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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간송미술관을 가다

by 까칠한 서생

지난 7월말, 삼복 더위에 찾아간 곳이 하필이면 가장 무더운 분지, 대구의 간송미술관이었다. 내 생애 세번째로 이십년만에 방문한 대구는 간송미술관에서의 유쾌한 경험으로 인해, 역사의 흐름을 역행하는 수구꼴통의 고장이라는 오명을 적어도 내 선에서는 '쬐끔' 덜 수 있게 되었다.


기획전인 #화조미감 은 조선후기 미술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나, 눈에 확 띄는 작품은 없었다. 그대신 상설전시장에서 두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게 수확이었다.


우선 #백자청화철채동채초충난국문병 이라는 길고 어려운 이름의 조선백자. 전시장 어디에도 없는 이름풀이를 내 일천한 지식으로 해보자면, '풀과 벌레와 난초와 국화 무늬를 푸른 색으로 그린 다음 철과 동으로 물들여 만든 백자 병'이라는 뜻이다. 어느 다큐에서 영상으로 처음 봤을 때의 감동보다는 덜했지만, 그래도 과연 "조선백자에서 사용된 안료와 조각기법이 이처럼 완벽하게 구현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설명문에 걸맞는 품격을 보여주었다.


다른 하나는 #매화서옥 이라는 이름의 수묵화. 추사의 제자 조희룡이라는 분의 그림이라는데, 그렇게 유명한 스승을 두었고 저렇게 훌륭한 작품을 남긴 분을 왜 여태 몰랐을까. 수묵화의 특징이 '여백의 미'일진대, 이 그림은 그에 도전장을 내밀듯이 화면 전체를 다양한 농담의 수묵으로 채움으로써, 수묵의 무채색만으로도 그림은 충분히 화려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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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간송미술관에 갔을 때도 그랬지만, 간송 전형필 선생의 고귀한 뜻에 새삼 머리가 숙여졌다. 문화는 산업으로서 수익을 내는 수단이기 이전에, 공동체의 보이지 않는 자존과 긍지와 미적 감수성을 높이는 공동의 자산이다. 새 정부의 문화체육부장관은 사기업의 CEO 출신이라는데, 그 사람의 능력이나 됨됨이를 떠나 그런 캐리어의 인물이 대한민국 문화의 수장이라는 점이 솔직히 맘에 안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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