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야 하는 것으로 채워진 생활 속에서
언젠가부터 자전거 바퀴에 바람이 빠진 것 같은 느낌이 자주 들었다.
그러나 나는 페달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멈추면 실패자가 되는 것 같았고, 사실 용기도 없었다.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나에게 회사생활은 홀로 서울에 정착하기 위한 발판이었고 생존이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에서 괴로워하며 자기 연민에 빠져 살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인생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버린 '어른아이'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에 온 지 11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1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햇빛 들지 않는 원룸을 거쳐 남향의 원룸까지...
그리고 나는 결혼을 했고, 신혼집과 맞바꾼 대출금의 굴레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지만, 모든 일에 심드렁해지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아도, 맛있는 걸 먹으러 가도, 재밌는 영화를 봐도, 통장에 쌓이는 잔고의 숫자가 올라가도, 회사에서 성과를 내어도 난 기쁘지 않았고, 심드렁했고 시큰둥했다.
어떤 심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이내 죄책감에 시달렸다. 무미건조하고 메마른 삶이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한 번밖에 없는 소중한 시간을 헛되이 흘러 보내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운동도 하고, 자기계발 서적도 읽고, 사람들도 만났다. 나의 하루하루가 촘촘해 지길 바랐다.
동기부여 콘텐츠들을 출퇴근시간에 틈틈이 보며 이렇게 살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생활은 '해야 하는 것'으로 채워져 갔지만, 내 마음은 흑암 속의 안개처럼 공허해져만 갔다.
불현듯 '죽음'이란 키워드가 내 머릿속을 잠식했다.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 먼지 같은 존재인 나인데, 숨 막히는 사무실에 앉아 '숙제'같은 일을 쳐내기 급급하고, 성과와 경쟁의 압박 속에서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난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내 삶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왜 일하고 있지?'
'일의 의미는 무엇이지?'
'나는 왜 기쁘지 않지?'
목적의 난민으로 살아온 세월이 긴 이유였을까? 수 없이 많은 질문이 한꺼번에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마음이 늘 어지러웠고, 밤을 새워 열심히 맞춰둔 퍼즐 조각들을 누군가가 흐트러 놓은 것만 같이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더 이상 페달을 밟을 수 없을 것만 같았고, 무기력했다. 쉬고 싶었다.
남편에게 물었다.
"나 재정비하는 시간을 좀 가져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