 있다. 19세기말 파리는 문예이론가 발터 벤야민이 깊은 사유에 잠긴 채 천천히 거닐던 때의 원형이 만들어지던 도시다. 1930년대 경성은 소설가 박태원이 ‘구보’라는 이름으로 길 위를 헤매며 시대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공간이다. 그리고 1960년대 말의 그 소도시는, 어린 내가 놀라움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세상을 처음 바라보게 해 주었던 곳이다.


겉보기엔 모두 다르지만, 이 세 시대의 도시들은 자본주의가 막 성장하기 시작하던 시기를 공유한다. 농촌 중심의 공동체는 무너지고, 사회는 갈수록 부를 중심으로 재편되어 갔으며,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돈과 상품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파리는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꽃핀 중심부였고, 경성은 식민지라는 이름 아래 강제로 근대화된 변방이었다. 1960년대의 한국 소도시는 국가 주도의 산업화가 서서히 진행되던 곳이었다. 방식은 달랐지만, 모두 자본주의가 삶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하고 있던 시·공간이었다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 속에서 살아간 사람들의 운명은 어땠을까. 벤야민은 자본주의가 낳은 전쟁과 파시즘의 공포 속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박태원은 자본주의를 피해 떠난 북에서 또 다른 억압에 짓눌리며 불행한 최후를 맞았다. 그들과 같은 반열에 나를 놓을 수는 없겠지만, 나 역시 자본주의의 거친 파도를 견디며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지금은 AI의 물결이 모든 이념과 체제를 삼켜버릴 듯한 새로운 시대를 다소 비켜선 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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