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백 하나, 박스 하나도 왠지 쓸모가 있을 거 같아 버리지 못하고 고민할 때가 있었다. 똑같은 디자인의 옷을 깔별로 구입하기도 했고, 운동화로 신발장을 가득 채웠던 적도 있었다. 스트레스를 소비로 풀면서 온갖 물건 속에 파묻혀 살던 때가 있었다.
그러던 내가 어느 정도 물건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시작한 계기가 두 번 있었는데 하나는 회사가 지방이전을 하고 나서였다. 지방이전 이후 주중에는 사택에서 지냈는데, 아무래도 두 집 살림을 하다 보니 사택에 물건을 많이 가져다 놓을 수도 없었다. 옷도 거의 매주 돌려 입었고, 신발도 운동화 하나, 슬리퍼 하나가 전부였다. 걸어서 출퇴근을 하다 보니 제일 편한 운동화 한 개를 매일 신었다. 운동화가 닳아서 못 신게 된 게 처음이었다.
지방이전 이후 또 달라진 것은 옷이나 가방에 대해 욕심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인구가 적은 곳이다 보니 잘 보일 사람도 없었고, 회사-사택-회사-사택을 반복하다 보니 예쁜 옷을 입고 어디 뽐낼 곳도 없었다. 명품가방은 무겁기 때문에 가방도 에코백만 메고 다녔다. 그런 과정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살았는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얼마나 헛 돈을 쓰고 살았는지 말이다. 정작 남들은 내가 오늘 무슨 옷을 입었는지조차 기억 못 할 텐데. 예쁜 옷이 주는 자기만족도 있었지만, 더 이상 나에게는 금세 휘발되어 버리는 감정일 뿐이었다.
그렇게 지방이전한 회사에서 반강제적으로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살았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하게 된 두 번째 계기는 회사를 관두면서부터다. 장기 세계여행에 대한 열망을 안고 퇴사를 하면서 집을 정리하기로 했다. 기약 없는 장기 여행을 위해 집과 차를 모두 처분하고 가볍게 떠나기로 정하 고나니,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이 한순간에 쓰레기가 되었다. 내가 여행에 가져갈 수 있는 짐은 50L짜리 배낭 하나. 거기에 담지 못하는 모든 것은 버려야 했다. 지난 여름 내내 열심히 당근을 하면서 최대한 물건을 처분했다. 필요 없는 옷들도 정리했는데, 한 번도 입지 않은 나도 모르는 새 옷을 보고 기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팔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팔고, 나머지는 의류수거 업체를 통해 버렸다. 무려 80kg였다. 살 때는 비싼 옷들이 버릴 때는 고작 1kg에 300원이라니. 열심히 돈을 벌어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 기분이었다. 진짜 필요한 옷들만 남기고 나니, 옷장이 텅텅 비었다. 텅 빈 옷장을 보며 서운하기보다 뭔가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시원했다. 무엇을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기분이 좋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있어서, 파이어(FIRE)를 목표로 삼으면서 미니멀리스트가 되는 것은 첫번째 조건이었다. 물건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기분이 좋아지기 위한 소비가 아니라, 꼭 필요한 데에만 소비하는 것. 하지만, 아직 내가 미니멀리스트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아직도 때로는 예쁜 것에 흔들리고, 여유만 있다면 사고 싶은 게 한가득이다. 그래서 나는 강제로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했다. 오늘도 채우기보다 비우기를 실천하며 미니멀리스트이자 파이어족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미니멀리스트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