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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형지 Jun 20. 2021

이주의 환자

옥돔주의보


월요일 - 옥돔 주의보


옥돔이나 회를 본래도 즐겨먹는 편은 아니지만 옥돔으로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다가 

장루까지 만든 환자를 만나니 어째 더욱 꺼려지는 기분 (사진 주의)

물론 옥돔 넌 잘못이 없다는 거, 모두 알아. 그러니 기분 풀어라.


이 옥돔 뼈가 장을 천공시킨 후 급성감염 및 어마어마한 복통을 유발했다.


환자는 50대의 젊은 중년 여성으로 본인이 옥돔 뼈를 삼킨지도 몰랐다 했다. 

후에 복원수술을 할 예정이지만 앞으로 몇 개월간은 변기 대신 장루와 친해져야 하는 그녀는 그래도 경과가 좋은 편이었다. peritonitis(복막염)의 불량한 예후를 참 많이도 봤기에 새삼스레 놀란 정도로?


하루 ICU care 하고 전실한 환자는 그 좋아하는 옥돔과 당분간 거리를 두어야 하겠지만

그만큼 빨리 회복할 거라는 예감이 든다. 쾌차하세요! 복원술도 잘 받으시고요.


P.S 수술 집도한 Doctor 말로는 이쑤시개 먹고도 모른 사람 있었다고 한다. 

놀라운 인체의, 아니 인간의 세계.




화요일 - 엄마, 엄마, 엄마...


'엄마'를 한없이 부르는 큰딸의 나이 역시 적지 않아 보인다. 수십 번을 연속해 외쳐보지만 엄마는 답이 없다. 축 처진 사지 위  의미 없는 근육수축은 자꾸만 온 신경을 곤두세우게 하고 엄마가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게 한다.아무것도 알아듣지도,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엄마를 부르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는 지독한 무기력에 대항하기 위해서 주변에 아랑곳 않고 목소리 높여가며 '엄마'를 부르는 그녀의 음성에 처절함 같은 것이 함께 새어 나온다. 


 소리가 잠시 잦아들었을 때, 환자 상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위해 그녀 옆에 섰다. 그녀는 먼저 묻는다. "엄마가 제 목소리를 알아 들으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팔도 움찔거리고요, 좋아지는 것 같아요."

나는 대답한다. "어쩌고 저쩌고 등을 이유로 이 움직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어쩌고 저쩌고 검사에서도 유의미한 발견이 없네요." 그녀의 갈 곳 잃은 눈동자에 선명히 비치는 나에게 미안함, 안쓰러움 같은 것은 것이 찾아든다. 이어 그 부정적 감정을 감추기 위해 영혼 없이 열거한 의학용어와 검사 수치들의 한없이 가벼운 무게를 실감한다. 한 줄기 간절함 마저 가차 없이, 참으로 매정하게도 잘라버리는 망나니(사형집행관)가 된 기분이다. 


 큰딸의 깊어진 주름에서 나의 엄마의 그것이 겹쳐진다. 어린 날의 기억이라 선명하진 않지만 엄마는 하나뿐인 아버지를 세상에서 떠나 보낸 날 모든 것을 내려놓고 미친 사람처럼 울었다. 그 광경은 형언할 수 없이 충격적이었다. 평생 강인하고 크게만 보였던 그녀가 목놓아 울 줄 아는, 그래서 엄마가 아닌 한 '인간'이라고 가슴으로 받아들인 순간이었고, 부모를 잃은 슬픔을 온몸으로 앓는 대상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깊게 이입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동시에 나 역시 그녀를 잃는 순간 이성을 찾지 못하고 허덕일 것이라는 가정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7살 어린아이의 시선으로는 어른도 저렇게 슬퍼할 수 있구나, 라는 사실이 너무도 낯설고 이질적이었다.


 그녀는 소리 내 울지 않았지만 마치 그날의 엄마처럼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엄마를 부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무력은 삽시간에 나 역시 갉아 먹는다. 싫다. '사실 이건, 의미 없는 움직임입니다'라고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우를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계속 불러주세요, 어머니 이름, 엄마요"


큰딸은 말없이 고개를 돌린다. 다시 엄마를 부른다. 

엄마, 엄마, 엄마... 




수요일 - 니들이 3L 마셔봐라.


대장 내시경용 하제.



 보기엔 깔끔하고 예뻐 보이죠? 이거 먹이는 자에게도, 먹는 사람에게도 정말 큰일이다. 특히 침대 위에서 똥오줌을 처리해야 하는 중환자실에서는 더욱이. 중환자실 단골손님 격인 할머니가 비교적 오랜만에 병원엘 오셨는데, 혈색소도 많이 떨어져 있는 데다 입원 APCT에서 별의별 진단이 다 나와서 대장 내시경을 필요로 했다. 


 약 12시간 동안 할머니는 하제 섞인 물을 토탈 3L나 마셔야 하는 극한 과제를 나와 같이 수행해야 했는데

L-tube가 있는 것도 아니고 oral로 하제 3L를 들이부으니 식도, 복부, 항문이 남아나겠냐고. 그냥 건강하고 젊은 사람이 한 번에 물 500ml 마시는 것도 얼마나 품이 드는데! 힘들어하는 할머니 어르고 달래서 억지로 먹이는 나놈 전신에 송구스러움이 깔려 쩔쩔맸다.(여기에 할머니는 치매  + self talking도 심해서 어떨 땐 잘 받아드시고 어떨 땐 협조가 하나도 안되어 좀 고되었다.)


 첫 번째 포지션에서 할머니는 자그마치 1700g의 묽은 대변을 보셨다. 4명의 간호사가 달라붙어 거의 Bathing 하듯이 몸을 닦아내고 시트를 갈았다. 밤 동안 폭주기관차보다 더 날 뛰는 항문 오프닝 덕에 추가적인 포지션 & 마무리 하제 먹이기를 통해 할머니의 장은 대시경 준비를 완료했다. 할머니는 괴롭힘에 성이 났는지 때때로 기저귀를 열어놓은 순간에 dung을 흩뿌리셨는데, 다행히 옷은 안 버렸다. 다만 마지막엔 참을 수없이 보대끼셨는지 맹물 300ml 정도를 그대로 토해내셨는데, 예상을 못 해서 맨손으로 그 물을 받아냈다. 이후로 손으로 막기에는 물이 댐 수준으로 터져 나와 물구토가 끝나기를 기다린 채 옷과 시트를 갈아입혀드렸다. 


할머니, 정말 많이 힘드셨죠? 그러니까, 앞으론 아프지 말고 만수무강하셔요.

그리고 당당하게 성내셔도 돼요. "내 나이가 몇인데, 니들이 한 번 물 3L 마시고 싸봐라" 




목요일 - 슬기로운 간호사 생활


 매주 챙겨 봤던 슬기로운 의사 생활의 시즌 2가 지난주부터 방영을 시작했다. 행복한 마음으로 주행을 시작했다. Episode 1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언급해보려 한다. Treat 하기 어려운 산모를 두고 일반적이고 안정적인 방향을 택하느냐, 혹은 적은 확률일지라도 환자의 간절함을 실현시키는데 집중할 것인가에 대한 딜레마가 그려지는데 캐릭터들의 담담함 때문인지 극적으로 닿기보다는 시사점을 많이 안겨준 것 같다.


 나 역시 내가 의사라면, 어떤 결정을 할까라는 고민점을 종종 마주한다. 특히 최근에 곧 사망하여도 이상할 것 없던 중환자들이 죽음이 아닌 '회복'으로서 중환자실을 연달아 퇴실하는 모습에 과연 나라면, 그것이 단 1%의 확률일지언정 극한 Condition의 환자들을 포기하지 않고 끌고 갈 수 있을까, 하고 자못 진지하게 헤아려본 것이다. 사실 아직도 모르겠다. 

 

 의식과 기력을 찾을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이는 환자를 간호하고 있노라면 '인간'을 돌본다기보다는 '하나의 신체'를 더 상하지 않게 보수하는 수리공 같다는 감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자연히 희망적이고 푸른 미래는 연상키 힘들다. 그럼에도 희박한 성공률을 택하는 자들의 기저에는 어떤 전제가 깔려있는 걸까?


"산모랑 아이를 도와주고 싶었어"라고 말하는 석형처럼 지극히 감성적이고도 인간적인 이유일 수도 있겠고, 죽음을 턱 끝까지 맞이했다가도 몸에 빼곡히 박힌 수많은 배액관과 장치들을 하나씩 빼내고 자리한 상흔에 생명력을 채워 넣고야 마는 인체의 기적을 체험한 탓일 수도 있겠다. 사실 어느 쪽에 더 힘을 실어주거나 지지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저 자신만의 감을 믿고 책임감 있게 선택한 바를 풀어나가려는 군상들이 바로 슬기로움을 아는 자들이 아닐까, 생각해 볼 뿐.


inspired from. Bladder rupture. 15. K.




금요일 - 천운이다.


'천운이다'라는 말은 인간이 느끼는 다행감을 극적으로 표현해낸 문장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비운의 편에 선 인간들에겐 더 없는 상처가 아닐까. 것도 본인의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이


        버스가 정류장 정차 순간 와르르… 붕괴 건물에 깔려 9명 사망

재건축 현장에서 철거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버스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664번지에서 재건축중이던 5층 건물이 붕괴했다. 건물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옆을 지탱하고 있는 비계와 건물더미가 시내버스가 있던 도로쪽으로 갑자기 무너졌다. 삽시간에 건물잔해는 시내버스를 덮쳤다. 소방당국은 현장에 출동, 건물잔해에 매몰된 사람들의 구조에 나섰다. 이 사고로 4명이 숨지고, 8명이 중상을 입었다. 사망자는 60대 남성과 여성 등이다. 그러나 이날 오후 7시50분 현재 건물더미가 덮친 버스안에는...

www.chosun.com


 지난주 광주에 큰 사고가 있었다. 뉴스를 접하고 가슴이 콩알만 해져버렸다. 본가에서 차로 5분이 채 걸리지 않는 장소에서 일어난 비극에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었다. 내가, 가족이, 친구들이, 지인들이 뻔질나게 지나는 혹은 지났던 그 공간에 혹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갇혔을까 두려워져 상대의 휴대폰에 불이 날 정도로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몹시 불안해져 동생, 아빠에게 전화를 이어 돌린다. 자다 깬 남동생은 엄마가 집에 있다며, 부엌에 있어 전화 소리를 못 들은 것 같다고 생사를 확인시켜주었다.


그럼, 아빠는? 아빠도 집에 있는 거지? 

응. 

그래. 다행이다. 진짜. 


 영화에서나 볼 법한 끔찍한 사고는 각 포털사이트와 뉴스지에 대서특필 되었고 사망자와 중상자를 가른 원인에 '위치'라는 '천운'을 들며 비교하는 잔인한 부산물들이 뒤이어 쏟아졌다. 이따위 글을 뉴스라고 써내는 인간들은 애도와 존중 '따위'는 가져다가 버린 건가. 


 사고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운이다'를 중환자실에서 다시 들을 줄은 몰랐다. 평소 같았으면 당연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을 텐데, 일명 '하늘이 하사한 운수'의 극명한 이면을 체감하고는 쉽사리 인정하기가 힘이 들었다. 


 출발점이 비슷한 환자 두 명이 있다. 편의상 A와 B로 나누어 서술하겠다. 둘은 50대 후반의 여성이었고, 뇌출혈을 주 호소로 입원하였으며, 내 또래의 딸을 보호자로 두었다. 다만 차이점이라 하면 A는 뇌출혈이 있었지만 빠르게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 크기가 적어 침습이 적은 시술과 약물 치료로 호전되었다는 것,

B는 Black brain으로 기계호흡과 위장관 튜브로 생을 연장 중이나 사실상 신체적 사망을 한없이 기다릴 뿐인 뇌사상태라는 것이다.


 또 하나의 현저한 차이점이라 하면 180도 다른 분위기의 보호자 면회 시간이다.

한편에서는 어여쁜 손글씨를 산뜻한 색지에 담은 쾌차 기원 편지와 맛깔스러워 보이는 사식이 전해지며, 

그 꾸러미 속 과일만큼 풍성한 미소를 가진 딸들이 재잘재잘 엄마에게 근황을 보고한다. 그 장면에 많은 이들이 기꺼워질 정도다.


"엄마, 진짜 천운인 줄 알아. 빨리 잘 먹고 팔 운동 열심히 해서 병실 가자!"


 한편에선 침묵과 애잔함이 지배적이다. 별일 아닌듯 상태 설명을 하는 나의 눈과 음성에 집중하는 듯 하나 보호자의 몸은 오롯이 엄마에게로 틀어져있다. 애써 고개를 끄덕이는 딸의 눈에는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있다. 설명이 마지막 문장에 당도하니 딸은 흐느낌 없이 울고 있었다. 면회 시간 동안 그녀의 얼굴에 그려진 눈물길은 폐쇄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심장이 덜컹, 하고 마구 흔들린다. 조금이라도 덜 울어보려고, 덜 티 내보려고 부릅 뜬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니 뜨거운 것이 왈칵거리며 올라오는 듯했다. 세면대로 향해 타월을 여러 장 뽑아 겹쳤다. 그녀의 가슴팍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를 건넸다.


"이게 뭐예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내 고개를 살짝 숙여 예의를 차렸다. 

나는 서둘러 모니터 뒤로 숨었다. 단 시선은 그녀에게 고정한 채.

딸은 한 손으로는 눈물을 훔치며 한 손으로는 엄마의 짧고 얇은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두개를 열어 배액관을 거는 큰 수술을 했던 지난날로 인해 머리가 빡빡 밀린 엄마의 두피에는 이제서야 자라난 머리카락이 그 이름값을 하기 시작했다. 짧은 머리칼 만큼 엄마에게 닿는 시간이 적어 아쉬웠는지 그녀는 엄마의 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 무어라고 말한다. 명확히 들리진 않지만 차라리 다행이었다. 만약 그녀의 문장까지 들으면 나는 아마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천운이라는 것은 이다지도 잔인하다. 


한편의 웃음과 행복감을 위해 한편의 슬픔과 애잔함이 공존해야 하는 병실 속 삶은 신의 장난을 넘어 차별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세상에서 생의 불공정함이 가장 많이 자행되면서 그 빈부차까지 지대한 공간은 병원 침대 위가 아닐까. 


그렇게 천운에 의미 없는 무게를 실어본 날이었다. 


간만에 근무 일지 겸 감상을 적어보았다. 제목은 작년에 재밌게 읽었던 독립 서적 '이달의 남자'에서 차용해봤다. 달마다 새로운 남자와의 연애담을 소개하는 형식의 단편소설 모음인데, 소설 쓸 능력은 없어 그저 실제 상황을 기록해보는데 그쳤다.

내가 근근이 근무 일지를 적어가는 이유의 중심은 기록하고 기억하기를 좋아하는 성향에 있지만, 때때로 '환자가 있어 내가 있다'는 명제를 잃지 않기 위함이다. 그렇게 환자에게 최선의 것은 해주지 못하더라도 

피해는 입히지 않을 수 있도록, 혹여 매너리즘에 빠져 둔감해지거나 무례해지지 않도록. 

더불어 환자들과 부닥치며 가슴으로 깨닫는 일상의 연속성, 삶의 지속성에 감사하기 위해서다. 내가 살아내는 오늘은 정말 많은 요소들이 각 자리에서 힘을 내어 주기 때문에 주어진 것임을, 나는 진정으로 이해한다. 어느 것 하나 온전한 내 힘으로 이뤄낸 것이 없음을 받아들이면 오히려 많은 것들이 쉬워진다. 욕심이 사라진다. 그러니 애쓰지 않는다. 사소한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감정에 솔직해진다. 번잡한 것들이 명료하게 정리된다. 순간에 집중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과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로 삶을 채운다.

그러니 나는 더딜지라도, 그리고 대단스러울 것이 없더라도 환자들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적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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