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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형지 Apr 14. 2022


근데 너 왜이렇게 귀여워?

코로나 병동 간호사의 주저리


갑자기 당황스럽겠지만 현시점 코로나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의 모습을 담은 짤이라고 한다.



이 정도면 진짜 모르고 지나간 건가 싶기도 하고. 확진된 동료들과 밀접 접촉을 하거나 생활해도, 환자들을 간호하며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빈도가 늘어나도 현재로선 확진경험이나 감염 증상이 없어 감사하다. 솔직한 심정으로 지난 두어 달간은 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어서 차라리 감염되어 몇 날 푹 쉬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품었던 것 자체를 반성하는 요즘이다. 아무리 코로나가 계절성 독감으로 전환을 앞두고 있는 시점일지라도,이 망할 놈의 바이러스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고통을 안겨주며 뻔뻔스럽게 잔재한다. 



3차 접종을 마친 젊은 간호사여도 전신증상을 호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경우는 빈번하고, 의료인이라는 이유로 완치되지 않은 몸뚱이를 이끌고 2~3일 만에 출근해 의료공백을 메워야만 한다. 나를 위해서도, 동료를 위해서도, 환자를 위해서도 면역력 향상에 힘쓰고 근무 시 감염관리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겠다고 되뇌인다. (현재로서는 방역의 의미가 무의미한듯하지만)



코로나는 자사(병원)에 지난 3개월간 140명의 사망자를 안겼다. 한 달에 4~50명에 달하는 인간이 숨을 거두었다는 뜻이다. 거기에 병상/인력 부족을 이유로 베드 밖에서 죽어간 인간들과 이송 과정을 버티지 못하고 허망히 사망한 환자들까지 더하면? 당연하고 익숙하던 죽음들에 무던해진 감각들이 명백한 수치로 닿자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깨어진다.  



찰나의 순간에 참으로 많은 삶이 죽고 병이든다. 이는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을 자명한 진리이자 자연의 섭리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명제를 마땅히 수용할 수 있는 정신력과 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의 나는, 본인에게 둘러싸인 죽음의 크기가 얼마나 지대한 것인지 체감하며 실색한다.

그래서 때때로 무기력해졌다. 삶의 유한함에서 기인한 연속된 소생실패는 내가 하는 일들의 가치를 무자비하게 깎아내린다. 무용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널브러져 하루를 보내는 날이 전보다 늘었다.



/



그러던 중 조금 여유가 생겨 중년의 환자와 잠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누가 봐도 오랜 기간 암을 투병해온 morphology의 그는 물병 뚜껑을 따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때때로 혈압계가 팔을 조이는 압마저 견디기 힘들어했고, 식후에는 노곤해져 잠에 취하다가도 한쪽 폐가 없는 그는 발작적으로 일어나 호흡곤란을 호소하며 고통스러워하기도 했다.



우리 아부지보다 딱 한 살 많은, 또 다른 자녀의 아버지였던 그의 투병을 지켜보며 측은지심이 섰다. 

아빠'를 매개로 평소보다 더 깊게 감정을 이입하던 나는 볼이 쏙 패인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 아버님. 힘드시죠, 그래도 식사도 잘 하셨고 지금은 숨찬감도 없으니까, 

   수혈하는 동안은 좀 누워서 쉬세요." 라고 위로를 건넸다.

환자는 알겠다고, 계속 이것저것 부탁해서 미안하다며 신경 써주어 고맙다는 말을 덧붙였다. 



건강을 잃었다는 이유로 감내하고 포기해야 할 것들은 어쩜 그리 차고 넘치는지. 환자의 감정과 삶을 쉬이 재단하고 연민하지 말자고 늘 다짐하면서도, 나는 또 자연히 선을 넘는다. 한톨도 남지 않은 머리카락처럼 무미한 환자의 표정은 두려움, 고통, 절망, 단념 따위를 감추기 위한 위태로운 가면일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 아버님. 근데 왜 이렇게 귀여우셔? 귀엽단 말씀 많이 들으시죠? " 

" 택도 없는 소리 " 

하지만 이내, 그는 지긋이 웃는다. 



나는 이 순간을 몹시도 좋아한다. 질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특히 환자들에게 '귀엽다'는 문장을 자주 남발한다.실없는 장난처럼, 가볍게 나의 위로와 응원을 전달할 수 있는 덕이기도 하나 삽시간에 반전된 표정은 극복, 행복, 희망, 의지를 직관적으로 담고 있기 때문키도 하다.마른 피부와 혈관에 생기가 도는 그 찰나에. 나 또한, 그리고 역시, 에너지를 얻는다.



다시 한번 선명해진다. 그래. 나는 환자가 있기에 존재한다. 그러니 환자를 통해 세상을 경험하고 느끼며 영향을 받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러니 부디 무력해지지 말자. 생이 무상한 것이라고 자조하며 소중한 순간들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지말자. 삶에게 무심함을 가장해 무례하게 굴지 말자. 매일의 연속성과 지속성이 안겨주는 일상의 안락함에 치열하게 감사하자. 그 특별한 삶의 의미를 마주하게 하는 환자들에게 기꺼이 봉사하자. 포용하자. 사랑하자. 기적 같은 오늘을 전신으로 살아내는 대견한 나에게 말해주자. 괜찮아. 잘 하고 있어. 



근데 너 왜 이렇게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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