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준호 Mar 12. 2023

소재와 의도는 좋았으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리뷰

<스마트폰을 떨어뜨렸을 뿐인데> 스틸컷

 창작물에서 개인의 삶이 파멸되는 아찔한 위협들은 거대한 권력을 지닌 자들의 농락과 추격에서 벌어졌다. 그러나 기억이 기록되고, 그것이 디지털과 만나면서, 기록이 증거처럼 남게 되니 비지정 영역에서 다가오는 개인이 파멸의 주체가 되고 말았다. 정보의 바다에서 홍수가 들이닥쳐 범죄의 온상이 된 것이다. 우리 곁에 우준영이 언제든 나타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누구 하나 스마트폰을 놓지 않았고, 키르케의 전신인 이나미를 촬영했다. 비극을 구경거리로 소비하는 현실이 지울 수 없이 만연해서, 살이 아리게 꼬집어도 그 역치를 넘어서지 못했다. 몰입이 자각을 의도하지 못한 것이다. 모순이 덩어리졌어도, 이나미는 왜 “더글로리”의 문동은이 될 수 없었을까? 


 스마트폰을 떨어뜨려 삶이 붕괴한다는 것은 서사적으로 우발적이나 외적으로 현실적이다. 내 모든 증거가 담겨 있으므로 우준영처럼 누군가 악의를 갖고 정보를 재가공한다면 누구나 이나미가 될 것이다. 그러나 고립 상태로의 이행이 균형 있는 감정의 촉발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나미가 친구를 비롯한 사람들에게 인격적인 상처를 입혔다는 게 고립의 주된 원인인데, 여기서 인물들은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듯이 짜 맞춘 것처럼 이나미 곁을 떠난다. 회사 동료들은 원래부터 이나미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었던 것처럼 우악스러울 정도로 날카롭게 행동하고, 친구 역시 충격 탓에 사리 분별이 제대로 되지 않은 이나미가 내뱉은 진심이 아닌 불신에도 관계를 단번에 끊어낸다. 기록에 의존하여 쌓아 올린 관계가 버리고, 버려지기 쉽다고 받아들여도 직장 내 관계, 오랜 친구 사이는 필히 이해타산적인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헤어짐이 한 장면으로 요약될 수 없을 테다. 적어도 회사 동료들은 덜 공격적이었어야 했고, 완곡한 처벌과 추방을 전했어야 했다. 정은주는 이나미의 감정과 태도를 짚어주는 친구로 지낸 지난 세월에 예의를 갖춰야 했었다. 해킹이 발생했다는 충격의 전도가 온전히 이루어지기도 전에 급속한 고립으로 이행되니 감정의 균형이 붕괴해 필요 이상으로 고양되고 말았다. 나아가 연이어 등장한 홀로 선 이나미가 우준영을 추격하는 두 형사와 얽히는 장면들이 고립의 연출보다 엉성하고 잔잔해서, 고양된 감정이 갈 길을 잃고 말았다. 나름 완급조절이라고 볼 수 있겠지만, 그 간극이 예상보다 넓어 오히려 당황스럽다. 스마트폰의 각종 순기능을 명랑한 연출로 보여준 초반부는 영화 소재와 그 이후 보여줄 역기능이라는 대척점을 소개하기 위해 이용돼 썩 괜찮은 플롯이었으나, 고립 이후 상정하게 내놓은 추격극은 전보다 긴장감을 이끌지 못해 영화의 지루한 부분이 되고 말았다. 소재의 현실성이 끌어낸 참신한 몰입이 작위적인 연출로 씁쓸한 제동이 걸린 것만 같다. 실재적인 흐름 속에서 최소화해야 할 개입이 눈에 띄게 드러나니 몰입이 오작동을 일으킨 것이다.


 이미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 스마트폰의 악행을 고발하려면 그 일상을 비집고 들어설 자각이 필요하다. 날카롭고 깊은 자각을 만들 수 있는 몰입은 영화의 종장까지 이어져야 했으나, 단절되고 말았다. 하여 2차 가해를 연상시키는 엔딩 장면은 몰입 없이 바라보는 듯한 상투적 관습처럼 느껴지곤 했다. 문제 인식과 주제 의식은 좋았으나, 그것을 관객과 매개할 몰입과 감정이입을 통한 투영이 아쉬웠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놓을 수 없는 것은, 더 놓을 수 없는 스마트폰이 비극을 구경거리로 소비한다는 행각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서치>의 노트북에서 시작한 현대 미디어의 오인을 스마트폰으로 이끌어 우발적인 현실성을 부여한 점은 분명히 눈여겨볼 만하다. 기록되지 말아야 할 기억이 흔적처럼 남고 있는 세계가 더할 나위 없는 악행이라는 것이다. 우준영처럼 원인 없는 악행이 세계 자체에도 있다는 생각의 확장은 투영할 수 없었으나 고찰은 가능했다. <놉>의 나쁜 기적의 세계가 전이된 것인 마냥 비극을 희극으로 이용하면 ‘진재킷’에게 잡아먹힐지도 모르겠다. 소화되지 못한 나의 스마트폰이 누군가의 머리를 관통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헤어질 결심> 리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