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세계의 침범으로 찬란히 범람하기를.
“내가 한 말들, 내가 꾼 꿈들, 나의 환상과 생각에서 늘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언제나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진지하게 논평하면서 그는 나에게 예시를 제시했다.” 데미안 147p
꿈을 꾼다. 밤이거나 새벽이었고. 걸을 때, 버스를 기다릴 때, 생각하기 좋은 어느 때였다. 그 소망은 간절한 소유욕을 바탕으로 하였다. 어느 대상에 대한 목마른 갈망이었다. 나는 꿈속의 대상에게 질문을 한다. 처마 끝에 고인 빗물처럼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서두르지 않는 질문을 뱉었다. 시간의 흐름에 무심으로 일관하며 질문에 새로운 물음표를 달아주는 대상. 그 어떤 소망의 성숙한 괴짜 피스토리우스.
나는 자주 현실의 사실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에서 의문을 가지고는 했다.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은 언제나 가녀린 한계의 선을 넘지 못했다. 새로울 게 없는 진부한 새장 속의 하루처럼 지루한 나날이었다. 그럴 때 나는 꿈을 꿨다. 나의 이상적인 대상에 대해. 그와 나눌 직접적인 열기를 온 피부로 느끼기를 꿈꿨다. 내가 뱉은 질문에 물음표를 달아주는 그로 인해 맞이할 밤이 생각만으로도 심장을 뛰게 했다. 물음표에 매달려 떠오르는 나를 상상하면서. 질문에 질문이 더해지고 결국은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생각의 마침표 혹은 느낌표를 거머쥐게 될 순간을 기대했다. 대상은 스스로 해답으로 이르게 하는 길잡이. 이상적인 나의 벗이었다.
대화의 여행을 간절히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생각의 고립이 허용되지 않는 자유롭고 활기찬 소통에 대해. 그리고 그것으로 무궁무진 해질 견해에 대해. 간절하고 간절히 꿈꿔왔는지도 모르겠다. 현실을 살아가는 내게 꿈은 허구였다. 내가 키워 놓은 허구의 세계. 그 세계를 외로움이라 불렀다. 어떤 결핍에 의한 욕구가 외로움으로 뭉뚱그려 표현된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형체가 불분명한 외로움은 채워지기를 기대하고 나는 여행으로 대신했다. 허구의 세계의 실재를 위하여. 꿈의 실현을 위하여. 세상에는 내가 가보지 못한, 도달해 본 적 없는 곳이 여전히 많았다. 나는 계속해서 우물 안이었고 짧은 외출은 우물의 공허한 풍족을 채울 뿐이었다. 빼곡하게 채워진 풍족의 우물에서 나는 설자리를 잃어간다.
대화도 그러한 상태라고 생각했다. 가보지 못한, 도달해 본 적 없는 세계가 여전히 많다고. 인공 물레방아처럼 흘렀던 물이 다시 고이고, 고인 물이 다시 흐르는 출구 없는 생각에 나는 어딘가 습해져서 상하고 썩어갔다. 이런 미지근한 반복이 답답했다. 비나 태풍 혹은 그런 천재지변이 일어나 일그러지고 변형된 것의 결합이 이루어지길. 전혀 다른 세계의 침범으로 찬란히 범람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흥분하여 쉴 틈 없이 흐를 것이다. 새로운 세계를 탐하며, 그것을 즐길 것이다. 비를 만나고 웅덩이를 넘어, 흙과 어울리고 나무의 뿌리에 나를 조금 나눌 것이다. 땅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어 어느 강물을 타고 고일새 없이 흘러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에 섞여 들것이다. 광활한 생각은 무한해질 것이고 그것으로의 도달은 오직 내가 아닌 다른 세계의 대상만이 이끌 수 있는 길이었다. 질문과 질문이 이어지는 치열한 대화 안에서 꿈의 실재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불을 들여다보게, 구름을 바라보게. 예감들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곧바로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묻질랑 말도록. 데미안 147p
이상적인 대상과의 조우는 여행의 시작이다. 나는 당연하게, 아무 때에 여행을 꿈꾼다. 그와의 대화의 시작을, 첫마디를 기대한다. 여행의 첫날처럼 시선에 닿는 모든 것이 서늘하고 환하게 빛나는, 낡은 익숙함이란 없는, 선하지 않은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이마신다. 단 한 번뿐인 처음에 도취돼 겉으로는 상기된 표정과 이외에는 고요한 모습으로. 속에서는 얌전할새 없는 요란한 설렘이 터지는, 그런 전혀 새로운 쾌락을. 언젠가 내가 뱉은 생각에 집요한 애정으로 침범해 올 그를. 그 어떤 소망의 피스토리우스, 또는 막스 데미안을 기다리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