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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명진 May 04. 2021

좋은 아이스크림

창의성의 기원

“좋은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열쇠는 얼렸을 때 얼음 결정, 농축 크림, 공기가 균형을 이루도록 혼합물을 배합하는 것이다. ”
- On food and cooking p.78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인 pastelero (제과사) 중 한 명 이자, 이미 전설의 반열에 든 스페인 지로나에 위치한 El Celler de Can Roca의 막내 Jordi roca. 넷플릭스의 chef’s table 조르디 로카 편을 보면 그의 역작 ‘하바나로의 여행(시가향 아이스크림)’이 탄생하는 순간을 그 특유의 속삭이는 목소리와 함께 너무나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두 형과 달리 막내 조르디는 뒤늦게 방황을 마치고 그의 가족 사업이었던 레스토랑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그는 아이스크림 제조법을 dominar(지배하다)하길 원해 외부에서 배움을 구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깨끗한 공기’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아이스크림에 잡내가 배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어느 날 그는 살금살금 주방에 들어와서는 주변에 직원들이 없는지를 살피고는, 몰래 아이스크림을 만들면서 깨끗한 공기 대신 대마 연기를 내뿜어 주입시킨다. (자막은 담배라고 번역되었지만 들어보면 대마초라고 말한다. 정서상 바꿔 표기한 듯하다.) 아이스크림에 탁한 공기를 주입한다는 아이디어는 어찌보면 단순한 생각이지만(이에 어느정도 익숙해진 지금에서야), 그 이전까지는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이었다. 그의 역작은 그렇게 탄생했고, 조르디에게 태산 같던 두 형은 그들의 작은 막내의 등 뒤로 빛나는 천재성을 보았다고 말한다.

한국에서도 어느 순간 “요리는 과학이다” 라는 명제가 요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마저 가까워졌다. 원리를 이해한다는 관점에서 나 또한 요리의 과학적 접근이 과거 도제식을 포함한 그 어떤 것보다 효율적이며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요리를 배움에 과학적 원리의 틀에만 갇히는 것을 나는 의식적으로 두려워한다. 수학 공식을 이해한다고 수학 문제를 잘 푸는 것이 아니듯, 요리의 바탕이 과학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결코 과학의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과학은 이상의 세계를 다루는 학문이다. 그러나 요리는 과학을 넘어 철학과 역사 그리고 지극히 세속적인 자본의 영역이다. 요리 안에는 과학 이외에도 그만큼이나 무거운 단어들이 존재한다. 요리에 과학적 요소들을 학습하는 것의 목적은 조리의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기존에 우리에게 익숙한 사실들을 재확인하며 오류를 수정하고, 그 지점에서 깨달은 사실을 활용해 지금까지 적용된 적 없었던 새로운 대상에 닿을 수 있다는 점을 깨우치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상상과 창의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과학이라는 도구의 사용 자체가 아니라, 방점은 언제나 ‘맛’과 ‘즐거움’에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영혼 빠진 수많은 분자요리가 탄생했고 또 그렇게 사라졌다.



인간은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모두 다른 감정을 느끼고, 같은 문장을 읽더라도 누군가는 행간에서 다른 의미를 읽어낸다. 같은 배움에 있어도 누군가는 그 무게감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법이다. 조르디의 작품이 책상머리 공부가 아닌 그의 반항적인 삶에서 발현되었듯, 종종 천재성으로 포장되는 세상의 많은 빛나는 성과는 어쩌면 평범한 누군가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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