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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진 Jan 29. 2024

노자와 마리아주

맛을 맛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맛이 아니다.


사람들은 개인적 '선호도'가 모두 다르다. 이와 별개로, 동시에 미각 및 풍미에 대한 '민감도' 또한 상당히 다르다. 이는 중요한 사실인데 내 입맛에 써서 삼킬 수 없는 맛이 다른 사람에게는 입맛을 돋우는 쌉싸래한 맛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선호도와 민감도는 시간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학생 때는 써서 삼키기 힘들었던 술과 커피가 나이가 들어서는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맛'으로 자리 잡는다.


'선호도'가 개인의 주관성에 기울어져 있다면, '민감도'는 상대적으로 측정과 비교가 가능한 객관성 쪽으로 기울어져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호나 취향을 이야기할 때 그 의미를 자세히 뜯어보면 '선호도'라는 주관의 요소와 '민감도'라는 어느 정도의 객관의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두 사람이 똑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느끼는 감각과 만족도의 정도가 다르며, 나아가 내가 느낀 그 감각을 과연 상대방이 같은 정도로 느꼈는지 파악하는 일은 매우 힘들다는 것을 암시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문장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와, 노자의 도덕경 첫 구절 "도가도 비상도"를 함께 떠올린다. 언어는 현상을 추상으로 붙잡아 놓는 도구이다. 즉, 언어는 현상을 파악하는데 본질적 한계를 가진다. 실제로 존재하는 것도 표현하기 힘든데, 관념적인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도라고 말할 수 있다면 도가 아니다. 맛도 그러하다.


맛도, 아니 정확히 맛이 그러하다. 특정한 음식을 두고 수많은 의견이 존재할 수 있지만, 우리는 어떤 '맛'이 언어로 표현될 때 그것은 누군가의 언어세계의 한계 안에서 존재하는 맛이라는 것을 무의식적이나마 깨닫는다. 논리를 확장해 보자면, 우리 모두를 만족시키는 이상적인 마리아주(그게 와인과 음식의 조합이건, 하나의 요리를 구성하는 재료들 간의 조합이건)를 찾고 반박의 여지없는 공감을 끌어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루기 힘든, 매우 이상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맛의 조화'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매우 관념적이기에 현실에서 절대적 공식으로써 존재하지 않는다. 극단적인 예로 레드 와인과 초콜릿의 조합은 맛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는데, 초콜릿의 강한 쓴맛이 와인의 풍미를 완전히 죽여 전혀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부적절한 조합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초콜릿과 와인은 낭만의 상징으로 밸런타인데이가 다가오면 마트에 나란히 함께 진열되어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혀의 만족과 머리의 만족은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내가 좋아 내 돈 주고 먹겠다는데 초콜릿과 와인을 함께 먹는다고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 삶에서 '맛'을 중요한 단어로 삼는 요리사나 외식사업가들이라면 가깝게는 '단짠', '매콤 달콤', '새콤달콤'같은 대다수가 공감하는 맛의 공식부터, 분자 형태에 따른 향미의 복잡한 조합까지를 고려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처럼 이상적인 '맛'의 세계에는 나름의 공식이나 정답이 있을 수 있겠으나, '만족'의 세계에는 답이 없다.


초콜릿과 와인


그럼에도 우리가 '마리아주' 즉 음식과 와인의 조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시너지 효과' 즉 '상승효과'를 보기 위함이다. 서로의 장점을 살려주는 동시에 단점을 가려준다. 상승효과의 수혜를 얻고자 한다면 와인을 살리던지, 음식을 살리던지, 아니면 그 둘을 함께 입 안에 넣었을 때 전체적 감각을 더 높이던지 여러 방향으로 나눠 생각해 볼 수 있다.


맛의 관점에서 보자면 음식이 와인에 미치는 영향이 그 반대보다 훨씬 크다. 식사의 맥락에 있어서 음식의 다양하고 복합적인 맛이 상대적으로 섬세한 와인을 압도한다. 그래서 음식은 와인에게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쉽다. 일상적으로도 음식이 와인보다 주인공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외식 장소를 음식을 기준으로 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갑자기 아껴둔 프리미엄급 와인을 갑자기 오픈하고 싶은 날이 있고, 2차로 자리를 옮겨서 이제 와인'을' 한잔 할까?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와인이 음식을 앞서는 경우다.


자칫 황당할 정도로 당연하게 들릴 수 있는 이 개념은, 외식업 비즈니스의 관점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오늘의 주인공이 '음식'인지, 아니면 '와인'인지에 따라서 마리아주를 포함한 전체 식사의 맥락을 사전에 섬세하게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의사결정 메커니즘을 자세히 분석함으로써 레스토랑이 지향하는 콘셉트, 식재료와 메뉴들의 정체성, 나아가 비즈니스 포지션의 방향을 조정할 수 있다. 이는 궁극적으로 실제 소믈리에, 요리사, 레스토랑 오너 등 음식과 와인을 다루는 다양한 주체들의 행동을 결정한다.

 

'도'만큼이나, '맛'도 깨치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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