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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풋눈 Feb 02. 2024

[헝가리] 세계9위 오케스트라 공연이 가성비 여행코스?

커피 한 잔 값으로 오케스트라 공연 관람하기

천재 피아니스트 리스트의 나라, 음악 강국 헝가리


비행기로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한 이들은 익숙한 음악가의 이름을 접하게 된다. 헝가리의 작곡가이자 천재 피아니스트, 준수한 외모와 화려한 쇼맨십 덕에 '아이돌'급의 인기를 누렸던 리스트 페렌츠(Liszt Ferenc, 1811~1886). 그의 출생 200주년을 기념해 헝가리 정부는 공항을 '리스트 페렌츠 국제공항'이라 명명했다. 국경의 문턱에 다른 누구도 아닌 음악가의 이름을 사용할만큼, 음악을 향한 헝가리인들의 애정과 자부심은 깊다.

헝가리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이름을 적을 때 성-이름 순으로 적는다. 즉, 리스트가 성이고 페렌츠가 헝가리식 이름이다.


헝가리는 클래식 음악 강국이다. 수준 높은 클래식 공연을 수시로 관람할 수 있다. 음악 교육이 발달해 전세계에서 헝가리 음대로 유학을 온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이 헝가리 음대에서 유학했던 사실은 널리 알려져있다. 리스트 이외에도 작곡가이자 중부유럽 민속음악 연구자였던 버르톡 벨러(Bartók Béla, 1881~1945),  '코다이 교수법'으로 유명한 코다이 졸탄(Kodály Zoltan, 1882~1967) 등 걸출한 음악가를 냈다.


코다이 음악철학은 한마디로 "음악은 모든 사람의 것이다" 라는 말에 압축된다. 이말은 음악이 모든 사람의 인격형성에 대단히 중요하며, 모든 어린이들이 음악적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Pestalozzi의 교육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코다이는 유아기적부터 음악을 가르치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고 어머니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믿었다. (출처: 한국 코다이 협회)


가성비 오케스트라 공연


헝가리는 여행자들에게 아름다운 야경과 독특한 온천으로 많이 알려져있다. 하지만 헝가리를 여행하며 클래식 공연을 놓치는 건 아쉬운 일이다. 단 돈 만원이면 2~3시간짜리 오케스트라 공연을 볼 수 있다. 부다페스트의 여러 콘서트홀에서 수준 높은 공연의 티켓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최소 4~5만원은 지불해야 오케스트라 티켓을 구입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한 편이다.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도, 클래식에 조예가 깊지 않은 대중도 언제든 원하면 공연을 쉽게 접할 수 있어야 한다는 유럽인의 철학이 가격에 담긴 듯하다. 커피 한 잔이 만원에 버금가는 시대에 이 정도면 헝가리 공연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아닐까. 

학생의 경우, 학생증을 제시하면 2~5천원 남짓의 특별석 티켓을 구매할 수 있다. 콘서트홀마다 학생 할인 방침이 다르지만 대체로 50% 할인 또는 특별 티켓 구입 기회를 제공한다. 


바쁜 여행 일정을 쪼개고 쪼개 미술관과 박물관을 방문하는, 성실하면서도 우아한 우리나라 여행자들의 스타일을 고려했을 때, 오케스트라 공연 관람은 남는 장사다. 서유럽의 유명한 박물관은 입장료만 2~30유로를 거뜬히 넘는다. 몇시간이고 서서 관람을 해야 하니 피곤하고, 미리 공부해가지 않으면 감상도 쉽지 않다. 헝가리 오케스트라 공연은 저렴할뿐 아니라, 자리에 앉아 음악을 감상하는 것이기에 여행의 피로를 되려 풀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그 순간 순간의 선율에 귀와 몸을 맡기면(?) 되기에 사전 공부가 다소 부족해도 나만의 감상을 하는게 크게 어렵지 않다. 고급스러운 오케스트라 공연이 가성비 여행코스라는 말이 그리 어색하지 않다.


본래 클래식 공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사전에 국내 연주자가 협연하는 공연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도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티켓 판매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만 하는 유명 연주자들의 공연도, 헝가리에서는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 같은 연주자일지라도 한국에 비해 티켓 가격이 서너배 저렴한 경우도 있다.


프로 오케스트라계의 젊은 피,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헝가리에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가 있다. 소련 붕괴 전인 1983년, 영국과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던 헝가리 출신 지휘자 피셔 이반(Fischer Iván)이 고국으로 돌아와 피아니스트 코치슈 졸탄(Kocsis Zoltan)과 함께 창단했다. 우리나라에는 2019년 내한해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협연을 해 알려졌다. 


BFO는 '젊고 가난한' 오케스트라다. 연간 총 예산은 유사한 수준의 유럽 오케스트라들이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금에도 못미친다고 알려져있다. 그럼에도 2008년(당시 창단 25년) 독일 클래식 음반사인 그라모폰이 발표한 오케스트라 순위에서 9위에 자리매김했다. BFO가 이렇게 성공한 비결로, 일각에서는 유연성을 꼽는다. 본래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라 함은 특정 시기에만 이벤트성으로 활동하는 악단을 뜻하는데, 당초 BFO 창단 역시 일종의 임시 프로젝트였다. 철의 장막이 걷힌 후 시 정부와 민간의 지원으로 상설 오케스트라가 됐지만, 이들은 피셔의 방침 하에 여전히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속성을 유지한다. 일반적인 풀타임 오케스트라와 달리 오케스트라 밖에서의 공연에 수시로 참가한다. 다양한 프로젝트에 참가하며 관객과 자주 소통해 단원 개개인이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이렇듯 유연한 도가 전체의 발전에 기여했다는 설명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동유럽 여행자들에 오케스트라 공연의 문턱을 낮춰준 고마운 악단이다.


헝가리에는 BFO 이외에도 헝가리 국립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헝가리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 부다페스트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다수의 오케스트라가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지방 도시에도 개별 오케스트라가 있어 각 오케스트라의 매력을 비교해보는 것도 좋은 감상법이 될 수 있다.


그 자체로 예술작품인 콘서트홀


헝가리 예술궁전(Müpa, 웹사이트: mupa.hu)과 리스트 아카데미는 BFO의 주요 무대다. Müpa는 부다페스트 복합 문화 공간으로 2005년 완공됐다. 화려하면서도 구조적인 이 현대 건축물은 다뉴브 강가에 위치해있어 부다페스트 야경 명소 중 한 곳이 됐다. Müpa의 중심인 벨러 버르톡 콘서트홀에서는 클래식 공연을 비롯해, 재즈 및 오페라, 서커스, 무용 공연이 펼쳐진다. 작곡가 버르톡 벨러의 이름을 딴 이 공연장은 훌륭한 음향 시스템으로 유명하다. 시스템 구성을 담당했던 러셀 존슨(Russell Johnson)은 월스트리트저널에 "헝가리 음악가들이 이곳이 세계 최고의 콘서트홀이라 선언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악장은 음향 시스템이 "최고 중의 최고 수준"이라고 평했다.


리스트 아카데미(Liszt Ferenc Zeneművészeti Egyetem, concert.lisztacademy.hu)는 1875년에 설립된 유서깊은 음악대학이자 공연장이다.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장식돼있어 건물 자체가 유적지이며 유명한 관광지다. 평일 저녁 리스트 아카데미 앞을 지나면, 젊은 음악도들이 연주 사이 사이에 뒷문으로 나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리스트 아카데미에서는 BFO와 같은 프로의 공연뿐아니라, 음악 신예들의 열정 넘치는 공연과 민속 음악 공연 등도 펼쳐진다. 음대와 연계돼있어 무료 졸업공연(퀄리티가 절대로 낮지 않다.)을 비롯해 학생들의 독특한 시도를 접할 기회도 많다. 헝가리 음악의 저력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오페라 하우스(opera.hu), 에르켈 극장(opera.hu), 비가도 콘서트 홀(vigado.hu) 등에서도 수시로 공연이 열린다. 단, 오페라 하우스의 경우, 발레나 오페라 등 무대 공연이 주고 오케스트라는 단상 아래에서 공연한다.


헝가리 예술궁전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만나다


벨러 버르톡 콘서트홀에서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관람했다.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가 솔로로 등장했다. 지휘는 이스라엘 출신의 라하브 샤니(Lahav Shani)가 맡았다. 2시간 20분 간 진행된 이 공연의 3층 정 중앙 자리 티켓 가격은 6,600포린트(약 2만 5천원). 콘서트홀에 30분정도 미리 도착해 마티니를 한 잔 하며 공연장을 둘러봤다. 헝가리 여행자라면 와인 또는 차를 한 잔 하며 로컬들이 어떤 방식으로 문화를 향유하는지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듯하다.


공연 시작은 츠비 아브니(Tzvi Avni)의 Prayer for String Orchestra. 츠비 아브니는 유대인 문화를 기반으로 작곡을 했다고 알려져있는데 Müpa는 이 곡의 오프닝이 마치 헝가리 작곡가 코다이를 연상시킨다고 해설했다. 곡이 전개되며 멜로디와 비트가 리드미컬한 효과를 내어서 또 다른 헝가리 작곡가 버르톡과도 닮았다고 설명했다. 오직 현악으로만 구성된 연주로, 왠지 모르게 오페라 나비부인이 연상되는 동양스러운 음률이었다. 


다음은 핀란드 국민 작곡가 시벨리우스(Sibelius)의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 47로, 바이올리니스트 강주미가 솔로를 맡았다. 극악의 난이도와 구슬프면서도 강렬한 선율로 유명한 곡이지만 현장에서 들어본 바가 없어 기대했는데, 강주미의 연주는 기대 그 이상이었다. 손가락 움직이는 속도를 눈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기교와 높은 스킬이 필요한 연주로 보였는데, 작은 체구에 그렇게 강렬한 힘이 담겨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클라이막스에 다다랐을 때 온 오케스트라가 함께 춤을 추는 듯이 큰 물결을 일으키며 움직여 큰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마지막 곡은 라흐마니노프(Rachmaninoff)의 Symphonic Dances, Op. 45.로, 이 곡에 대해 "그것이 아마도 나의 마지막 깜빡임이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왈츠의 선율과 긴장감 넘치는 멜로디가 오가며 곡이 전개됐다. 본래 발레를 위해 작곡된 이 교향곡은 다소 어두운 분위기이지만 러시아 정교회 멜로디를 인용해서인지 성스러운 분위기로 나아간다. 사실 중간에 너무 성스러운 분위기였는지 졸음이 쏟아졌다. 라흐마니노프가 이를 예상이라도 한 듯, 마지막 5분 간 팀파니와 탐탐(징)을 비롯한 타악기의 화려하고도 공격적인 연주가 계속돼 모든 관객이 집중할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아 귀가한 뒤 세 곡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요즘은 오케스트라 연주 영상을 손쉽게, 그것도 무료로 접할 수 있어 공연장에서의 감동을 다시 한 번 느껴보기 좋은 듯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단원들의 움직임과, 악기의 미묘한 떨림은 영상에서 느끼기 어려웠다. (아마 유료 영상은 퀄리티가 좀 더 높을 듯하다.) 한국에서 이 정도 자리에서 이런 수준의 공연을 봤다면, 십만원은 거뜬히 나왔을 거라 생각하니 괜히 돈을 번 듯한 기분이었다.


헝가리 공연 예절 알아두기


헝가리 공연 관람 문화에는 미국이나 서유럽과 다소 다른 특징이 있데, 특히 박수에서 그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보통 악장이 다 끝날 때까지 박수를 치지 않는 게 매너라고 알려져있지만, 헝가리에서는 곡의 흐름이 어느정도 정리되면 박수가 나오기도 한다. 때로는 '브라보'를 외치거나 환호하기도 한다. 


전체 공연이 마무리되고 나면 미국이나 서유럽에서는 기립 박수를 치지만 헝가리인은 일어나지 않는다. 빠르게 박수를 치다 점차 통일된 리듬으로 박수를 친다. 이는 '헝가리 박수(Hungarian Clapping)' 또는 '바스타프(Vastap)' 즉 '철의 박수(Iron Clapping)'라고 불린다. 철을 뜻하는 헝가리어 바스와 박수를 뜻하는 타프가 합쳐진 말이다. 어리둥절해하는 사람은 모두 외국인이다. 이 박수는 무작위의 빠른 손뼉에서 1초당 약 2번 치는 속도로 한번 변모하고, 이후에 더욱 느려져 초당 1회로 두번째 변화를 겪는다. 박수는 지휘자가 서너번 퇴장과 입장을 반복하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파트별로 인사를 해도 끝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모든 솔로 파트 담당자가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고, 지휘자가 한두번 더 퇴장과 입장을 반복하면 그제서야 박수가 사그라든다. 오래 오래 박수를 치기 위해 에너지를 남겨두고자 박수 템포가 늦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로써 헝가리 공연은 연주자와 관객이 1차로 교감하고, 관객 간 손뼉을 맞춰가며 2차로 교감해야 비로소 완성된다. 이러한 종류의 박수 문화는 전 세계에서 오직 헝가리와 루마니아에만 있다.


헝가리는 클래식 음악이 발달한만큼, 클래식 공연 관람 문화도 발달해있다. 헝가리인들은 공연을 보러 갈 때 운동복이나 지나치게 캐쥬얼한 옷은 일반적으로 입지 않는다. 남자들은 주로 수트를 입고, 여자들은 단정한 세미정장을 입는다. 여름이라도 맨발에 샌들 차림으로 공연을 보는 일은 없다. 데이트를 하는 경우 화려한 이브닝 드레스를 입는 여자들도 있다. 시상식에서나 보던 드레스를 보고 놀라지 말것.


보통 공연 중간에 입장하는 것을 허락해주는 편이지만, 공연 종류나 콘서트홀에 따라 규칙이 다를 수 있기에 여유있게 공연장에 도착하는 것이 좋다. 공연 중간에 큰 소리로 기침을 하거나 핸드폰이 울리는 것은 매우 무례한 행동으로 비춰질 수 있으니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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