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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풍 Oct 22. 2023

내 맘에 불지르기

내 열정이 일어날 그 것은? 그 자리는?

할아버지의 카메라를 물티슈로 닦았어.

돌아가신 할아버지 댁을 정리하고 가져와서 상자에 넣어둔 것을 너희들이 꺼내어 조금 이리저리 찍어보다가 바구니에 넣어 둔 카메라.

요즘 ‘나를 기록하는 글쓰기’란 강좌를 듣고 있는데, 글과 사진을 함께 넣어 책을 만드는 프로그램이야. 10강 중 4번이 사진 강의야. 찍는 것도 찍히는 것도 그다지 관심이 없어서 사진은 그냥 대충 찍어두는 기록용으로만 사용했던 것 같은데. 


오늘 갑자기 떠올랐어.

스물세네 살쯤 대학 졸업한 후, 발령을 기다리던 때에

어느 사진강좌를 내가 직접 찾아가 들었고, 필름 인화도 배웠었다는 걸.

그래서 결혼 무렵 웨딩 촬영 대신 고가의 필름 카메라를 구입해서 신혼여행 때 찍었었는데...

삶의 피로에 지쳐 이것저것 물건을 두고 싶지 않았던 어느 날에 버렸던 거 같아.

뭐든지 두라고만하고 정리는 1도 안 하는 니 아빠 몰래 버렸나? 어디에 둔 것도 같은데.... 아마 그랬을 거야. 조금 후회가 되네.

사느라 정신이 늘 없어서 물건이라도 줄여서 에너지를 아끼고 싶기도 했고, 정돈된 걸 좋아하는 내 성향이기도 했고.     


오늘 내가 사진에 관심을 두었던 한 때를 기억해 냈어.

그리고 이번 강좌를 들으며 스마트폰 촬영의 작은 팁들도 배우고 실습 과제도 하면서 사진 찍는 게 재미있어지고, 예전 너의 사진에 대한 흥미를 떠올렸네. 이런저런 앵글도 사용해 보고, 시간에 따라 아침에 저녁에 낮에 찍어보고 수직수평도 맞춰보고. 네 말대로 난 수직수평을 잘 안 맞게 찍을 때가 많더라고.     

기록에 늘 관심이 많던 나는 할아버지의 카메라에 있는 할아버지의 기록과 내가 자라고 살아온 이 금곡리의 기록과 너희들의 기록을 조금 더 사진으로 남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도달했지. 작년에 할아버지와, 우리 부부와 너희들 사진 책자를 만들고 나서 한참을 다시 보고 이야기도 하고, 이담에 죽을 때까지 그걸 보며 추억해야지 싶어 참 좋았거든. 또 다른 꺼리가 하나 생겨났네. 내년엔 우리 동네 금곡리의 4계절 정확히는 우리 집의 4계절을 담아볼까 싶다. 언젠가 이 금곡리 우리 집도 개발이 되어 떠날게 될 거 같으니 말이야.

이다음에 너희들이 모두 성인이 되어 만나서 사진책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면 참 즐겁지 않겠나 싶고. 나이가 들면 옛날 얘기를 많이 해. 엄마의 할머니도 어머니도 그랬으니까. 나도 그렇게 돼 가는 거 같고. 근데 난 즐거운 이야깃거리를 많이 담아놓고 많이 하고 싶다. 힘들고 고생한 이야기가 더 많이 생각나니까, 즐거운 이야깃거리는 사진으로 많이 담아놓으면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될 거 아니야.     

살살 시간 나는 대로 할아버지의 카메라에 시동을 걸어봐야겠다.

그 카메라로 가장 많이 사진 찍힌 사람이 너인데.

할아버지의 최대 모델이었으니까.

네가 서너 살 때부터 유치원 정도까지 할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포즈도 잘 취하고 할아버지도 너를 따라다니며 찍고 그랬으니까.

어느 날 금방 너희들이 낳은 아기가 나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군.     

우선은 이 집과 4계절, 그리고 내가 키우고 가꾸는 나무들, 내가 고치는 집들을 모델로 삼으련다.

마음이 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잊고 살았던 나의 흥미와 관심사. 

내가 좋아했던 것들.

이제는 하나씩 되돌아보고 있다.

그게 글을 쓰고 시간을 갖고 사색을 하는 힘인 거 같다.

나도 잊고 있던 나.

나는 사진에도 흥미가 있던 20대였더구나.

사느라, 이것저것 처리하느라 늘 뒤로 미루었던 나의 관심사, 흥미, 설렘.

이제 찾으니 참 하루가 즐겁다.     

너의 마음이 지금 가는 곳도 다 이유가 있을 거야.

언젠가 다시 니가 돌아가게 될 너 자신일 테니까.

너는 더 가득한 만족한 맘 껏 해보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부터 그리 살 테지만.

그게 뭐든 맘껏 해보렴.

내가 엄마이기에 이런저런 걱정을 앞세우겠지만, 그래도 넌 니 맘껏 하고 살아.

그게 내 진정한 속마음이란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란 말 있잖아. 실컷 해보는 게 나은 거 같아.

그래야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더 알 수 있는 경험이 생기더라.     

내가 해 온 경험은 가족을 책임져온 경험이라

이것도 나이지만, 

이제는 나로서 홀로 할 수 있는 경험을 조금 더 하며 살려해.

가족과의 경험도 인생에서 놓칠 수 없는 부분이라 후회가 깊은 건 아니야.

그저 물 흐르듯 내 인생의 물결이 그랬으니까.

물길을 거스를 순 없지만 물길 안에서 나의 몸의 움직임은 내가 할 수 있는 거니까 말이다.

재미있게 살 방법을 죽을 때까지 연구해서 살아보련다.     

오늘은 참 뿌듯하네.

20대 나의 흥미를 하나 또 건져 올렸으니까. 앞으로 또 어떻게 되살려 갈지 궁금하니까.     

배찜질기가 너무 종류가 다양하네.

배가 불편할 때나 생기할 때 뜨끈한데 최고인데.

좀 알아보고 주문해 주어야겠다.

날이 차니까 꼭 따뜻하게 하는 거 잊지 말고 따뜻한 물 많이 마시고

이제 곧 11월이 오겠구나.

어서 너의 힘든 숙제를 마치고 편안히 쉴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그때 같이 여행 가서 사진 많이 찍자.     

오늘 하루도 

니 맘에 스스로 불을 질러야 해.

뜨거운 맘으로 무언가에 몰입하는 건 참 아름다운 순간이거든.

뜨거운 맘으로 살아가기 위한 불쏘시개를 지금 참아가며 살살 피우고 있는 거야.

불쏘시개가 잘 타야 불이 잘 붙겠지.

누군가의 맘에 불을 질러가며 살려면 자기 맘에 먼저 불을 질러야 하는 거 같다.

어제 어떤 분이 쓰신 글에서 본거야.

누군가의 맘에 불을 지르며 살고 싶다는.     

불쏘시개에 불을 붙일 때 인내가 많이 필요해.

인내하고 견디면 곧 불이 붙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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