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행복했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여행 갔을 때의 기억들이 대부분이다. 고작 며칠 전의 하루는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하면서 수년 전 여행지에서의 하루하루는 줄줄 외울 정도록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그날의 날씨와 공기, 내가 느꼈던 감정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여행이 나에게 있어 큰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는 낯선 나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다. 집순이 성향인 나는 여행만 가면 다른 사람이 된다. 가끔 나도 몰랐던 나 자신을 만나게 되는데, 어쩌면 낯선 여행지에서의 내 모습이 더 본모습인 것 같기도 하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평소와는 다른 호기심이 생기고, 없던 용기도 발동하게 된다. 별거 아닌 일에도 크게 웃고, 몇 만 걸음을 걸어 다닐 에너지도 생긴다. 물론 언어의 장벽에 부딪힐 때도 많고, 때로는 안 좋은 일을 겪을 때도 있지만,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해결이 되지 않더라도 잘 견뎌낼 수 있는 회복력을 얻을 수 있어 오히려 좋을 때도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반복되는 하루를 사는 나에게 '여행'은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잠깐의 일탈과도 같다. 크게 기쁠 일도, 슬플 일도 벌어지지 않는 일상을 살다가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이 휘몰아치는 여행을 떠나는 일이 나에게는 일탈이었고, 해방이었다. 마음이 잘 맞는 여행 메이트인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한 이후에 틈틈이 여행을 많이 다녔다. 코로나 시국을 제외하고, 7년여 동안 약 20번의 해외여행을 다녀왔는데 제일 좋았던 곳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모든 곳이 다 좋았다. 모든 여행이 다 좋았던 가장 큰 이유는 제일 편하고 나를 바닥까지 잘 알고 있는 여행 메이트 덕분이다. 낯선 곳에서도 유일하게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 여행의 모든 순간들을 공유하고 공감해주는 사람, 모든 여행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인간 내비게이션이 바로 남편이다.
내 오래된 버킷리스트 속 "세계여행"은 너무 원대한 꿈이라서 현실이 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꿈꿔보는 정도로만 가슴이 벅찼었다. 젊었을 때는 언젠가는 이룰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기도 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포기해버리면 그만인 신기루같이 느껴졌다. 마흔 살이 되고 보니 가슴이 두근거릴 일이 별로 없는데 아직까지도 세계여행이라는 단어는 나를 너무 가슴 뛰게 만든다. 아! 내가 아직 포기한 것은 아니었구나! 포기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못 할 일이 뭐가 있을까? 더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세계여행이라는 꿈 앞에 또 젊은 날의 나처럼 설레게 된다.
며칠 동안 여행의 이유를 생각해보면서 다시금 떠나야 할 용기가 생겼다.
낯선 곳에서 또 다른 나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
순간적으로 최대치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모든 감각들이 일깨워 주는 것.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충만한 것.
내가 좋아해 마지않는 여행을 원 없이 떠날 수 있는 날이 오기를희망해본다.
7년여 동안 약 20번의 여행을 다녀왔다. 짧게는 2박 3일, 제일 길었던 여행은 약 2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