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퇴사계획, 어쩌면 은퇴계획 -
해가 짧아지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면 어김없이 업무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나에게 겨울은 곧 야근의 계절이다. 겨울에 태어난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겨울이 제일 싫어졌다. 긴 겨울을 지나 봄이 오면 또 한숨을 돌린다. 그러다 보면 여름 지나 가을, 또 두려운 겨울. 반복되는 계절만큼이나 익숙해진 패턴에 따라 매년 괴롭지만 성실하게 주어진 역할을 해냈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한지 만 16년이 흘러 2022년 여름 조금은 한가했던 어느 날, 문득 2025년으로 세팅되어 있던 은퇴계획을 들여다봤다. 2025년까지의 목표자금과 이후 계획들이 정리되어 있는 신기루 같은 은퇴계획표. 2020년즘 만들어놓은 것 같은데, 그때는 뭔가 끝이 보여야 지금하고 있는 고생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서 2025년을 은퇴 D-day로 잡았었다. 20년을 조금 못 채운 만 19년 노예생활의 종지부를 찍겠다는 다소 무모하지만, 아주 계획적인 목표였다.
그런데 작년 여름, 은퇴계획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꼭 2025년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당시 여러 문제로 회사에서 심적으로 힘든 상황을 견뎌낸 뒤였는데, 견뎌내고 나니 오히려 퇴사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졌다. 힘든 일은 언제든 또 예고 없이 찾아올 수 있으니까. 몇 년 더 일할수록 통장잔고는 늘어나겠지만, 그 몇 년을 괴롭게 사느니 행복하지만 검소하게 사는 게 더 낫겠다 싶었다. 그래서 퇴사계획을 조금 앞당겨 1년만 딱 더 일하기로 다짐했다. 그래서 2023년을 D-day로 은퇴계획을 수정했다. 목표자금은 줄었고, 지출계획은 전보다 타이트해졌지만, 그래도 마음속에는 뭔가 확신이 있었다.
사실, 나이 마흔에 회사를 은퇴한다는 것이 지금 같은 백세시대에서는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 60세까지 일을 해도 이후에 40년을 더 살 수도 있는 세상인데. 쉽진 않지만, 나는 알 수 없는 미래보다는 지금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냐면서. 항상 현실적인 꿈만 꾸던 내게 이제와 무모한 꿈 앞에서 퇴사할 용기가 났다.
작년 여름, 마음속에 '아주 계획적인 퇴사'를 결정하고 나니, 모든 것이 명확해지고,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매년 퇴사에 대한 고민은 잊지 않고 불청객처럼 찾아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 불청객의 손을 이제는 잡아야 할 때라는 확신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 앞으로 1년 동안 잘 마무리하고, 2023년 계획대로 은퇴하겠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