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톱영웅

by 정재환

1.

“잘 지내? 하루에 한 번 이상 벽 보고라도 이야길 해야 돼. 안 그러면 말하는 법 잊는다. 집이지? 점심 어때? 지금 바로 나올 수도 있다고? 아니야. 내가 시간이 좀 걸려. 전에 봤던 거기서 봐.”

핸드폰을 한참 만지작거리다 후배에게 전화했다. 직장 후배 덕주가 회사를 타의로 그만두고 집에서만 칩거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이후 나의 일상은 낙엽처럼 흩어졌다. 나 역시 수년 전에 같은 경험을 했기에 덕주의 방황이 넘칠 듯 커 보였다. 그것은 목발을 짚게 된 다음에야 비로소 화장실 문턱이 높아 보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나한테는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고 준비나 계획도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닥친 퇴출은 남들은 절대 모르는, 당한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특이한 우울을 남긴다. 아무리 깊게 숨을 쉬어도 상상으로는 마실 수 없는 냄새가 있다. 바닷가에 이르러야만 맡을 수 있는 짠 내음이 있다.

“나, 회사에서 내쫓겨 그만두게 된 거잖아.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아요.”

다른 존재와 교류를 끊은 지 한참이 되었건만 그는 고집을 꺾지 않고 두문불출했다. 누에가 제 몸을 싸서 만든 집에 숨어들듯. 보다 못한 나는 그의 집까지 찾아가 전화를 해댔고 그는 마지못해 집 근처 공원으로 나왔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넌 행복한 놈이다, 생존권 확보를 위해 길거리에서 철야 하고 고공에서 농성하는 이들도 있다, 넌 반지하의 어둠 속으로 퇴출된 것도 아니다, 얼마든지 재기할 수 있는 경제적, 인적자원도 갖고 있다, 조금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후배에겐 어떨지 모르지만, 나에겐 익숙한 방식이었다. 기가 죽어 의기소침한 후배에게 삶의 고충이 묻어 있는 진솔한 조언을 한 것이라 믿었다. 너보다 더 힘든 사람들이 숱하게 많으니, 용기를 갖고 다시 시작하자는 훌륭한 격려라고 생각했다.

후배의 얼굴은 밝아지지 않았고 내 말에 흔쾌히 수긍하거나 맞장구도 치지 않았다. 후배의 깊은 한숨이 들리고 나서야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후배의 우울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했고 수년 전 내가 겪었던 절망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후회와 죄책감이 마음에 가득했다. 결국 후배에게 말했다.

“내가 참 어리석네. 네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안 하고 내 말만 했네. 자주 만나. 곁에 있어 줄게.”

일주일에 한 번은 만나기로 약속하고 돌아오는 길에 후배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뭘까를 생각하니 마음이 번잡했다. 수년 전에 겪었던 나의 절망은 낯설었고 제대로 기억되지 않았다. 후배한테 미주알고주알 들려 줄 황금 같은 조언들이 떠오르지 않았다. 후배와 달리 나는 우울이나 절망과 완전 갈라서 있었다. 내가 차지하고 누려야 할 세속적 부로부터 자유로웠다. 돈을 크게 벌었거나 많은 유산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명예나 권력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도 아니다. 내가 예수교에 엎어지면서부터 방황으로 점철된 생활이 바뀌었다. 감동적 계기나 남모를 종교적 체험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약간 옆길로 빠진 듯한 목사를 만나면서였다. 그는 천지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나 죄 사함을 받아야 할 원죄 따위를 들먹이지 않았다. 대신 신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자고 했다. 신의 나라는 나누고 섬기면 세워진다고 했다. 신의 나라든 그의 나라든, 나라를 운운하는 그의 말이 미덥지 않았다. 이 또한 예비된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고자 하는 얄팍한 잔재주로 들렸다. 마음을 움직인 건 그가 들려준 짧은 종교적 체험이었다. 병들어 힘든 자매님께 ‘자매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몸 아픈 자매가 ‘기도는 제가 할 테니 목사님은 설거지 좀 하고 가세요.’라고 했다. 그 말이 그의 삶을 변화시켰다고 했다. 신의 뜻은 연민이나 동정이 아닌 도움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그러니 당신도 도우라고 했다. 나의 방황이 부질없어 보였다. 절망에 기대어 게으르게 뻗어 있는 나를 곧추세웠다. 팔을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나의 경험에 기대어 후배에게 예수교에 엎어지라고 할 순 없었다. 삶의 여정이 달랐고 무엇보다 후배는 귀의를 위한 경위나 사연을 갖지 못했다. 내가 나의 길을 가듯 그는 그의 길을 열어야 한다. 예전에 그가 나의 길을 열어주었듯이 나 역시 그의 길에 놓인 걸림돌을 잘게 부수어 평탄하게 해주고 싶었다.

후배에게 들려줄 도움말을 수집하기 위해 진정성 있는 친구나 솔직담백한 선배한테 전화했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후배의 상황을 물었다. 후배의 상태에 대해 이러저러하다고 구체적으로 설명하기가 힘들었다. 내가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나의 공감 감각은 이미 굳어 있어 유연성을 되찾기에 더디었다. 후배의 상실감이 낯설었다. 조언들은 허공에 붕 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신께서 네가 어디를 가든지 너와 함께하며 너를 도우시리라.’ ‘나 혼자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득한 느낌이 있을 거야. 그럴 때 피하지 말고 대면하고 맞서야 해.’

쓸만한 도움말은 한 달 전에 회사를 때려치운 친구에게서 나왔다. 나는 그의 말을 받아적었다. 후배를 만나자마자 흔한 인사말도 생략한 채 미리 준비했던 금과옥조 같은 말을 쏟아냈다. 나이 오십이어서 취업하기 쉽지 않다는 현실을 인정하자, 하지만 현재의 모습에 당분간 어떤 변화도 주지 마라, 과도한 염려로 집이나 자동차를 팔지 마라, 씀씀이를 줄여서 생활을 초라하게 만들지도 마라, 퇴직금과 그동안 저축해 둔 돈으로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생각보다 생활비가 많이 필요하진 않다고 조언해 주었다. 후배에게 신뢰를 주려고 다소 부풀려 덧붙였다.

“이건 전문가들의 일치된 조언이야. 명심해.”

후배는 흐뭇해하지 않았다. 감동적인 반응을 보이지도 않았다. 대신 설핏 웃어 보였다. 후배의 웃음으로 안절부절못했던 마음이 눈 녹듯 녹아내렸다. 내친김에 여행을 다녀오라고 권했다. 하나밖에 없는 귀하신 아드님이 입시생이니까 혼자 떠돌며 머리 식히고 와라. 다녀와서 여행 소감을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한 달 뒤 여행을 다녀온 후배는 거친 숨을 고르며 말했다.

“한라산이나 북한산이나 어떤 차이도 모르겠던데. 모든 산이 다 똑같았어. 제주나 동해나 그 바다가 그 바다이던데. 외롭고 쓸쓸하고 아무 재미도 없더라. 형이 나 골탕 먹인 거 아냐?”



2.

십여 년 전, 후배는 나와 같은 팀에서 일했다. 회사의 수익이 급격히 축소되었다. 팀원들은 기죽어 지냈다. 업무와 연관된 다른 팀들은 우리 팀을 왕따시키며 몰아붙였다. 팀에 대한 차별이 강화될수록 주류에 합류하고픈 욕망도 강해졌다. 맞설 힘이 없으니까. 이미 효용성이 낮은 단위로 낙인 찍혔으니까. 사람들은 작고 약한 자를 깎아내어 떨어져 나가게 했다. 다른 팀으로 이동하길 원하는 팀원도 있었다. 해가 바뀌고 인사철이 가까워지자 몰아붙이는 힘은 더 강해졌다. 신년 단배식에서 거친 발언들이 쏟아졌다.

“이런 운용 성과로는 우리 상품을 팔아 줄 곳이 단 한 군데도 없어요. 제대로 좀 하세요.”

마케팅 팀장은 내 앞에서 신임 사장 들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해는 좀 좋아지겠지요. 하하하.”

나는 마땅한 방어기제를 찾지 못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때 후배 장덕주 과장이 결연하고 용맹하게 나섰다. 마케팅 팀장이 내게 했듯 그에게 잊을 수 없는 불을 질렀다.

“운용 성과가 좋아 모두가 좋은 성과를 보고 우릴 찾아오면 마케팅팀이 필요 없지요. 운용 성과가 다소 부진할 때도 팔 수 있어야지요. 운용 성과가 좋을 때만 팔 수 있으면 마케팅팀이 왜 필요합니까? 지난해 마케팅팀 성과 부진부터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장덕주는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제 뒤를 따르시지요.’라며 길을 헤쳐나가는 호위무사였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자산운용사였다. 우리 팀이 운용하는 주식형 펀드는 소규모였지만 은행을 모회사로 두어서 은행이 든든한 판매사 역할을 해주었다. 주식형의 경우 운용 성과가 한 달 단위로 공시되면서 수익률 경쟁이 치열했다. 내가 팀장으로 운용하는 펀드의 수익률은 원금 이하로 내려가면서 판매사인 은행의 불만은 최고조에 달했다. 은행 고객의 대부분은 원금손실을 못 견딘다, 주식형 펀드를 판매하면서 원금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고지했어도 막상 원금이 손실되면 난리가 난다, 이제 어쩔 거냐, ‘수익률 향상 방안을 마련해서 담당 팀장이 직접 보고하라.’가 요구사항이었다.

장덕주의 비판은 예리했고 의욕과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 높았지만, 마케팅팀의 대응은 잔인했다. 판매사가 요구했던 운용성과 향상 방안을 매일 작성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방안은 A4 용지 5장의 분량을 반드시 채워야 했고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어선 안되었다. 성과가 향상될 때까지 운용팀 전체의 야근을 요구했다. 응징은 치욕적이었다. 장덕주는 야위었고 난 마음속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대대적 숙청이 시작되었다.

신임 사장에게는 전 직장에서부터 자신을 따르던 무리가 있었다. 동고동락하며 사선을 헤쳐왔던 이들에게 새로 취임한 이 회사에 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퇴근해선 그들을 만나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 회사 사람들은 무능한데다 일에 대한 열의도 없다,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고 뭐하나 시켜도 제대로 하질 못한다, 큰일이다, 이래서는 희망이 없다, 너희들이 와서 나를 도와야 한다고 했다. 그 무리들은 머리 위에 쌓인 눈을 털어내고 언 손을 비비며 조금 있으면 따뜻한 방안으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안도했다.

사장은 이제까지 없었던 대안투자팀을 만들어 자신의 사람을 데려와 앉혔다. 사업부를 새로 만들어 무리를 데려오는 것만으론 성에 차지 않았다. 기존 조직에 대한 교체와 물갈이를 시도했다. 먼저 팀장급의 교체가 시나브로 이루어졌다. 팀장을 팀원으로 강등시키고 무리에서 팀장을 데려왔다. 계약만료 한 달 전에 계약종료를 통지했고 그 자리는 그를 따르던 외부 사람들로 채워졌다.

운용조직에선 리서치팀의 이윤희 차장이 최초표적이었다. 추석을 한 달 앞두고 계약종료가 통지되었다. 이윤희 차장은 무엇보다 업무성과가 탁월했다. 정량적 성과가 월등히 뛰어났기 때문에 계약종료 통보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회사 동료들의 반응은 두 부류로 엇갈렸다. 무모한 조치라며 화를 내는 부류가 대다수였다. 개 같은 조치에 핏대를 세우는 게 당연해 보였다.

반면, 고소해하는 부류도 있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런 의견은 개인적 앙심이 작용한 것이었다. 이윤희는 전임 사장 부임 때 같이 온 소위 ‘날라온 돌’이었다. 그는 전임 사장의 손발이 되어 인사에 관여했고 이때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한 사람이 여럿 있었다. 그들은 이번 조치가 사필귀정이라며 반겼다.

나는 사장 면담을 신청했다. 누군가는 제기해야 할 문제였다. 인사 원칙 없이 조직이 표류하게 할 순 없었다. 사장의 주관적이며 극히 사적인 판단에 직원들의 거취를 맡겨둘 순 없었다.

“사장님, 이 차장은 정량적 성과가 탁월합니다. 추천한 종목들의 성과가 아주 좋습니다. 운용 성과에 대한 기여도가 높습니다. 그런 친구를 나가게 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인사를 철회해 주십시오.”

준비했고 연습까지 했던 말을 쏜살같이 뱉어냈다.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다리가 맥없이 떨렸다. 목소리도 후들대지 않았을까 생각하니 얼굴이 뜨거웠다. 나답지 않은 내가 낯설었다. 사장은 뜻밖이어서 그랬는지 나를 처음 본 듯 빤히 쳐다봤다. 이윽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훈계조의 목소리가 나왔다.

“개인적인 성과가 높으면 뭐 하나? 조직 기여도가 없잖아. 팀원 상호 간 정성 평가에서 최하점이 나왔어. 이만 물러가. 그리고. 인사와 관련된 사항은 전적으로 내 권한이야. 알아들어?”

사장은 인사와 관련된 판단을 내게 미주알 고주알 들려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저는 주식운용팀의 팀장입니다. 리서치 팀원에 대한 평가를 할 수 있고 또 하는 단위입니다. 정중히 대해주셨으면 합니다.”

나 역시 불편함을 드러냈다. 사장보다 이 조직을 훨씬 더 사랑하고 있음을 내보이고 싶었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떨리지 않았다. 얼굴이 붉어지지도 않았다. 내가 왜 여태까지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나는 차라리 그게 이상했다.

“내가 사장으로 있는 동안 서진우 팀장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겠네. 약속하지. 이만 나가시게.”

일어서는 나에게 그는 한마디 더 보탰다.

“서 팀장은 지금의 운용 성과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 않을까?”

모든 게 익숙했던 이곳이 그 시간 이후 낯설어졌다. 직원 휴게실 커피머신도, 회의실의 탁자도, 매일 이용하던 구내식당의 식권도 모두 불편했다. 내가 직원 휴게실에 들어서면 모여 있던 직원들이 흩어졌다. 하나밖에 없는 회의실 사용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었던 이들이 선선히 자리를 내주었다. 구내식당에선 내 옆에 앉는 이가 없었다. 어쩌다 내가 옆에 앉으면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다. 나를 빤히 쳐다보는 사람이 늘었다. 검은 뿔테 안경에 굽은 어깨와 신경질적인 눈매가 그대로인데 처음 보는 것처럼 쳐다보았다. 안정감은 사라지고 들뜸은 내려앉았다.

인사 담당 상무가 나와 장덕주 과장에게 면담을 통보했다.

“서진우 팀장, 이제 그만하고 사장님이 낼 출근하시자마자 바로 뛰어 들어가서 무조건 잘못했다고,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고 해. 장덕주 과장은 마케팅팀에 가서 잘못했다고 앞으로 모든 업무에 잘 협조하겠다고 하고.”

그는 엄하게 통보했지만, 천성이 부드러운 사람이어서 뒤에 여러 군더더기를 달았다. 내가 이 회사를 20년 넘게 다니면서 사장만 다섯 분 이상 모셨지만 다 흘러가더라, 성질 돋우며 살아서 남는 것 하나 없다, 둥글게 가자. 등이 주된 사족들이었다. 내가 사원으로 입사했을 때 과장 진급을 앞둔 그가 나의 등을 두드리며 잘 지내자고 격려했던 일이 생각났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나 싶어 마음이 슬펐다. 내 앞가림은 할 줄 안다고, 걱정하지 마시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내가 그의 말을 순순히 따를 것으로 생각했는지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장덕주와 나는 회의실에서 마주 앉아 커피를 마셨다.

“팀장님, 이윤희 차장 일에선 손을 떼시지요.”

“왜 그래야 하는데?”

“사장한텐 자리가 필요해요.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 챙겨주어야 하니까.”

“그걸 용인하면 이 조직은 다 무너지는 거야.”

“그건 팀장님이 걱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이야기가 겉돌았다. 장덕주 과장이 핵심을 곧바로 말했다.

“팀장님은 지금 위험한 오해를 사고 있습니다.”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떠다니는 온갖 생기를 빨아들이려 했다. 직장 동료들이 나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쳐다보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윤희를 지켜낼 수 있을지가 아니었다. 내가 왜 이윤희에게 집착하는지, 이윤희와 그렇고 그런 관계는 아닌지 등을 지레짐작하는 것이었다. 내 행동이 너무 무리해 보이니 추측한 것이리라. 못된 인간들 같으니라고 무시하기엔 부피가 너무 커져 있었다.

“이윤희 차장이 퇴출되고 난 뒤에는 팀장님 차례입니다. 한 달 남았습니다.”

나에게 계약종료가 한 달 뒤에 통지될 것이란 이야기인 듯했다.

“장 과장이 그걸 어찌 알아?”

내가 퇴출될지를 장 과장이 어찌 아느냐는 물음이었다. 장 과장은 입을 굳게 닫은 채 어떠한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윤희 차장은 계약종료를 통보받자 휴가를 신청한 뒤 출근하지 않았다. 내겐 한편이 되어 주어 고맙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는 아마도 아무도 출근하지 않는 휴일을 택해 사무실에서 짐을 챙겨갈 것이다. 징글징글한 무관심과 모든 이의 몸사림에 치를 떨 것이다. 하나, 둘 그런 식으로 정리되면 이제까지 지켜온 우리는 뭐가 되는가? 우리는 사장이 말한 대로 열의도 능력도 없는 식충이었던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사장 앞으로 메일을 보냈다,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사장님을 설득하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제 능력 부족입니다. 좀더 노력하겠습니다. 사장님도 마음을 닫고 빗장을 걸어두어서 설득되지 않았잖아요? 그러니 빗장만이라도 풀어 주십시오. 제가 들어갈 자리는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윤희 차장은 계약이 종료되어 퇴직 처리되었다. 예상대로 휴일을 택해 짐을 가져갔고 마음 정리가 되면 송별 회식하자고 문자를 남겼다. 나 역시 계약종료 통지가 곧 있을 거란 소문이 돌았다. 굳이 소문이랄 것도 없었다. 누가 봐도 명백해 보였다. 그럴 리가 있냐? 라고 묻는 이가 있다면 그는 눈치코치도 모른다고 비웃음을 살 판이었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휴가를 쓰고 회사를 안 나가는 것은 무책임해 보였다. 통지가 며칠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했다. 무기력하다 이내 시무룩해졌다. 불안과 초조가 번갈아 마음을 두드렸다. 통지를 받으면 마지막 인사라도 남겨야겠단 생각에 글을 썼다. 누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신념이나 이상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직장생활을 마치는 마당에 나의 의견을 굳게 내세우는 것이 치사하고 흉하게 느껴졌다. 한숨을 담았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탄식하는 마음을 실었다. 묵묵히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동료들께 감사하다, 세월지나 뒤돌아보니 너무나 소중한 인연이었다는 회한을 적었다. 초라하고 꾀죄죄한 내용이지만 그때는 간절하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나의 글은 끝내 메일에 오르지 못했다. 나는 퇴출되지 않았다.

통지 하루 전날, 출근하는데 장덕주 자리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뺀질이 장 과장이 무슨 일이야? 자리 정리를 다 하고. 깨끗하니 얼마나 좋아. 진작에 좀 치우지. 장 과장은 아직 출근 전인가?”

회사에서 가장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 조 대리가 머뭇거리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장덕주 과장은 어제 퇴사했습니다.”

장 과장의 퇴직 이후 많은 추측이 떠돌았다. 가장 그럴싸한 소문은 내가 이윤희를 구하겠다고 날뛸 때 그는 나를 구하기 위해 사장과 단판을 지었다는 거였다. 사장의 예전 측근들을 앉히기 위해 기존 직원들의 계약을 무리하게 종료시키는 것을 회장에게 보고하겠다, 이윤희 차장은 몰라도 서진우 팀장을 자르면 좌시하지 않겠다, 서진우를 남겨주면 자신이 회사를 떠나겠다, 떠난 후에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입을 열지 않겠다, 서진우를 살려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3.

약속 시간에 정확히 도착한 후배는 소주부터 들이켰다.

“형은 형수님 생일날 얼마짜리 선물했어요? 잉? 그렇게 많이 했어요? 속 좁은 형도 이번엔 좀 세게 했네. 난 이번에 아내가 갖고 싶어 하던 최고급 명품 가방을 선물하려고. 부담스럽다고 할거라고요? 아냐. 우리 집사람은 그런 건 확실히 하는 편이에요. 갖고 싶은 물건은 아무리 비싸도 후회 안 하는 스타일. 백화점에서 사면 상품권을 덤으로 준대요. 그건 내가 슬쩍 갖고. 사실 3년 뒤가 결혼 20주년이거든. 이번에 크게 선물하고 대신 결혼 20주년엔 작은 걸로 하겠다고 미리 얘기를 해야지.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3년마다 큰돈을 쓰겠어요. 비싼 거니까 귀하게 쓰라고도 하고. 쪼잔하다고요? 기왕 선물하는 것 뒷얘기들은 다 접어두라고? 안돼. 내가 얼마나 크게 인심 쓰는 건데. 근데 형도 명란 좋아하나? 울 엄마가 명란을 잘 만드세요. 내가 동해 바닷가에서 자랐잖아요. 명란 양념이 기가 막혀요. 양념 한 통 만드는 데 꼬박 일주일이 걸려요. 조그마한 건 한 통에 오만 원인데. 이번 설에 형한테 선물할게요. 어머니께서 귀하게 만드신 거니까. 형이 사드리겠다고? 그것도 좋겠네. 그럼 여러 통 사서 다른 분들께도 선물하면 좋겠네.”

후배는 그때 왜 그랬냐는 질문엔 예전처럼 입을 다물었다. 대신 아내 생일날 줄 선물 생각에 마음이 들떠 있었다. 얼마나 꼼꼼하게 알아보고 준비했는지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보였다. 그 밖에도 최근의 일들에 대해 사소한 것들까지 다 이야기했다. 탁구를 등록했는데 초짜라고 아무도 같이 쳐주질 않더라, 하기야 나도 초짜하고 탁구 치고 싶진 않을 거라며 겸연쩍어했다. 서운하지만, 이해한다는 말이 헷갈렸다. 감정적인데 이성적이란 게 말이 되나? 나의 공감 능력은 바닥을 드러냈다. 후배의 계속된 수다를 듣다 말을 중간에 놓쳤는데 아무튼 탁구를 보름 하다 그만두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뒤 민화도 했다, 그 오묘한 채색이 맘에 들었다, 인사동 전시회에 갔는데 민화가 대세더라, 물감하고 붓하고 준비해서 주민센터 교양강좌에 등록했는데 나만 남자더라, 나머지 분들은 다 여자다, 나이도 나보다 훨 많다, 대부분 누님뻘이다, 진짜 나이 많이 드신 분은 우리 엄마뻘이다, 지내기가 쑥스러워서 이것도 한 달 만에 그만두었다고 했다. 그만둔 것 말고 제대로 된 것은 없냐고 물었다. 무심코한 말이 후배를 책망한 듯해서 얼른 말을 돌렸다.

“기타나 드럼 또는 색소폰 배우는 건 어때? 요즘은 이런 게 멋있잖아?”

“형, 내가 올해 딱 오십이야. 하기 싫거나 힘에 부치는 일은 하지 않아. 악기는 그중 하나야.”

그가 방황을 끝내고 돌아왔다. 그는 모든 부조리와 불합리에 맞설 것이다. 예전처럼. 그리고 끊임없이 흥정할 것이다. 최상이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덜 잃기 위해 그는 모색할 것이다. 헤쳐 나가기 때문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할 것이다. 그가 다시 돌아왔다. 우울과 절망을 떨쳐내고. 원 톱 영웅이던 그가, 호위무사가 되어 길을 열던 그가, 드디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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