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민 남편과 살고는 있지만
나도 영어학원 보내야하나 매번 고민한다.
1년 전 남편에게 첫 8세 그룹 영어회화 과외가 생겼다. 첫 수업이 시작될 장소를 카톡으로 보냈줬더니 수업 시작 10분 전 남편에게 문자가 왔다.
여기 압구정 이잖아?
수업장소를 확인하고 나니 부담이 됐나보다.
수업이 끝나고 나니 다행히도 아이들이 엄청 활발하고 본인의 수업이 정말 좋았다고 중간중간 표현했다며 나름 으쓱한 표정이다.
"맞아 당신 잘 가르쳐 재능 있어!" 하고 맞장구 쳐주었더니 더 우쭐해졌다.
수강생들은 1호보다 겨우 한살이 많았다. 남편에게 들어보니 아이들은 이미 영어학원만 3개를 다니고 있고 남편은 그중에 하나라고 한다. grammar, Writing 이 각각 있는 것 같고 남편은 그들의 Speaking 수업을 담당했다. 아이들이 괜히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었다. 남편은 한국말에 서툴러 주니어 수업 대부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이 그룹은 우려했던 것 과 달리 아이들 실력이 뛰어나서 토론방식으로 1년을 함께 갈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축구, 미술 , 피아노, 플루트, 수학 등등등 심지어 불어도 따로 수업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이 아이들이 그렇게 많은 수업을 듣는 것이 비단 압구정에 살아서일까? 물론 가짓수가 많긴 하지만 그건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돼지엄마' 라서가 아니라 내 주변 동료들 또한 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소위 '학원 뺑뺑이'를 돌렸다. 내 절친마저도 줄이고 줄인 게 2~3가지 여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표현했다. 그때 당시 7세인 1호가 겨우 신기한 한글*라 1가지 하면서도 오버해서 시키는 게 아닐까 고민했었는데 엄마로서 너무 무심했구나 반성이 됐다. 초등학교 입학 전 실제 엄마들 세계를 들여다보니 갑자기 불안 이 쑥 올라왔다. 하지만 통 글자로 진행돼 방문수업을 지루해했던 아들을 보고 홈스쿨링으로 전환해 매일 30분씩 붙어서 한글이 야호로 수업하자마자 한 달 만에 한글을 떠듬떠듬 읽게 된 아들을 떠올렸다. 이내 마음이 차분해졌다.
15년 전 대기업 공채에 합격하려면 해외연수 경험은 스펙에 꼭 들어가야 할 공공연한 조건이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전공이 이공계라 마케팅 직군에 수도 없이 떨어진 것이 첫 번째 원인이었겠지만 100번넘게 서류만도 통과하지 못할 때는 어학연수이든 배낭여행이든 아무거나 빨리 뭐라도 스펙을 쌓기 위해 한국을 떠나버리고 싶었다. 운 좋게도 B사에서 인턴을 시작하게 됐고 지긋지긋한 한국을 떠나기 위해 영어예배를 다니다가 외국인 남편을 만났다. 그럼 영구 거주권이 있는 캐나다로 떠나게 될 줄 알았다. 청첩장 돌리면서 잔뜩 꿈에 부풀어 '나 1~2년 안에는 해외에서 살게 될 것 같아' 했던 게 부끄러울 만큼 난 아직도 8년째 꿋꿋이 한국을 떠나지 못하고 일하고 육아하며 살아내고 있다.
남편은 한국은 정말 살기 좋은 나라라며 결혼 4년 뒤쯤 비자 연장을 포기하고 한국에 눌러앉았다. 블루칼라라도 진짜 상관없다고 강조했지만 그는 그럴 때마다 그가 살던 몬트리올의 인종차별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곳에 살아보지 않고는 몰라, 넌 너무 순진해. 한국만큼 안전하고, 인프라 좋은 나라는 없어."
"연봉이 높잖아~"라고 볼멘소리를 내뱉으니 우리나라 25평에 해당하는 방세 개짜리 월세가 600만 원 정도라며 그만큼 피부에 느껴지는 고정비 지출이 높다고 했다.
1호가 4살이 됐을 무렵이었다. 영어로 진행되는 주일학교에서 외국인 샘들이 영어로 물어보면 대답을 잘 못하고 멀뚱멀뚱하길래 역시 학원에 보내야 하나 걱정스러웠었는데 기우였다. 우리 부부가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주로 쓰는 덕에 아이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간단한 단어들은 영어로 내뱉기 시작했다. 예를 들자면,
So many
So big
Parking
Cars
No
언젠가는 주차된 차들을 가리키더니 So many car parking이라고 제법 문장을 만들어 말했다.
어느 날 아침에는 코딱지를 만지작거리더니 So many 코딱지라고 그래서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다.
남편과 하루하루 그렇게 대화하고 놀면서 실력이 쌓이고 있는지 잘 몰랐는데 어느 날 아침 일어난 아들이
"아빠 I am jumping in the bed!"라고 말했다.
마치 한글로 처음 문장을 말했을 때처럼 마음이 벅차올랐다.
빗방울처럼 똑똑 매일매일 꾸준하게 차곡차곡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영어유치원 출신이 대부분이라는 사립초에 입학을 하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남편은 놀이를 함께 해주더라도 앉혀놓고 책을 읽어주거나 파닉스를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일하느라 여유가 없어 영어책은 언감생심 한글책도 많이 읽어주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알파벳만 겨우 읽을 수 있는 상태로 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가정통신문이 왔다. 아이가 그동안 영어학원에 다녔는지를 체크하고 기초를 다루는 파닉스 반에 갈 건지 리딩이 돼서 좀 더 수준이 되는 교재로 수업을 하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이었다. 고민이 됐지만 기초를 단단히 쌓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파닉스 반을 골랐다.
돌이켜보면 3월 초반이라 그랬던 거였겠지만 1호는 영어시간이 제일 싫다고 하교를 할 때마다 투덜 됐다. 제일 좋아하게 될 줄 알았는데... 제일 싫다니... 눈앞이 깜깜했다. 영어는 매일 6,7교시에 진행됐었는데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요청해 들어보니 아들은 영어가 시작되는 6교시가 되면 책가방을 메고 집에 갈 준비를 한다고 하셨다. 학원 안 보내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늘 만만디 세상 여유로운 남편의 육아법을 보니 그만을 믿기 어려워졌다. '당신 아들이 영어가 제일 싫다더라' 얘길 들려주면 그때뿐이다.
"알았어 내가 가르칠게 걱정 마" 하면서도 체력이 약한 남편은 그렇게 하질 못했다. 이제 수일 내로 방학이 끝나는데 아직도 방학숙제로 나온 영어일기 한 편을 시작도 못했다.
"남편님아, 이번에는 꼭 꼭 하루에 1개씩 표현 알려줘서 방학숙제 제출할 수 있게 좀 부탁해" 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흐른 것이다. 매일 하루 한 개 영어 표현은 무슨... 원어민 남편이 있으면 뭐하겠니, 오히려 그래서 학원도 못 보내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이럴 때마다 나도 다른 애들처럼 영어학원을 보내야 하나 시름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