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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ma Sep 20. 2022

감정의 틈

 배가 고픈 것처럼 마음이 고픈 날이 있다. 거울에 미세한 금이 간 것처럼, 내 삶에 미세한 틈이 생긴 것 같은 답답한 마음에 털어놓아보지만, 돌아오는 말들 중에서 그 무엇도 내 마음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은 없다. 위로를 받으면 그렇게 까지 위로받을 일인가 싶어 심각해지기도 하고, 공감을 받으면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다가도 당신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 생각하니 현실이 암담하다. 너보다 힘든 사람이 많다는 말은 남과의 비교에서 오는 말이라 듣기 거북하고, 날카로운 지적을 받으면 말린 미역 40인분을 물에 불렸을 때만큼 분노치가 상승한다. 그리고 모든 가능성의 답변들은 한 사람에게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나에게 질리진 않을까 또 걱정된다.      

 

 마음이 고프다 못해, 감정이 제멋대로 오르락내리락하는 내가 싫어 핑계를 만들기 위해 이유를 찾아본다. 호르몬의 영향인가 싶기도 하고, 오늘 하루의 시작이 잘못되었나 싶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이유를 찾기 위해 끝없는 꼬리 물기를 하다 나를 탓하는 지경까지 온다. 내 자신이 신산스러워 보이고, 둘리에서 나온 가시고기가 된 것만 같다. 배가 고프면 음식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마음이 고플 땐 무얼로 채워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모든 것은 나의 의지라고, 내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하지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이 마인드 컨트롤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그렇게 많은 책들이 나왔지 싶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말을 하고, 많은 음식을 먹고, 많은 정보를 듣는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나 넘치도록 많은 것들을 하면서도 허기진다 말하니 '나 진짜 정신병 아냐?'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내 정신은 건강하지 않아. 나는 나약한 인간이야.'라고 내 자신을 탓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억지로 잠을 청한다. 사실 밤새 뒤척이거나, 새벽에 잠에서 깨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줄 알았다. 하지만 억지로 잠을 청했다고 하기에도 부끄러울 만큼 깊은 수면에 빠졌다가 개운하게 눈을 떴다. 아무렇지도 않다. 아니, 오히려 기분이 좋다. 눈을 쬐는 볕에 눈을 떴는데도, 침대 끝에 웅크리고 자서 어깨가 결렸음에도 기분이 좋다. 어제 겪은 감정의 허기짐은 내가 겪은 일이 아닌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사이에 존재하는 감정의 틈만큼 어제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정도로. 이것은 비단 나의 이야기 만은 아니겠지.     

 

 틈은 늘 존재한다. 물건들의 틈, 시간의 틈, 감정의 틈,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라는 틈까지도. 감정의 틈을 메우기 위해 나는 찾고, 채우고, 비우고를 반복하지만 같은 행동이라도 결과는 늘 다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가득 차는 날이 있고, 1분 1초를 쪼개고 또 쪼개어 써도 하루를 버린 것 같은 날이 있다. 틈을 메우면 틈이 아니게 된다. 글을 쓰기 시작했던 나의 감정과 글을 마무리하려는 나의 감정에도 틈이 생긴 것을 보면 처음부터 틈은 메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감정이 아니었을까.      

 

 아무리 틈이 있다 한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앞으로의 나는 모두 '나'이다. 행복할 땐 마음껏 행복하고, 슬플 때는 마음껏 슬퍼하다 나 자신을 위로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위로가 되는 것은 넘치고, 나는 이미 많은 위로를 받고 있었다. 좋은 책을 읽다가 발견한 한 문장에 위로가 되고, 좋은 사람의 전화 한 통, 그 마음 씀씀이에도 위로를 받는다. 아침에 잠에서 깨는 순간 따뜻한 볕에도, 길을 지나다 만난 고양이에게도, 비가 오는 날 땅에서 올라오는 흙냄새에도, 사소하다 생각했던 모든 순간이 위로가 된다. 앞으로도 나에게는 수많은 틈이 생길 것이고, 나는 감정의 틈에서 마음이 고프고, 허기짐을 수없이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 틈 사이에서 더 단단한 사람이 되고, 나에게 더 괜찮은 내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다독거리며 헤쳐나가겠지. 여태 그래 왔던 것처럼, 지금 글을 쓰며 위로를 받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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