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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아 Nov 01. 2024

눈빛



 


  “인천역으로 가려면 인천행을 타면 되지요?”

  물으나 마나 한 말이었다. 그런데 청년의 대답이 뜻밖이다. 동인천행을 타야 한단다. 앞에 있던 아주머니도 들었던 모양이다. 돌아보지도 않고 인천행을 타란다. 그 사이, 이마에 ‘동인천행’이라고 써 붙인 열차가 들어왔다. 문이 열리고 동인천행이라는 안내 방송이 다급하게 들렸다. 그때, 내 뒤에 있던 할아버지가 이 차를 타야 한다며 사정없이 떠밀었다. 앞에 선 아주머니와 부딪쳐 고꾸라질 뻔하다가 차에 올랐다. 중심을 잡고 보니 눈길이 저절로 승강장 쪽으로 갔다. 아주머니는 “내려요. 내려!” 하고 소리쳤다. 왕배덕배 하는 사이에 기차는 출발하고 말았다. 

  인천에 있는 약속 장소로 가는 길이었다. 길치인 데다 초행길이어서 집을 나설 때부터 긴장했다. 신도림역에서 내려 인천행 승강장까지 가는 길을 단번에 찾았을 때는 내가 생각해도 신통방통했다. 우쭐하여 옆줄에 서 있던 젊은이에게 객쩍이 묻는다는 것이 뜻밖의 일을 만났다. 열차 안 승객에게 물었다. 두어 사람의 말이 또 달랐다. 궁금답답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그런데 분위기가 영 냉갈령이다. 어떤 이는 나를 의식한 듯 눈빛이 닿기도 전에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어쩌다 눈이 마주친 이는 노선표를 보면 될 것이지 왜 묻느냐는 듯, 턱 끝으로 찻간 위쪽을 힐끗 가리키며 먀얄먀얄했다. 발꿈치를 세우고 한 자 한 자 짚어가며 읽어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갑자기 열차 안이 고요하다고 느껴질 때였다.  

  “가시려고 하는 최종 목적지가 어딘가요?”

  몸을 돌렸다. 저쪽 승강구 바로 옆자리에서 한 중년 부인이 미소를 머금고서 나를 보고 있었다. 단아한 품새와 잔잔한 눈빛에서 목소리의 주인임을 직감했다. 

  “저기‧‧‧‧‧‧. M 호텔이요.” 

  “아, 인천역 근처에 있는 호텔이요? 신도림역에서 가려면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제가 알려드릴까요?”  

  그녀는 등받이에서 등을 떼어 나를 향해 앉았다. 아무래도 길이 복잡할 것 같았다. 다가가면서 귀를 세웠다. 

  인천행이나 동인천행, 다 된단다. 인천행은 완행이고 동인천행은 급행이란다. 인천행은 한 번에 가지만, 동인천행은 갈아타야 한단다. 동인천행을 탔으니 종점에 내려서 기다렸다가, 다음에 오는 인천행을 타고 한 정거장만 가면 인천역이라고 했다. 

  그녀가 다시 물었다.

  “몇 시까지 가야 하나요?”

  어느 역에서든 충분한 시간이란다. 동인천역에서는 택시를 타야 하고, 인천역에서는 걸을 수 있는 거리라며 인천역에서 내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M 호텔까지 가는 길을 자분자분 일러주었다. 

  “역 광장으로 나와 오른쪽을 올려다보면 언덕에 하얀 호텔이 보여요. 그 호텔이에요. 건널목을 건너면 오르막길이 나와요. 죽 따라 올라가세요. 언덕길이 참 아름답지요.”

  열차 바퀴가 소리를 높이더니 한참을 달렸다. 잠잠해지자 그녀가 다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녀에게로 바투 다가섰다. 

  “지금쯤에는 오른쪽 작은 돌담에 풀꽃 돋는 소리가 들릴 거예요. 오르다 보면 금세 눈앞에 서해가 펼쳐지지요. 큰 배들이 항해를 멈추고 쉬는 모습도 여유롭고요. 호텔 마당 가운데에 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어요. 나무에 기대어 바다를 보며 숨을 크게 들이쉬면 눈이 맑아져요.” 

  차창 너머를 바라보는 무연한 눈빛이 꿈을 꾸는 듯했다. 

  “인천엔 처음이신가요?”

  “네. 인천에 사시나 봐요?”

  “고향이에요. 열아홉 살까지 살았어요.”

  “인천도 많이 변했지요?”

  “봄이면 꽃바다였어요. 벚꽃이 피면 월미도로 소풍을 갔지요. 오월이면 아카시아 향이 섬을 감쌌구요. 그때는 인천이 그리 아름다운 줄 몰랐어요. ‧‧‧‧‧‧. 남겨두고 온 것들은 다 아름다운 것 같아요.”

  으밀아밀한 목소리가 봄동산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같았다. 그녀는 간간이 “지금이 어디지요?” 하며 방송에 귀를 기울였다. “다음 역은 송내!”라는 안내가 나왔다. 그녀가 몸을 숙이더니 발치에 있던 막대기를 주워 들었다. 

  “그럼, 저는 여기서 내릴게요. 인천 잘 다녀가셔요. 잘 알려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제가 앞을 못 보는 사람이라서요.”

  “똑, 똑‧‧‧‧‧‧.” 

  지팡이가 내 심장을 딛고 지나는 것 같았다. 열차와 승강장 사이가 넓으니 내릴 때 조심하라는 안내 방송이 어느 때보다 크게 들려왔다. 

  잠시 후, 객실 창에 하얀 손이 나타났다. 그녀가 승강장에 서서 나를 향해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볼웃음이 환했다. 멍해졌다. 나는 한마디 말도, 한 번의 손인사도 건넬 수 없었다. 당황스러워하는 사이에 열차는 플랫폼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네댓 정거장이나 지났을 때야 그녀가 앉았던 자리가 그때껏 비어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꽃눈 트는 소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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