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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진 Feb 05. 2024

사장님, 풀빵 안에 뭐 들었어요?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 맛의 절반도 추억이다.


나는 어려서 몸이 약했다. 특히 치과와 이비인후과를 단골로 삼았다. 말 그대로 학원 가듯 병원을 다녔었다. 자갈치를 옆에 둔 동네에서 국민학교를 다녔는데, 그래서 그런지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알듯 말 듯 시내를 감쌌던 그 옅은 바다내음을 떠올린다. 이비인후과를 가려면 그 시내로 나가야 했다. 이비인후과 근처에는 시민제과라는 그 당시 나름 고급 제과점이 있었다.


내 기억에 우리 엄마는 단 한 번도 그 제과점 안으로 내 손을 이끈 적이 없었다. 음식에도 호기심 많은 우리 엄마의 성격을 고려하면, 정확히는 이끌지 못했던 것이 맞지 않나 싶다. 대신 엄마는 이비인후과 진료가 끝나면 아주 가끔, 마치 시위라도 하듯 시민제과를 마주보고 용감하게 풀빵을 팔고 있는 할머니에게로 나를 데려갔다.


보통 풀빵이라 함은 붕어빵처럼 단팥‘씩이나’ 들어가는 음식이라는 걸, 나는 20년도 더 지나 스페인에서 디저트 과제 발표를 준비하면서 처음 알았다. 시민제과 건너편 할머니가 팔던 풀빵은 국화빵 틀에 끈적끈적한 밀가루 풀을 붓고, 황설탕을 한 스푼 넣어 구워 낸 게 다였다. 향이라도 풍부한 모스코바도 원당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노오란 황설탕.


내게 풀빵은 평생 그런 것이었다. 베어 물면 덜 익은 밀가루풀이 훅 쏟아져 입천장을 데기 십상인, 엄청나게 뜨겁고 끈적끈적한 빵. 가끔은 학교를 마치고 해가 떨어지는지도 모른 채 할머니가 구워내던 풀빵을 하염없이 구경하던 내가 기억난다.


<”이번의 과제를 위해서 한 가지 한국의 디저트를 골라야 했을 때, 즉시 떠오른 것이 바로 풀빵이었다. 풀빵은 한국의 길거리 음식 중 하나로 국화 모양이 새겨진 틀에 묽은 밀가루 반죽과 팥소 등을 넣어 구운 빵이다. 풀빵은 풀과 빵의 합성어인데, 풀은 pegamento를 의미한다. 과거 한국에서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용도 이외에도 접착제의 용도를 위해 묽은 밀가루 반죽을 종종 쓰곤 했다. 그래서 지금도 경우에 따라 묽게 만든 밀가루 반죽을 “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김치에도 발효를 돕기 위해 이 "풀"이 쓰인다.


한국은 전쟁 이후 전 세계에서 유래 없는 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이룬 나라이다. 이제 풀빵은 사실 길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아마 설탕만 들어간 풀빵을 사고팔기에 한국은 지나치게 잘 사는 나라가 되어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터넷을 보면 아직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풀빵을 그리워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맛있는 것이 지천에 널려 있는 지금, 왜 사람들은 하찮은 풀빵을 찾을까?


미식의 관점에서 풀빵이 훌륭한 디저트라고 말하긴 어렵다. 묽은 밀가루 반죽에 팥소, 심지어 그나마는 흑설탕만 들어갈 때도 있다. 재료도 조리법도 평범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것이 풀빵의 정체성이다. 풀빵의 정체성은 소박함이다. 계란이나 버터, 우유가 들어가는 순간 그 정체성을 잃고 다른 종류의 빵이 된다. 화려하다면 풀빵이 아니다. 그것이 풀빵이 가진 개성이자 역사이다.


음식은 때때로 음악처럼 우리를 순식간에 어떤 과거의 순간으로 돌려놓곤 한다. 나는 풀빵을 떠올릴 때면 언제나 엄마와 함께 풀빵을 쥐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린 내 모습을 떠올린다.”>



“추억의 절반은 맛이다”라는 박찬일 작가의 말을 반대로 인용해, “맛의 절반은 추억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맛은 우리 추억 속에, 사람과 삶 속에 녹아 있다. 내가 공부하는 것이 단지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찾기 위함이 아닌, 우리 삶에 음식이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끊임없이 되묻고 고찰함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미식학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깨달음이자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사장님, 풀빵 안에 뭐 들었어요?”
“풀빵 안에 당연히 팥 들었지, 그럼 뭐가 들었겠어요?”
“아.. 그럼 그냥 오뎅만 먹을게요”


겨울 길거리에 우연히 풀빵 파는 곳을 보면 결코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내 정서는 여전히 팥 ‘씩이나’ 든 고급 붕어빵보다 그냥 맹숭한 풀빵이다. 오뎅을 씹으며 별안간 풀빵의 맛을 떠올린다. 엄청나게 뜨겁고 끈적끈적한, 성격 급한 내가 유일하게 식혀서 먹던 싸구려 빵. 뉘엿뉘엿 지는 노을과 짭짤한 바다냄새 사이를 건너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와 나. 이제는 어디서도 팔지 않는 이 맹한 설탕 풀빵이 여전히 그립지만, 사실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은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나도 잘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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