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호흡만으로도 충족이 되던 내가, 결핍을 알게 된 것은 책이었다. 나의 내면에 있던 결핍들을 마구 헤집어 놓은 문장들로 인해 나는 절대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결핍의 방들은 무수히 늘어갔고, 나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결국 채워주는 것 또한 책에서 얻은 문장이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결핍을 결핍으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것은 마음의 부름이고, 나를 이끄는 소리였으며 조금 더 원하는 방향으로 안내해 주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나는 마음이 내키는 것과 내키지 않는 것을 모두 해보며, 나를 통해 삶의 해답을 찾고 싶었다. 마음이 내키는 것에 대한 행동이 마음의 부름이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통찰과 지혜의 시선이 필요했고, 그것을 갖기 위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고 안았다.
극단적인 상황이 두 가지 있었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는 것을 하여 소중한 벗을 얻었고, 마음이 내키는 것을 해 삶이 피폐해졌다. 결국 후자를 보며 알게 된 사실은 내 마음이 동한 이유가 '쾌락'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거부하거나 모른 체하지 않았다. 그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고 수긍하고, 바라보았다.
마음의 부름은 성공과 실패가 아닌,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들여다볼 수 있는 순간을 선사해 주었다. 피폐해진 삶에서 얻은 경험치는 피폐함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자격을 주었고, 내키진 않았지만 결국엔 그 일로 만난 소중한 동료는 인생에 다신 없을 벗이 되었다.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난 일은 없기에 내 존재 자체에 대한 유의미함이 생겼고, 실패와 좌절 무기력함과 분노라는 감정에 휘둘리던 내가 자연스럽게 감정을 받아들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몰랐다면 오히려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에도 고민 없이 대답을 한다. '몰랐다면 진정한 행복도 평생 몰랐겠지'. 아주 정신없이 살고는 있지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감정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우연히 만난 좋은 책에서 나의 마음을 울리는 문장을 만났을 때의 감정은 더없을 위안이고, 우연히 펼친 책에서 현재의 내 상황에 꼭 필요한 문장을 만났을 때는 운명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전히 나는 마음의 부름에 따라 여러 갈래의 길을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다. 어떤 길 하나라도 오래 방치되어 있지 않도록 끊임없이 뛰어다니다 보니 어느 하나 정돈된 길은 없다. 어쩌면 수없이 많은 길 중에 대부분의 길이 풀숲을 원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욕심에, 아쉬움에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뛰어다니다 보면 더 자주 가고, 더 오래 머물고 싶은 곳이 생기리라 믿는다. 내 마음의 부름을 따라 부지런히 뛰고, 또 뛰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