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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단 Oct 09. 2023

주말에 친정집에 갔습니다.

1. 요리는 하지 않고 설거지만 합니다. 


"다들 추석 연휴에 놀러다녀와서 이번주말은 집에서 쉬나봐. 길이 안 막혔어."


일찍 왔다는 친정 엄마의 말에 나는 이렇게 말했다. 금요일 오후 두 아이와 저녁식사를 마치고 여섯 시쯤 출발하여 친정집에 도착한 게 여덜 시쯤이었으니, 평소보다 삼십 분 정도는 이른 도착이었다. 친정 식구들도 이미 저녁 식사를 마친 시간이었다. 그런데 주방에 놓인 스텐볼 안에는 닭고기 조각이 여러개 들어있었다. 하얀 물에 자작하게 잠겨있는 날 것의 닭다리와 날개 조각이 보였다. 


"어? 엄마, 왠 닭이야?"

"내일 아침에 닭도리탕 해주려고."


엄마의 대답인즉, 내일 아침 메뉴로 닭도리탕을 만들것이며 미리 손질을 위해 재료를 물에 넣어둔 것이었다. 딸아이가 와서 보더니 맛있겠다며 환호성이다. 친정에 오면 항상 배불리 먹게 된다. 손주들을 위해 이것저것 만들어 주시니 조금씩만 먹어도 배가 빵빵하게 차오르기 때문이다. 아마 내일 아침 메뉴도 닭도리탕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일도 설거지 담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실 나는 친정집에서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엄마와 여동생이 요리를 담당하는 이유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불편해서'였다. 재료를 찾는 일이 불편했고, 물건이 가득 쌓인 좁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일이 불편했다. 나의 집 주방이 아니어서 불편했고, '평범'하지 않은 엄마의 살림살이가 불편했다. 


'하......'


오늘도 어김없이 친정 집안 곳곳을 보며 나도 모르게 한숨이 쉬어진다. 친정 부모님 두 분은 세상의 기준으로 셈했을 때도 무척 성실한 분들이다. 내가 중학생 때, 그러니까 대략 25년 전쯤, 매일 일하고 아껴서 모은 돈으로 이 집을 지으셨다. 나의 기억에 그때의 집 안 공간은 지금처럼 좁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 년, 이 년 ...  십 년, 이십 년 ... 세월이 지나면서 집 안에 물건이 쌓여갔다. 지나치게 많이.


"엄마, 저 것 좀 버려. 일 년에 한 번 쓸까말까하는 건 좀 버려."


예전의 나는 친정집에만 오면 엄마에게 잔소리를 퍼부었다. 엄마는 일 년에 한번이라도 사용하니 보관해야 한다고 대꾸했다. 사실 나는 한 달에 한 번 사용하는 것도 버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일 년이라고 말한 이유는, 나의 눈에는 몇 년에 한번 사용할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몇 달 전 엄마에게 초등학생 때 사용했던 걸스카우트 배찌들과 중학생 때 사용했던 명찰을 건네받았다. 엄마가 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해 온 물건은 살림살이뿐만이 아니었다. 삼남매의 어릴 적 추억이 깃든 물건들을 고이 보관한 건 엄마의 성격을 아는 나에게 당연하게 느껴졌다. 


엄마는 투박해 보이는 사람이다. 말의 표현이 세련되지 않아서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서는 자기 주장이 강한 게 맞다. 양가의 지원없이 부모님 두 분이 돈을 벌어서 삼남매를 키우며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온 세월은 분명히 엄마의 강인함 덕분일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정이 많고 눈물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십대 시절의 그녀는 마음이 여린 사람이었을 것 같아서 마음이 짠해진다. 


어쩌면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건 추억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추억이 깃든 물건을 사진을 찍거나 기록으로 남기는 요즘 정리 방식을 엄마는 알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물건의 쓸모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에 점점 물건이 쌓여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요즘 시대에는 사용가치가 충분한 물건을 버리는 일이 이상하지 않다. 사용성이 훼손되지 않아도 나에게 효용이 없으니 버리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엄마는 물건을 모아두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자주 나눠주기도 한다. 이렇게 나눠주지도 못하는 물건들은 계속 집 안에 쌓여갔다. 


물건을 버리지 않는 것은 물건의 생명을 보존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엄마의 행동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그 대상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의 표현이 아닐까하는데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그녀가 의식했든 아니든,  엄마의 행동에는 잔정이 많은 그녀의 성격이 반영되었을 터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친정집에만 오면 늘어놓던 "저것 좀 버려"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온 집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물건들이 나의 눈에는 여전히 답답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엄마의 성격과 삶이 반영된 방식이라고 이해하게 되었다. 이 점은 나에게 중대한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의 살림 방식에 대해 감놔라 배놔라하는게 싫듯이, 엄마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사실 엄마의 살림에 대해 가타부타할 권리는 처음부터 나에게 없었다.  


지금은 예순을 훌쩍 넘긴 엄마 자신이 편안한 방식으로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나의 '불편함'은 여전하다. 그래서 나는 친정집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 식재료를 찾으려면 일일이 물어보아야 하고, 조리를 하려면 나의 기준에서 치워야할 물건들이 많기 때문이다. 엄마가 만들어주신 음식을 감사히 맛있게 먹고나서 설거지를 하는 게 지금으로서는 최선의 절충안이다. 





2. 직접 만들지 않은 요리에도 사랑은 담겨 있습니다. 


'엄마가 손수 만든 집밥'은 일종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문장이다. 어떤 환상?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는 환상. 이십 대 대학생 시절에 여성학 수업을 수강한 적이 있다. 가사노동의 성격에 대해 설명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내용이 있다. 


"가사노동은 가족 구성원의 개별적인 특성을 고려하여 맞춤형으로 제공됩니다."


맞는 말이었다. 엄마는 요리를 할 때 가족들 중 누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고려하여 식단을 구성했다. 가족 구성원 개인의 입맛을 고려하여 양념의 종류를 선택하고 간을 맞추었다. 


친정집을 방문한 첫 날은 언제나 속으로 한숨이 나온다. 이미 말했듯이 집 안에 쌓인 물건들때문이다. 어제도 머릿속 생각이 말로 튀어나오지 않도록 단도리를 하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닭도리탕이 포함된 식단과 상차림을 보며 '개인의 입맛을 고려한' 엄마의 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부위인 닭다리와 날개만을 사용해서 만든 닭도리탕은 역시 아이들이 좋아하는 달콤한 소스로 양념되어 있었다. 그 옆으로 야채무침과 가지볶음이 보여서 반갑고 감사했다. 친정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두 조카는 야채보다 고기를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야채 반찬이 거의 없는 고기 위주의 반찬을 준비하셨다. 그때마다 엄마에게 우리 애들은 야채도 잘먹는다고 말하며, 냉장고에서 야채 반찬을 꺼내 상 위에 올려놨었다. 엄마가 야채반찬을 준비하는 건 오랜만에 놀러온 손주들을 위한 맞춤인 셈이었다. 


엄마가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방식은 식단을 결정하고 요리를 만들때뿐만 아니라, 조리된 음식을 내어줄 때에도 드러난다. 닭도리탕과 야채무침, 가지볶음과 함께 육회와 콩나물국이 놓여 있었다. 육회를 좋아하는 아이의 접시에는 넉넉한 양이 내어졌고, 그렇지 않은 아이의 접시에는 적은 양이 내어졌다. 국을 잘 먹는 아이의 그릇은 넉넉하게 채워져 있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의 것에는 적은 양이 채워져 있었다. 개인별로 좋아하는 음식의 종류와 정도를 반영한 사랑이 담긴 '엄마집밥'이었다. 


이렇듯 '엄마가 손수 만든 집밥'에는 사랑이 담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가지는 환상은 분명 진실일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이와 관련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 엄마가 손수 만들지 않은 집밥에는 사랑이 담겨 있지 않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드라마 장면을 떠올려 보자. 가족 중 누군가가 아픈 상황이다. 환자를 위한 따뜻한 죽이 필요할 것이다. 엄마가 아픈 아이에게 숟가락으로 죽을 떠먹이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엄마가 손수 만든 죽일거라 추측할 것이다. 만약 엄마가 돈을 주고 죽을 구매하는 장면이 등장한다면, 그건 죽 브랜드의 제품간접광고(PPL)를 받은 경우가 아닐런지. 


엄마가 직접 만든 집밥에 대해 높은 가치로 평가하는 것은, 엄마의 수고로움에 대한 고마움이 담긴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엄마집밥'을 '엄마의 의무'라 여기는 이들이 많다. 자연스레 집에서 손수 요리하지 않는 엄마는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 


SNS에 직접 만든 반찬 사진이 올라오면 흔히 볼 수 있는 댓글의 유형이 있다. 칭찬과 함께 나는 저렇게 해주지 못해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해주고 싶은 마음과 반드시 해야하는 의무감은 구별될 필요가 있다. 더해 주고 싶은 마음은 아쉬움을 남기고 의무감은 죄책감을 남긴다. 엄마집밥에 관해서는 아쉬움과 죄책감이 구별되지 않는 듯하다. 음식을 직접 만들지 않는 엄마에 대해 은연 중에 질책하는 사회 분위기에게 그 책임을 물어본다. 


사실 나는 친정집에 오면 엄마가 모든 일을 도맡아하는 식사 과정이 불만스럽기도 하다. 손주들 한 명까지 세심히 신경써가며 개별 맞춤 요리를 하는 엄마가 답답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각자 입맛에 따라서 소금을 넣어 먹거나 원하는 양만큼 직접 덜어먹으면 될텐데도 엄마는 직접 일일이 준비하기를 고집한다. 하지만 이것 또한 엄마의 성격과 삶이 반영된 방식이리라 이해하려 애쓴다. 


집 안에 쌓여가는 물건에 대해 가타부타할 권리가 나에게는 없다. 마찬가지로 엄마의 식사 준비 방식에도 뭐라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엄마의 살림은 엄마가 원하는 방식대로 하면 그뿐이리라. 우리는 누구나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권리를 존중받아야 한다. 


엄마가 손수 만들지 않은 집밥에는 사랑이 담겨 있지 않다는 생각은 가정마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편견이다. 게다가 '엄마'라는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에 대한 존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엄마'는 가족들을 대신하여 식사를 준비한다. 가족이라는 가까운 사이에서도, 자신의 식사를 대신하여 챙겨주는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이 우선되어야 한다. 직접 요리를 하든 돈을 주고 구매를 하든, 그 준비 방식은 '엄마'의 상황에 따라 결정할 일이다. 가족도, 사회도, 그 누구도 '엄마'에게 손수 요리할 것을 요구할 권리는 없다.


 



3. 원하는데로 변해갈 수 있도록 그냥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랜만에 친정집에 왔으니, 동네를 산책하기로 했다. 혼자서 대문을 열고 나와 홀가분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오래된 단독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골목길을 걷는다. 벽에는 그림이 가득 그려져 있다. 십여 년전, 지역의 예술가들은 이곳 골목의 벽과 바닥 등에 그림을 그렸다. 그즈음 결혼을 하여 동네를 떠난 나는, 친정집을 찾을 때마다 골목길을 한번씩 돌아보았다. 새로 그려진 그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덧칠을 하여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와 아이들이 친정집을 찾는 주말에는, 이곳으로 놀러오는 사람들의 수도 늘었다. 친정동네는 소위 '벽화마을'이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벽화마을이 몇 곳있다. 그곳들뿐아니라 요즘에는 도시재생을 목적으로 벽에 그림이 그려지는 동네가 흔하다. 벽화가 그려지는 동네는 그 지역에서도 '낙후된' 지역이다. 어른들에게는 추억과 낭만을 떠올리게 하고, 아이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이는 그런 느낌의 장소일 것이다. 아주 오래전, 서울의 달동네가 일종의 관광지로 변모했을 때의 뉴스기사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곳 주민이 인터뷰를 했는데, 부모들이 아이들을 데려와 구경을 시키면서 "이렇게 살지 않으려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말하는 걸 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언제부터 삶의 모습이 구경거리가 되었을까? 아니 되어야만 했을까?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가진 사람들의 거주공간을 절대로 구경거리로 만들어버리지 않는다. 그들은 좀더 철저히 보완 체계를 갖추고 낯선이들, 즉 그곳에 들어올 자격이 없는 이들을 경계한다. 반면에 돈이 없는 사람들의 거주공간과 개인의 삶은 나날이 구경거리가 되어간다. 지역관광 활성화라는 그럴듯한 목표를 위해 그곳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통째로 내보여야 하는 것이다. 


TV 예능 프로그램을 떠올려보자. 연예인 가족의 일상을 담은 리얼 다큐 예능 프로그램의 등장인물은 주로 전성기가 지나간 연예인들인 경우가 많다. 재도약의 발판이 되어주길 바라며 출연하는 것이다. 마치 낙후된 동네가 '벽화마을'로서 지역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사생활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 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것을 역행하는 결정에는 다들 저마다의 사정이 존재하는 것이다. 


친정동네는 산 아래 자리잡고 있는 동네이다. 산쪽으로 기울어진 토지에 지어진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벽화마을 이후, 현재는 주거지역 옆으로 새롭게 지어진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마치 양팔저울 같은 모양새인데, 한쪽은 일반적인 형태의 집들이고 다른 한쪽은 디자인 요소가 결합된 트렌디한 건물들로 서로 대비된다. 커피숍 건물이 하나 둘 생기던 때는 양팔저울이 균형을 잡고 있었지만, 현재는 한쪽이 치켜올라간지 오래다. 아니, 균형잡힌 양팔저울의 한쪽이 길게 늘어져 있다. 


나는 커피숍 건물이 줄지어 있는 길가를 걸었다. 어디서든 반대쪽으로 돌아야 친정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갈래길이 보이길 바라며 걸었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왔던 길로 되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다 커피숍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사다리같은 계단이 보였다. 계단을 따라 아래로 이동한 뒤에야 친정집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만날 수 있었다. 커피숍 건물 옆 계단은 사유물일테니 이용하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계단을 통하지 않고는 쉬이 내려갈 수 없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계단에 좌물쇠가 채워있지 않을 걸 보면 공용 계단의 역할을 하고 있었나보다. 


어릴 적 이곳의 모습은 어땠었지, 하고 떠올려보려했지만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려하게 변해버린 모습에 압도될 뿐이다. 서울의 여느 거리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을 모습이었다. 친정집이 있는 방향을 향해 반대쪽으로 걷다보니, 인부 두 명이 페인트 통을 하나씩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이른 아침 커피숍 오픈 시간 전인 상업공간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나의 왼편에 있는 건물 입구로 들어갔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연상시키는 온통 하얗고 부드러운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유명한 커피숍 거리에 꼭 한 곳씩은 있느 바로 그 건물이었다.


사람들은 낙후된 지역이라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변화가 당연하다고. 하지만 어릴 적부터 이곳에 살아온 나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길 바랐다. 새로지어지는 상업 건물마다 설치된 에어컨 실외기는 동네의 기온을 상당히 올려 놓았다. 몰려드는 자동차에서 내뿜는 열기도 마찬가지였다. 지구온난화의 속도보다 훨씬 가파르게 상승하는 동네 기온때문에 몇 십년동안 에어컨없이 지내던 친정집도 항복을 선언했다. 그즈음 동네 집집마다 에어컨이 빠르게 들어섰다. 


기웃기웃대며 동네를 찾는 관광객들의 시선도 불편했다. 매년 시청 홈페이지에는 친정동네가 대표 관광지로 소개되었다. 관광객들은 벽화가 그려진 동네를 구경하다가 커피숍으로 이동했다. 마치 동네 사람들이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만 같은 언잖은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이를 이용해 돈을 벌고 있겠지하는 생각에 짜증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동네가 새롭게 단장되는 것도 인정해야 했다. 벽화가 그려진 이후에, 동네에는 작은 공원이 생겼고, 길거리도 깔끔하게 정비되었다. 동네 어르신들이 사물놀이 등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었고, 지자체와 단체들은 마을과 지원 협약을 맺기도 했다. 그대로 두었다면 어쩌면 폐가가 늘어나 사라지는 동네가 되었을 지도 모른다. 벽화마을로서 이곳은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얻고 있었다. 


모든 일에는 이면이 있다. 동전을 던졌을 때처럼 오롯이 한쪽면만 보이는 결과가 발생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긍정과 부정은 정도의 차이를 두고 동시에 우리를 찾아온다. 벽화마을로서 동네가 변모한 사건도 그러하다. 나에게는 부정적인 면이 도드라지게 느껴지지만, 동네 사람 누군가는 긍정적으로 판단할 것이다. 몇 해전에 엄마에게 동네의 변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한 적이 있다. 엄마는 현실주의자였다. 이미 벽화마을로 변화고 있는 동네에서 어떻게 살아남을지를 생각하고 계셨다. 


"사람들이 많아지면, 집 앞에서 떡볶이 장사라도 하려고 한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엄마의 대답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고 있다. 새로이 장사에 뛰어들만큼 유동인구 많지 않기 때문이란다. 어느날 낮에 여동생과 둘이 길을 걸어가다가 주차장과 도로 옆으로 가득찬 자동차를 보았다. 걷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커피숍 건물들을 바라보며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통창으로 되어 있는 건물의 층마다 앉은 사람들이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갤러리, 동물, 타로점 등 다양한 컨셉의 커피숍 건물마다 그렇게 말이다. 


강제로(나로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벽에 그림이 그려진 친정 마을. 그리고 엄마로서 손수 집밥을 만들어야한다는 관습에 얽매인 나의 모습. 두 가지 모습이 닮아보여서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대로 두었으면 좋겠다. 사람이든 건물이든 동네든. 생물이든 무생물이든 자신이 원하는 데로 변해갈 수 있도록 그냥 두었으면 좋겠다. 친정동네가 다른 동네들처럼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을 겪기를 바란다. 친정 엄마가 지금까지처럼 집 안에 물건을 모으고, 자식과 손주를 위해 개별 맞춤 요리를 준비하는 과정을 이해하려 애쓴다. 요리를 하지 않겠다는 나의 선언이 사회적 관습을 이유로 질책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저마다 원하는 방식대로 그렇게 살아가도록 존중받기를 바란다. 


친정동네가 지자체 및 단체들의 목표때문에 휘둘리지 않기를 바란다. 주변 커피숍과 상점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길 바라지 않는다. 그곳에 살고 있는 부모님과 이웃 어르신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어 동네 살림살이가 운영되기를 바란다. 그 안에서 친정엄마가 자신의 의지대로 집안 살림을 꾸리며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주시기를 바란다. 


요리를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는 나의 의지가, 타인의 시선으로 판단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의 삶의 방식 안에서 내가 선택한 결정이 고유함을 지니고 존중받기를 바란다. 관습적으로 아내, 엄마, 며느리, 딸로서 의무지어지는 역할이 여자의 삶을 옭아매지 않기를 바란다. 개인의 삶에 적합하지 않은 관습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받기 바란다. 타인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나에게 주어진 생명과 시간을 스스로 원하는데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온갖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어느새 친정집 대문 앞이다.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집게 손가락 하나만 빼꼼하게 빼어 올렸다. 꾹, 하고 힘껏 초인종을 누른다. 집에 들어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보면 곧 점심 식사 시간이 될 것이다. 나는 역시 이번에도 요리는 하지 않고 설거지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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