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새벽뜰 Feb 02. 2024

낭만적 가능성

나이를 한 살 더 먹고 숫자 하나가 더 많아진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었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를 넘기면서부터다.  숫자 하나가 더 많아진다고 해서 마음 한편이 뒤숭숭해진다거나 갈대처럼 흔들려 주체하지 못한다던가 하는 현상은 없었다. 내 인생에 새싹 같던 시절은 이제 지났구나 하며 아주 가끔 서글펐던 적은 있지만 지났다고 해서 아쉬워 죽겠다거나 더 잘 살아볼걸 후회하거나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 두 번 다시 그 치열했던 그래서 가시밭길 같았던 그 시간들을 살아내지 않아도 되는구나. 이미 흘러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겠구나 하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꽃피는 계절 파릇파릇한 나이라는 말이 이젠 내게 썩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었지만 그렇게 된 현실이 너무 다행스럽고 감개무량하다. 그 말이 어울리던 시절엔 그렇게 살지 못한 것 같아 힘겨웠고 지나고 나선 그 말에 진저리가 나서 소름이 끼쳤다. 진짜 그런 시기란 게 있기는 했던 것인가 모호할 뿐. 지금이 좋다거나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점점 더 잘 느끼며 살고 있다.


 더 이상은 어리다고 말 못 하는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낸다거나 존경한다는 마음을 밖으로 표출한다는 게 어렵긴 했다. 어리면 어설픈 것도 용납이 되지만 나이 먹고 어설프면 소심하네 용기가 없네 사람을 민망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래도 나이를 먹어서 이렇게 말로도 꺼내는 거라고 하면 못 이기는 척 맞아, 어리면 도망치기 바쁘지 나이 먹어 얻은 나잇값이라는 걸 높이평가하듯 편을 들어주기도 하는 거다.


낭만이라는 것이 무한했던 적이 있다. 퍼도 퍼도 끝이 없이 계속 생겨서 현실에 발 붙이고 못 사는 건 아닐까 고민했을 정도였다. 미리 당겨 쓴 낭만처럼 나는 참 깊고 넓은 감성에 빠져 살았었구나 하는 것을 불쑥 깨달았다. 낭만이 바닥나 없어지려고 할 때는 물이 없어 파닥거리는 물고기가 된 심정이었다. 버둥거리니 더 힘 빠져서 그냥 더 가만히 있었던가.


 가만히 있어서 찾아오는 낭만은 아니지만 둘러보니 낭만이 될만한 것들은 많았다. 오랜 시간 나를 바라봐 주었던 누군가의 눈빛과 따뜻한 말투. 겨울에서 봄이 오는 냄새. 항상 그 자리에 있어주는 사람들. 내가 사랑하는 나의 가족. 낭만은 유한할지 모르나  늘 없지 않고 어디에선가 존재는 한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보려 하지 않아서 없는 척할 뿐이지.


마음을 열어두면 된다.

낭만적 가능성은 늘 가득하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밤 나의 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