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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금아 Nov 13. 2023

무화과가 익는 밤

 

                       

  가을에 들면 달빛은 마방(馬房)에 들어와 앉았다. 어린 말이 벌레를 쫓느라 꼬리로 제 몸을 치는 소리가 적막하기만 하다. 잔등을 쓰다듬을 때면 말은 어미를 부르듯 큰 눈망울을 들어 저편 하늘로 “히힝!” 소리를 날려 보냈다. 그곳 말 울음소리가 닿는 곳에서는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 아래에 서면 푸르레한 공기 속으로 철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밤하늘을 날았다. 새가 날아간 자리에는 오래도록 울음이 남았다. 그 소리가 밤의 젖줄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유선(乳腺)이 탱탱해진 밤은 유두를 열었다.  


  태어나서부터 젖이 고팠다. 어머니는 집안일에 밭일에 어장까지 돌보느라 젖먹이에게 젖 물릴 시간조차 없었던 것 같다. 고픈 젖을 쌀죽과 원기소로 채우며 자랐다고 했다. 아기 입에는 증조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젖이 물려 있었단다. 빈 젖이었으므로 헛헛증을 앓았다.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는 바쁜 어머니를 떠나 외가와 친가를 오가며 살았다. 

  가족과 함께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동기간과 싸워서 부모님에게 매를 맞는 것조차 부러웠다. 친가 앞집에 살던 ‘말 구루마 집’ 딸 향란이는 제일 부러운 아이였다. 그 애 언니가 우리 집의 일을 도와주고 있어서 그 집엘 자주 드나들었다. 식구들이 작은 방에 배를 깔고 누워서 발장난을 치며 만화책을 읽는 모습이 좋아 나도 향란이네 식구가 되고 싶었다. 어린 나이에도 저녁까지 얻어먹는 것이 미안했지만 밤늦게까지 놀곤 했다.

  잘 때가 되어 할머니 집으로 올 때면 무화과나무 아래로 돌아왔다. 아그데아그데 열린 무화과를 올려다보기만 해도 마구간의 어린 말처럼 “어무이예에!” 소리가 나왔다. 그러면 나무는 가지를 열고 이파리를 젖혀 무화과를 내밀었다. 금방이라도 누런 젖이 뚝뚝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발꿈치를 들고 무화과를 향해 손을 뻗으면 향란이네 고양이도 허기를 느꼈던지 내 기척에 귀를 쫑긋거리며 앞발을 돋우었다. “야옹!” 소리에 어디서 나왔는지 모를 쥐들이 몰려나와 기겁을 하며 달아났다. 소스라쳐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젖물이 흥건할 무화과를 한 번도 손대보지 못한 채 그곳을 달음박질쳐 나왔다.  

  할머니 집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적막이었다. 어른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탱자 빛을 내며 마루 기둥에 달려 있던 알전구, 마당 깊이 내리던 달빛, 꼬막 조개처럼 꼭꼭 다문 문(門)의 입들……. 내 방은 그 맨 끝에 있었다. 어른들이 깰까 봐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들어가 어둑한 방에 누워 이불깃을 당기면 멀리서 ‘울음들’이 들려왔다. 말 울음소리와 철새들과 아직도 놀란 가슴을 추스르지 못한 쥐들의 울음이. 그런 밤이면 자다 깨어 일어나 훌쩍이곤 했다. 꿈속에서 동생들은 잘 익어 쩍쩍 갈라진 무화과의 과육을 두 손으로 흠뻑 적시며 먹고 있었다. 그 모든 울음을 담아내고도 내 유년의 방은 너무 넓어 늘 허우룩했다.


  열 살 무렵이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가족이 있는 섬으로 갔다. 밤이 깊어서야 일을 끝낸 어머니는 남폿불 아래에 나를 앉히고 참빗질을 했다. 머리에서 살찐 벌레들이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치는 녀석들처럼 당황해져서 나는 눈길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어머니의 엄지손톱 끝에서 붉은 물이 터져 나왔다. “툭툭” 소리뿐, 어머니도 나도 말이 없었다. 그 소리는 마루 틈새에 새겨진 혈흔과 함께 기억 속으로 흘러 들어가 시나브로 몸을 불렸다. 

  늘 배가 고팠다. 태생적인 허기에, 작은 벌레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했다는 연민까지 겹친 탓이었다. 향란이 집 마당의 무화과처럼 어머니의 젖꼭지는 언제나 내 손이 닿지 못하는 거리에 있었다. 

  스스로 젖이 되어야 했다. 착한 아이가 되고 싶었다. 칭찬만 들었다. 어린 날에는 키까지 쑥쑥 자라서 더 그랬다. 어른들은 나를 보면 외 붓듯 가지 붓듯 큰다고 했다. 엄마 젖이 없어도 저 혼자 잘 자란다는 듯. 그러나 내 젖은 키만 키웠을 뿐, 나는 웃자랐다. 밤이면 큰 방이 무서웠고, 할머니와 함께 자는 ‘야옹이’가 부러웠다. 그래도 ‘야옹이’처럼 소리 내어 울어보지 못했다. 

  자라서 보니 가족들이 기억하는 많은 것이 내게는 없었다. 가족의 아픔과 기쁨이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했고, 나의 그것들은 가족의 그것이 되지 못했다. 같은 어미의 배에서 태어난 형제들과 젖을 나누지 못한다는 것은 평생을 외롭게 살아가리라는 예언이었다. 

  내 몸에는 왜 그토록 이(蟲)가 많았을까. 동생들은 나에게 왜 존댓말을 썼을까. 동생들이 ‘엄마’라고 부르는 엄마를 난 왜 ‘어무이예에’라고 했을까. 내가 가족을 기억하는 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공유하지 못한 감정은 외로움과 서러움으로 변이되어 울음의 시원이 되었던 걸까. 어른이 되어서도 ‘내 속의 아이’는 무시로 울음을 터뜨렸다. 


  오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고향 시장에 갔을 때다. 장터는 무화과밭 같았다. 어린 날에는 동네에서 한 그루뿐이던 무화과나무가 남도의 특용작물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어느 꼬부랑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더니 나를 소개했다. 향란이 어머니였다. 향란 할매는 나를 알아보고는 무척이나 반가워하며 팔고 있던 무화과 하나를 덥석 쥐여주었다. 

  내 손에 무화과를 넣게 되다니……. 탱탱하게 영근 무화과에서 저고리 섶 아래에 숨겨져 있던 내 젊은 어머니의 젖멍울이 만져졌다. 

  “아가, 에릴 때 우리 집에 있던 무화과나무 알제? 참 잘 익었대이.” 

  손끝이 떨렸다. “을릉 무 봐라.” 향란 할매의 성화에 무화과를 쪼개버리고 말았다. 속 가득 발간 꽃이 피어 있었다. 어디선가 철새의 울음이 들려왔다. 고양이 울음소리도 났다. 내 머리를 참빗질하던 어머니의 흔들리는 눈빛이 어른거리고, 어린것을 품에서 내쳐야만 했던 어미의 슬픔이 차올랐다. 

  향란 할매가 무화과를 소쿠리째 안겨주었다. 

  “아가, 집에 가서 어무이랑 무라. 얼라 때 우리 집에서 놀다가 할매 집에 자러 갈 때 가기 싫었제?”

  눈물이 났다. 어머니가 내 손을 잡았다. 울음소리가 나고 말았다. 어쩌면 그때, 내 속의 뜨락에 어린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심어졌는지 모를 일이다.

  울음은 가장 깊은 곳에 다다르는 것을 본질로 한다. 감정이 고조될수록 울음소리가 커지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그리움의 다른 표현이기도 해서 사람들은 울음소리에 마음을 내어준다. 내 울음도 누군가의 마음 골짜기에 그렇게 굼깊게 닿고 싶었던 게다. 울음은 내 실존을 알리는 최초의 도구였고, 그 가장 깊은 곳이란 내 존재의 근원인 어머니였으니까.

  모든 울음은 익으면 젖이 되는 걸까. 무화과 속이 붉은 것은 땅 위와 땅속 울음의 결정(結晶)이 만들어 낸 색깔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머니의 슬픔을 이해하게 되다니……. 꾹 삼켜야만 했던 나의 속울음과 어머니의 흔들리던 눈빛도 무화과 속 외로운 방에서 붉은 꽃잎으로 피었던 게다. 외로움조차 달콤한 속이 되었음이다. 깜깜한 밤의 시간 속에서도 나의 무화과는 달보드레하게 익어갔던 게다.    

  오늘 밤에도 나는 나의 무화과나무 아래로 간다. 까만 컴퓨터 화면에 설익은 시간을 펼쳐놓고 다독이다 보면 손가락 끝에서 무화과꽃이 피어난다. 푸른 달빛 속으로 철새들이 날아가고, 아득한 곳에서 향란이네 어린 말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훌쩍 자란 무화과 이파리가 다섯 손가락을 쩍 벌려 내 손을 당긴다. 모니터에 점점이 찍히는 붉은 꽃 점들……. 무화과의 발그레한 젖꼭지에서 젖물이 비친다. 


  무화과가 익어가는 밤이다.


                                                                    (『수필세계』 2017.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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