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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송 Dec 13. 2022

미루는 습관을 버리기

취미란, 글이란 뭘까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내가 참 좋아하는 롤러코스터의 습관에 나오는 가삿말이다. 얼마나 수도 없이 불렀던지. 사랑했던 이를 떠나보내는 과정 속 습관이 되어버린 것들을 되새기는 이 예쁜 가사를, 나는 요즘 내 일상에 빗대 종종 자조적으로 써먹는다. 


나는 소위 말하는 취미 부자가 아닐까. 필자의 친인척은 가끔 나를 '하고재비'라고도 부른다 - 하고 싶은 게 어릴 적부터 참 많아서 그런가? 문제는 그 많고 많은 취미들을 나열했을 때, 내가 끝까지 밀어붙인 취미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은 고민이다. 취미의 시작은 늘 쉽다 - 처음 불타오르는 호기심, 새로운 사람들이나 공동체를 만날 때의 설렘, 전혀 몰랐던 것들을 배워 나갈 때의 성취감. 문제는 그 사이로 나의 일상이 물밀듯 파고든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급한 일부터 처리하고 다시 돌아와야지 생각하고, 이 정도면 따라잡겠지라고 미루고, 오늘은 조금은 피곤하니까 나중에, 라는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결국 나의 취미는 미뤘던 '해야만 하는'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해서 시작했던 일은 피곤한 일이 되어버리고, 하면서 회복을 하고 힘을 줘야 하는 취미는 내가 생각하는 '취미'의 의미를 잃어버린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대학원생으로, 여전히 매일같이 글을 쓴다 (아니, 써... 야... 만 한다). 하지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바로 '일'이나 관련 업무가 아닌, 일상을 기록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행복했던 가족과의 기억, 절대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 그 나이에서만 할 수 있는 고민들, 등등을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시작했던 취미였건만! 더 잘 쓰고 싶은 마음,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싶은 욕심에 '작가의 서랍'과 워드 문서에 저장된 수두룩한 초고들은 여전히 출판되지 않은 채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브런치의 알림은 마음의 부담처럼 다가왔고, 벅찬 마음으로 계획했던 글이나 매거진들은 결국 일 년이 지난 시간 동안 방치되어 버렸다.


어쩌면 미루는 게 습관이 된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대학원이 내게 가르쳐 준 아주, 아주 나쁜 습관이다. 물론 이는 나 혼자서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체계의 문제이지만, 그걸 내 일상에까지 끌어올 이유는 없을 텐데.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내 취미마저 미루고 있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는 정말 아이러니한 점은 찰나의 여유가 생겼을 때, 내 취미는 무엇일까 다시 또 고민하면서 인터넷을 뒤적이는 것이다. 분명 과거의 내가 고민하고 당도한 버젓한 글쓰기라는 게 있건만, 그걸 외면하고 새로운 답안을 찾으려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참 안타까운 악순환이고, 결국 그 과정을 통해 손해 보는 건 그 간단한 취미로 인한 회복조차 얻지 못하는 나 자신이다.


최근 오은영 박사님의 말 중 정말 와닿는 말이 바로 미루는 사람은 게으른 사람이 아니라 잘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잘함 혹은 완벽의 기준이 높아서 시작을 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맴도는 불안과 긴장감의 수위를 낮추기 위해 일을 미루면서 워밍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나의 행동에 대한 설명과 해답을 들은 것 같아 정말 위로가 되는 순간이었다. 맞아, 나도 저렇지. 그래도 놓고 막상 긴장감을 확 올려서 해내는 일들은 완성도와 수행도가 높아서, 친구들과는 "이렇게 미루다가 망해봐야 정신 차리지"라는 오싹한 농담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나는 완벽의 기준을 낮춤으로써 이 습관을 개선시켜보려 한다; 바로 완벽한 글이 아니더라도, 순간순간 드는 생각들을 부족하나마 글로 남겨 이렇게 올려보려고 한다. 


난 말은 형상화되는 순간 힘을 가진다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종종 스낵 컬처로 내뱉어지는 글들에 대한 반감과 회의감이 들 때도 있고, 무엇보다 정제되지 않은 나의 순간적 생각들과 문장들을 인터넷에 올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크다.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글쓰기의 묘미 아닐까. 수년간 케케묵은 고민들과 새롭게 자리 잡은 호기심이 한 문장 안에 공존할 수 있고, 권력으로 점철된 제도 속 수개월의 심사를 받을 필요 없이 즉각적이며, 위치성에 보다 덜 얽매여 소소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 물론 선연한 단점과 허점들이 있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좋다. 나의 취미는 글쓰기이고, 적어도 오늘의 나는 더할 나위 없는 플랫폼에서 미루는 습관을 극복해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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