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전골을 포장해와서 먹었습니다.
2023년 10월 3일, 긴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 나는 이런 결심을 했다.
'10월 한달 동안은 요리를 하지 않겠어!'
결혼 11년차인 나에게 요리는 의무감이었고, 아주 가끔은 뿌듯함 혹은 행복이었다. 아주 맛있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먹을만 한 요리실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중에는 아이들이 먹고싶어하는 엄마가 만든 메뉴도 몇 가지 존재했다. 아이들을 위해 원재료를 구매하여 손질하고 음식을 만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남편과 살면서, 나 역시 부지런히 아이들의 영양을 채울 수 있는 음식을 만들었다.
사람은 직접 경험해보아야만 깨닫게 되는 게 있다. 결심의 발단은 이러했다. 긴 추석 연휴동안 우리 가족은 온전히 집안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평소에는 주말이 되어야 집에 내려오는 남편과 함께 온 가족이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몇 발자국 걸으면 닿는 거리의 시댁에 가서 간소한 제사를 지내고 묘소와 납골당에서 고인을 찾아뵙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시어른댁에 인사를 드리러 가는 일정으로 추석 당일 하루가 채워졌다. 이외의 연휴일은 집에서 남편, 아이들과 함께 먹고, 놀고, 책읽고, 운동하는 시간으로 빼곡하고 편안하게 채워졌다.
이번 추석 연휴에 특히 나를 편안하게 해준것은, 남편이 거의 도맡다시피한 식사준비였다. 연휴에 하루 세끼를 꼬박 챙기는 일은 쉽지 않다. 식사를 마치고 정리를 하면, 곧 다음 식사 시간이 다가온다. 그렇게 세 번의 식사 시간이 지나가면 어느새 잠잘 시간이 되버린다. 오죽하면 엄마들끼리의 수다에서, 개학으로 가장 좋은 점이 학교에서 점심을 챙겨주는 것이라고 하겠는가.
남편이 거의 도맡은 식사 준비와 뒷정리는 나에게는 놀라운 경험이었다. 배우자가 해주는 밥을 먹고, 배우자가 빨고 개어준 옷을 입고, 배우자가 청소한 집에서 사는 사람의 삶이란 이토록 여유롭구나! 집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이토록 편안할 줄이야. 사실상 '엄마'와 '아내'에게 집은 직장과는 또다른 일터인 경우가 많다. 집순이로서 집 안에 머무는 걸 가장 좋아하는 나였지만, 온 가족이 모인 가운데 이토록 몸이 편안했던 적은 없었던 듯하다.
남편 덕분에 추석 연휴동안 나는 내가 원하는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다. 사이버대학에 편입하여 이번 학기에 6개 과목을 수강중인데 강의를 한번씩 수강하는 데만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더구나 야심차게 도전한 통계학 강의는 주차가 거듭될 수록 헤어나오기 힘든 늪에 빠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초심자를 위해 만화로 설명된 책을 읽었는데 그 역시 온전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온전히 공부할 시간이 주어진 추석 연휴 기간은 더할 나위없이 달콤한 선물이었다. 남편 덕분에 얻은 선물같은 시간, 그렇게 내 자신을 위해 거의 하루종일의 시간을 활용할 수 있음에 당혹스러우면서도 감사했다.
사이버대학교에서 전공 공부를 하는 일 이외에도 계획한 몇 가지가 더 있다. 깊이 있게 하나씩 차근차근 내 것으로 만들고 싶지만, 언제나 시간은 부족하다. 나에게 투자할 시간을 만들어야한다! 추석 연휴동안 남편의 도움으로 '시간'이 만들어지는 걸 직접 경험하면서, 불현듯 '시간'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집반찬 정기배송 서비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국과 메인요리, 몇 가지 반찬들을 매주 배송하는 시스템을 갖춘 업체가 검색되었다. 사진으로만 보아도, 내가 직접 만든 음식보다 맛있을게 틀림없었다! 밥과 함께 먹으면 탄수화물, 단백질 등 집밥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도 섭취할 수 있는 다양한 식단이 보였다. 그때 한 업체의 홍보문구가 눈에 띄었다.
'시간을 선물하세요.'
이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시간'을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과의 아침 식사는 요거트나 우유, 씨리얼이나 빵, 토마토와 샐러드, 계란이나 연어 등으로 먹는 편이다. 그래서 아침 식사는 요리랄게 따로 없다. 점심은 아이들의 학교에서 제공한다. 추석 연휴의 마지막 날이자, 10월 한달동안은 요리를 하지 않을 결심을 한 어제 주문한 반찬들은 내일쯤 배송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저녁에는 뭘 먹어야하지?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책상에 앉은 나는 오늘 하루 일과를 쭈욱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저녁은? 오늘은 아이들의 하교 후에 도서관에 가기로했다. 도서관이 문을 닫는 6시까지 머물테니, 근처 식당에서 사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평소같으면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저녁식사를 미리 만들어두었을 것이다. 도서관에 다녀와서 데워먹을 수 있도록 말이다. 참고로 나의 퇴근 시간은 아이들의 하교 시간과 비슷하다.
결심한 첫 날부터 요리를 할 수는 없지, 그래 오늘 저녁은 외식이다!
주말에는 남편, 아이들과 함께 외식을 하곤한다. 하지만 주중에는 번거롭기도 해서 외식은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오늘은 도서관 근처 적당한 캐주얼 레스토랑을 물색해두었다.
"할미가 염소전골 시켜먹으려는데 애기둘리도 먹을지 물어봐요.'
퇴근 중에 어머님께서 카톡을 보내오셨다. 여차저차하여 어머님이 드실 분량과 아이들과 내가 먹을 분량을 따로 포장하여 주문했다. 음식점의 위치가 도서관에서 집에 오는 길에 있었기에 들러서 음식을 가지고 왔다.
골목에 위치한 건물 이층에 상호가 보였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노란색 봉투 두개와 하얀색 봉투 두개가 포장되어 있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계산은 이미했다며 하얀색 봉투 두 개를 건네주셨다. 꽤 많구나하며 뒤돌아서려는데 노란색 봉투 두 개도 마저 건네주셨다. 흰 봉투로 포장된 것은 육수였고, 노란색 봉투로 포장된 것은 고기와 야채 등 내용물이었다. 큼직한 봉투 꾸러미 네 개를 두 손으로 모두 들고 나올 수가 없어서 당황하던 찰나, 주인 아주머니의 딸로 보이는 분이 차까지 옮겨주겠다며 함께 나섰다.
어머님댁으로 노랑과 하양 꾸러미를 하나씩 배달했다. 어머님댁에 함께 갔던 둘째 녀석은 할머니께서 배달비라고 주신 천원짜리 몇 장을 받아들고 신나했다. 다시 차로 돌아와 나머지 봉투 두 개를 양손에 들었다. 총총거리며 아이와 함께 집으로 올라가니 먼저 올라간 첫째 아이가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책을 읽고 있었다. 나는 커다란 냄비에 육수와 내용물을 넣고 한번 끓였다. 들깨와 깻잎, 부추와 팽이버섯이 듬뿍 들어간 국물에 다양한 부위의 염소 고기가 데워지고 있었다. 두 아이 모두 고기와 야채를 가득히 채운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둘째 아이는 만족스러운 식사로 기분이 좋은지 평소 꾸물대던 식후 정리까지 척척 해냈다.
저녁 식사 후 두 아이는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는데 집중했다. 오늘은 문고판 줄글책을 잔뜩 빌려왔는데 두 아이 모두 재밌다고 읽으니 엄마의 기분도 덩달아 기뻤다. 사실 그 기쁨의 팔할, 아니 구할 정도는 어머님이 주문해주신 염소전골 덕분이다. 영양과 맛이 있는 음식을 즐겁게 먹었고, 게다가 나에게 '시간'을 선물해주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새벽4시쯤이 되면 눈이 떠진다. 하지만 자리에 누워 뒹굴뒹굴대는 일이 많다. 오늘처럼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최근들어 좀처럼 없었다. 어제 반찬을 주문하고 나서, 나의 시간이 새로운 가치를 가지게 되었다. 요리를 하는 시간을 돈을 지불하여 새로운 유형의 시간, 즉 나 자신이 활용할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어냈다. 그래서 오늘 아침 새벽에 눈을 뜨고 나서 도저히 그대로 누워있을 수 없었다. 돈을 주고 산 '시간'을 헛되게 사용할 수 없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나의 퇴근 시간은 아이들의 하교시간과 비슷하다. 하루에 4시간을 근무하기 때문이다. 만약 하루 8시간동안 근무했다면 현재 받는 월급의 약 2배정도를 벌게 될 것이다. 오후 시간을 사용하기 위해서, 현재 받고 있는 월급만큼의 돈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평소에도 시간을 허비하지 않도록 애쓰는 편이다.
받지 못하는 돈을 기회비용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지불한 돈을 기회비용으로 생각하면 더욱 강력한 추진력이 생기는 것 같다. 받은 적 없는 월급이라는 상상 속 돈보다는 나의 통장계좌에서 빠져나간 현실 속 돈이 더욱 강력하다. 요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어제 지불한 반찬 값, 그리고 앞으로 지출하게 될 음식 구매 비용은 나의 시간이 돈으로 환산되고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준다.
결국 10월에는 요리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10월에는 그 어느때보다도 훨씬 더 유용하게 나의 시간을 활용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만든 것처럼 영양있고 맛있는 음식을 제공하면 되는 것이지, 반드시 엄마가 직접 만들어야하는 것은 아니다. 예순이 넘은 연세에도 여전히 자식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는 양가 어머니들에게는 항상 감사하다. 하지만 나 역시 그러한 삶을 살아야한다는 강박에서 이제는 벗어나려고 한다. 그 누구도 직접적으로 나에게 그렇게 살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전통과 가치관에 매여 나 스스로 선택했던 '엄마의 집밥'이라는 관념의 굴레를 벗는 시도를 해보려고 한다.
엄마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써 요리를 하지 않는 한 달을 살아보려한다. 아이들의 영양 섭취를 챙기면서도 엄마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