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이 단단한 미디어 전략 리드, 권아인
<5층 사람들>은 미디어오리의 사람들, 그들의 활동생각행복불안과 희망을 담는 코너입니다.
바야흐로 ‘취향’의 시대. 취향이 확실한 사람은 분명히 매력이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아인 님은 자신만의 매력이 있는 사람이었다. 인터뷰 일정을 먼저 잡아두고 내가 다른 일을 하는 사이, 아인 님은 본인의 취향이 잔뜩 묻어있는 카페 주소를 내게 넌지시 알려주며 ‘여기 어때요?’라고 물었다.
미디어인큐베이터오리의 미디어셀 팀원으로 2021년 9월에 새롭게 합류한 내게, 미디어셀 리드인 아인 님은 든든하고도 현명한 길잡이의 역할을 하는 동료였다. 회사라는 조직에서 만난 탓에, ‘권아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꾹꾹 눌러 삼켰던 지난날. 퇴사를 앞둔 아인 님을 만나 나의 욕망을 살짝 꺼내어 보았다.
아인 님, 아인 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아영: 드디어 오늘 아인 님을 한번 본격적으로 파헤쳐보겠습니다. 지난 인터뷰 <어쩌다 미디어 판에 들어오게 됐니? — 숙성된오리편>를 보니 미디어오리에 들어온 건 ‘우연’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우연히 어떻게 미디어오리에 들어오시게 됐는지 썰을 좀 풀어주세요.
아인: 네. 저는 그전까지 해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그때도 한국 미디어에 관심이 되게 많았어요. 제가 한참 관심 가질 때 닷페이스나 구글 뉴스랩같은 소위 말하는 뉴미디어가 엄청 활발했을 때였거든요. ‘한국에서도 한번 일해보고 싶다. 재밌겠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에 정말 우연히 제 피드에 미디어오리 채용공고가 떴어요. 그때 미디어오리의 채용하는 포지션은 파트타임이었어요. 그냥 ‘내가 한국의 미디어씬에는 아는 사람들이 전혀 없으니까 한번 들어가 볼까?’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들어왔는데 프로그램 매니저를 맡게 되고,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있게 됐네요.
아영: 파트타임에서 정규직으로, 그리고 미디어 전략 리드를 맡으셨잖아요. 회사 생활이 빠른 호흡으로 변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아인: 제가 미디어오리에 들어오고 한 1년 정도 뒤에 리드라는 이름이 붙게 됐어요. 주니어 입장에서 리드라는 타이틀을 갖고 리더십 훈련을 한다고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잘 따라가면 좋은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책임감이 따라오게 되더라고요. 그런 면에서는 부담이 안 됐다 하면 거짓말이겠죠. 리드로서 정말 그 타이틀을 온전히 내 걸로 만들기에는 조금 무리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리더십을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어요.
아영: 그러니까 2년차에 리드가 되신거네요. 정말 힘드셨겠다.
아인: 그렇죠. 저도 리드가 필요한 시점이었으니까요. ‘내가 지금 맞게 하고 있는 건가’ 라는 자기 의심이 되게 많이 들 때가 많았는데 이거에 대해서 명확하게 누가 ‘잘 가고 있어’라고 얘기해 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스스로 길을 찾아가야 하는 그 과정들이 가장 힘들었죠.
아영: 하지만 아인 님은 스스로 길을 잘 찾으시던걸요. 오리콘유스 같은 교육 프로그램도 아인 님이 기획하셨다고 들었어요.
아인: 오리콘유스는 조금 특수한 경우였어요. 신년 워크숍에서 제가 던졌던 아이디어 중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오리콘아가 있으면 좋겠다’ 였어요. 그쯤 저희가 국제앰네스티와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거였는데 우연히 바로 다음 달에 거꾸로캠퍼스에서 먼저 연락을 주셨죠. 막연한 아이디어만 있었던 상황에서 거꾸로캠퍼스를 만나 실현을 하게 됐어요. 프로그램을 만들고 진행하면서 ‘이게 정말 필요하고 정말 괜찮은 프로그램이구나’라는 확신을 얻게 됐고요. 그리고 일단은 거꾸로캠퍼스의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가진 에너지가 좋았기 때문에 굉장히 즐거웠어요.
아영: 아인 님은 미디어 ‘전략’ 리드잖아요. 어떤 전략을 갖고 계시는지 알려주세요.
아인: 아찔하네요... 사실 큰 그림은, 미디어의 동향이나 트렌드를 리서치하고 분석해서 이걸 토대로 미디어 전략을 세우자는 거였어요. 그런데 저희가 내부적으로 적은 인원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생각만큼 진행이 잘 안 됐고, 스스로 미디어 ‘전략’이라는 타이틀에 대해 고민해야 했어요. 저는 프로젝트의 명확한 목표와 마일스톤을 ‘전략’적으로 세우는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반 발자국 앞에서, 회사의 입장에서 이 프로젝트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 유기적으로 연결되거나 파생될 수 있는 또 다른 프로젝트가 있는지, 등을 생각해보고 여기에서 나온 목표와 전략을 실천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아영: 그런 면에서 앞으로 미디어오리가 주력 사업으로 집중할 숏다큐 미디어 인터브이의 전략은 어떤지, 미디어 전략 리드로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아인: 일단은 저희가 이번 워크숍을 통해 콘텐츠에 집중하기로 하고, 장기적인 관점으로 커뮤니티 형성을 바라보기로 했잖아요. 저는 이 순서가 맞다고 생각해요. 브랜드는 알리는 게 아니라 발견되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브랜드가 기존에 얼마나 내실이 잘 다져져 있느냐에 따라 이 브랜드가 더 성장할 수 있냐 없냐를 판단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지금 인터브이는 그 내실을 탄탄히 다져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인터브이에 대한 애정이 크기 때문에 더 좋은 콘텐츠들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아영: 조금 더 넓은 관점에서 아인 님을 바라볼까 해요. 미디어를 공부했다고 하셨는데, 어떤 계기로 미디어를 전공하게 되셨나요?
아인: 저는 운이 좀 좋았던 케이스였어요. 제가 해외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스스로 대학교부터 전공까지 선택할 수 있었고 부모님도 지지해주셨어요. 원래는 저널리즘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제가 기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는데...막연히 방송이나 그와 연관된 큰 단어들이 제게 다가왔어요. 대학을 선택할 때쯤에 제가 미디어라는 단어에 꽂혀있었거든요.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에 너무 가까이 있고, 쉽게 간과하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게 미디어더라고요. 이걸 대학 가서 배워보면 되게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아영: 대학에서 배워보니 어땠어요? 재미있었나요?
아인: 저희 학교의 경우 미디어 전공이 사회학부 아래에 있었어요. 사회학과는 지금 ‘현재’의 일들에 대해 서로 이야기하고 배우잖아요. 그게 가장 매력 있었어요. 변화를 반영하는 유동적인 학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할까요. 답이 없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함께 몰두하고, 분석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세상을 좀 더 건강하게 바라볼 수 있는 근육을 키울 수 있겠다고 느꼈어요. 제가 이전 인터뷰 <어쩌다 미디어 판에 들어오게 됐니? — 숙성된오리편>에서 미디어를 모호하다고 말했는데요. 미디어가 모호하다고 느끼는 건 이게 실체가 모호해서라기보다는 너무 광범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사회 전반을 다 다루고 있으니까요. 미디어를 전공하면서도 느꼈어요. 어느 날은 해리포터에서 아시아인을 배제하는 예시에 관해 토론을 하다가, 다른 날은 갑자기 여름에 서머타임을 검색하는 사람들의 성향을 알아보려고 구글 애널리틱스를 돌려요. 웃기죠? 이렇게나 사회의 다양한 주제들이 미디어에 포함이 될 수 있어요.
아영: 그러니까 미디어는 표현하는 방식이고, 내용은 그 사회에 있다는 걸까요? 정말 살아있는 학문일 수 밖에 없겠네요. 사회는 계속 변하니까.
아인: 오, 그렇죠. 너무 정리를 잘해주셨는데요.
아영: 그럼 지금의 아인 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시기는 언제인가요?
아인: 고등학생 때. 그때 제가 제일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저에게 새로운 세계를 알려줬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예요. 지금 저를 이루는 대부분이 그때 그 친구가 나눠준 콘텐츠들인 것 같아요. 대중문화나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에 있어서 그 친구의 영향이 정말 컸고, 그걸 계기로 제 시야가 확장되었어요. 그 전에는 무수한 것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였다면 점점 자아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그 안에서 ‘내가 이런 걸 특히 더 좋아하는구나’, ‘이런 게 더 눈에 띄는구나’라는 게 점점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전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이고 느낄 수밖에 없는 성장기를 겪었기 때문에 환경적인 영향이 어쩔 수 없이 정말 컸어요.
아영: 오, 맞아요. 그런데 저는 아인 님의 성장 환경에 비해서 아인 님 되게 ‘한국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아인 님이 말하기 전엔 그런 배경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아인: 그건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제가 그렇게 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노력했다고 할까요. 어려서부터 사실 그런 정체성에 관한 질문이 생겼던 적이 많았어요. 저는 항상 본질적으로 ‘난 한국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의식적으로 한국어도 놓치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어요. 지금도 한국어 발음에 신경을 많이 쓰고 어휘력도 키우려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종종 제가 쓰는 단어가 문어체 같다는 이야기를 듣긴 해요. 저는 한국어를 책으로 접했기 때문에...아무튼 저는 튀지 않고 이 사회 구성원으로 잘 묻어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그런 노력을 한 것 같아요. 어려서부터 어딜 가도 아시아인인 그 자체로 너무 튀었거든요.
아영: 그런 노력이 지금의 아인 님을 만들었군요. 아인 님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방법이 있으세요? 저는 아인 님의 꺼지지 않는 에너지가 너무 부럽거든요.
아인: 저는 제 주변을 통해 에너지를 받아요. 주변 사람들이랑 같이 어울리는 게 너무 즐겁고, 같이 무언가를 하는 게 좋아요. 그런데 중요한 포인트는 혼자만의 시간도 분명히 필요해요. 적당히 밸런스를 지켜야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매일 나만 아는 기대를 만들어요. 예를 들어서, 진짜 별거 아닌데...퇴근하고 나서 내가 즐거울 수 있는 방법들을 찾는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빵집에 들러서 내가 좋아하는 디저트 하나를 사야지’이런 거요. 그럼 그 기대감으로 하루가 즐거워지잖아요.
아영: 저 꼭 물어보고 싶었던 거. 그런 맛있는 베이커리나 맛집, 핫플들은 어디서 어떻게 아시는거예요? 너무 잘 알고 계셔서 궁금했어요.
아인: 저도 그 질문 많이 받았거든요. 근데 특별한 거 없어요. 그냥 관심이 많으면 돼요. 남들 보는 거 다 봐요. 이렇게 많이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에게 정보들이 오는 때가 생기더라고요. 한 곳을 알게 되면 다른 곳도 자연스럽게 보이고, 그럼 어느새 나의 기준이 생겨요. 그럼 안 가봐도 ‘각’이 먼저 나와요. 그리고 저는 나름 정리도 해놔요. 제가 좋아서 하는 건데, 정신 차려보니까 제가 폴더를 동네마다 만들어 놓고 있더라고요.
아영: 그 폴더 저도 좀 공유해주시면 안될까요.
아인: 그럼요. 이게 또 아까 에너지 충전과도 연관되어 있는데 제가 좋은 곳을 발견하면 꼭 제 주변 사람들을 우르르 다 데리고 가요. 내가 소개해 준 곳을 다른 사람이 나만큼이나 좋아하면 그게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요.
*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인 님은 내가 알고 지내던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다. 미디어와 함께 성장하고 배우며 만든 근육들, 정체성을 지키고자 했던 노력과 급변하는 미디어 스타트업에서의 리더십 경험까지. 아인 님은 다양한 환경 속에서 그때마다 스스로 목표를 정하고 주체적으로 걸어 나갔다.
대화를 마무리하며 아인 님의 취향이 담긴 폴더를 공유받고 싶다고 느꼈던 건,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내가 느낀 ‘권아인’이라는 사람에 대한 매력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소중한 동료이자 친구를 떠나보내는 게 아쉬워 앞으로의 꿈을 살짝 물어보니, 요즘은 좋은 어른이 되는 것에 대해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가 걸어갈 미래가 얼마나 더 빛날지, 기분 좋은 기대감이 든다.
글/인터뷰 우아영
https://www.youtube.com/channel/UCPpQbeULwhnr4SB5yAByKf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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