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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일리 Aug 16. 2020

연산동에서 카프카를 읽다

“속았구나! 속았어!

잘못 울린 밤의 종소리를 따르다 보니 ―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되었구나.”     

- 카프카, <시골 의사> 중에서


서점 <카프카의 밤>이 아니었다면, 연산동은 나와 별 인연 없는 곳으로 남았을 것이다. 한 도시에서 거의 평생을 살아도, 어떤 동네는 영영 미지의 장소로 남기도 한다. 연산동도 그런 곳 중 하나였다. 어느 날, 빌릴 책이 <연산도서관>에 있어 버스를 두 번 타고 그곳까지 가게 됐다. 버스에서 내리자 한두 방울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폐관 시간은 다 되어가는데 하필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고 말았다. 허둥대다 순찰 중이던 경찰의 도움까지 받으며 겨우 당도할 수 있었다. 무사히 책을 빌리고 가쁜 숨을 진정하며 나오는데 도서관 바로 정면에 <카프카의 밤>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작은 서점이었다. 마침 책방지기가 출타 중이어서, 창 너머로 홀린 듯이 책방을 구경했다. 카프카 전집과 동네 서점 에디션, 그리고 독립 출판물 들이 눈에 띄었다. 코너에는 안락의자 하나와 긴 스탠드 조명이 놓여 있었는데, 누군가의 서재라고 해도 좋을 만큼 친밀하고 소박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푹 파묻혀 보고 싶었다.      


얼마 안 가 <카프카의 밤>에서 진행하는 독서모임에 참가하게 됐다. '밤의 카프카'와 영혼의 쌍둥이인 책방지기, 쉬는 시간에 아이들을 불러모아 책을 읽어준다는 초등학교 교사,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청년, 자동차 딜러에서 연극배우로 변신한 중년의 남성 이 주요 멤버였다. 참여자들은 매시간마다 질문을 준비해 갔고, 독서교육 전공자인 현지 씨가 그 질문들을 노련하게 배치해서 대화를 이끌어냈다. 한두 줄의 질문들은 풍성해지고 깊어졌고, 다음 시간에 그것을 글로 써서 또 한 번 나누었다.      


<카프카의 밤>과 <연산도서관>이 만나 독서모임의 규모가 확장되기도 했다. 2019년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으로 진행된 <카프카처럼 읽고 카프카처럼 쓰기>가 그것이었다. 서점 <카프카의 밤>을 드나들면서도 다시 카프카를 읽어볼 생각은 못했었는데, 비로소 카프카를 다시 만날 기회였다.      


카프카의 두꺼운 단편집을 처음 샀던 것은 이십여 년 전이었다. 그 당시 나는 난해한 코드로 가득한 그 미로를 향해 나아가지 못했다. 책은 쭉 서가에 꽂혀 있기만 했다. 서울로 취업을 하면서 함께 상경을 했고, 그후 낙향했으며 그 후 이사를 갈 때마다 서가에 내내 머물렀다. 아주 긴 잠이었을 것이다.       


카프카의 작품 중 단편 <법 앞에서>,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시골의사> 그리고 중편 <변신>을 스무 명 남짓 되는 분들과 함께 읽었다. 동네 주민들을 비롯해서 평소 연산도서관을 자주 이용하던 분들이었다. 그렇게 다양한 연령과 성별, 직업의 사람들과 매주 만나 카프카를 읽었다. 온라인이 아닌 현장에서 집단지성의 향연이 펼쳐졌다. 한 마디씩 던지는 말들에서 반짝반짝 스파크가 일어났다. 무심코 던진 말에 유레카를 외치기도 하고 덜 익은 생각을 함께 뭉치고 익히기도 해보았다. 몹시도 멀게 느껴졌던 프라하의 카프카는 연산동에서 비로소 윤곽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법 앞에서>는 불과 두세 페이지의 짧은 단편이지만, 기만당한 시골 사람의 한평생을 얼얼하게 보여준다. 시골 사람은 문을 통과할 수단, 혹은 부술 수단 그 무엇도 갖지 못한 채 문지기가 문 안으로 들여보내 줄 날만을 기다린다. 그러다 임종이 다가와서야 그 입구가 단지 자신만을 위해서 정해진 곳이었음을 알게 된다.      


<법 앞에서>가 문으로 들어가는 데 실패한 시골 사람의 이야기라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우리 밖으로 나가는 데 성공한 원숭이의 이야기다. 시골 사람의 무능함과 원숭이의 영리함이 대비된다. 빨간 피터는 “저는 자유를 원치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의 출구만을 원했습니다.”라며 자유'와 '출구'를 구별해낸다. 그리고 기어이 출구를 찾아 ‘슬그머니 달아나는’ 데 성공한다.      


<시골 의사>는 어떠했나. 카프카는 이 이야기에서도 자기운명의 고삐를 제대로 움켜쥐지 못한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한다. 시골 의사는 환자의 상처가 지닌 깊이를 파악하고, 조언도 할 수 있었지만 정작 (임무수행에 필수라 할 수 있는) 말 관리를 허술히 하고 자기 집에 무엇을 두고 있는지도 모르다가 로자와 더불어 직업, 집까지 빼앗기고 만다. 현세의 마차와 비현세의 말을 타고 이리저리 떠도는 의사의 모습은 ‘책임’과 ‘자기구원’ 중 그 무엇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마는 운명의 불가항력(act of God , 不可抗力)을 보여준다.     


<변신>의 그레고리는 아버지가 이룬 규모의 부동산을 유지하고, 아버지가 진 빚을 갚느라 ‘돈 버는 기계’로 역할하다 소진된다. 안락함을 누리던 가족은 그레고리가 ‘돈 못버는 벌레’가 되면서 기만, 착취, 계산적인 태도 등 민낯을 드러낸다.      


“속았구나! 속았어! 잘못 울린 밤의 종소리를 따르다 보니 ―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되었구나”라는 시골의사의 탄식은 그레고리, 시골 사람뿐 아니라 우리에게 적용되는 말일 수도 있다.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말을 남겼는데, 과연 카프카를 읽다 보면 몇 번이고 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내게 이처럼 카프카를 다시 읽도록 해준 <카프카의 밤> 책방지기는 마진율이 박한 책을 팔아 책방을 유지하는 일이 녹록지 않음에도, 구김살 없는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이다. 출구를 찾아 <카프카의 밤>으로 향하는 이들을 위해 는 자신의 낮시간을 아르바이트에 헌납한다. 연산동은 나와 아무 인연 없던 곳이었지만, <카프카의 밤>으로 인해 책방 근처 연산동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보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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