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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지원 Sep 05. 2024

별에서 온 그대가 결혼지옥에 간 이유

도민준 속에 내 남편 있다?!

 무심코 채널을 돌리다 한참 재밌게 본 드라마의 재방송을 만나는 순간이 있다.

며칠 전 만난 드라마는 '별에서 온 그대'. 2013년 방영이니 무려 11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다.

너무 오래전에 본 드라마라 강렬한 몇 장면과 큰 서사만 기억이 나고, 회별로 담긴 소소한 에피소드는 기억에서 사라져 나름 신작 드라마처럼 재미있게 보고 말았다. 게다가 얼마 전 종영한 '눈물의 여왕' 속 배우 김수현의 매력이 얼마나 강렬했나! 그의 앳된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호강, 목소리는 귀호강. 덕분에 한 며칠, 쉴 때도 별 그대, 주방에서 일을 할 때도 별 그대와 함께 했다. 물론 11년 전에는 전혀 생각지 못한 이게 뭔가?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싶은 장면도 있었고, 무리하게 4회를 늘리며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구구절절 꽤나 늘어지고 있네! 싶기도 했지만, 그 모든 문제를 덮을 만큼 전지현과 김수현, 두 배우의 열정적인 연기와 호흡이 정말 대단했다. 그런데, 문득 극 중 도민준의 캐릭터가 왠지 모르게 어디서 본 듯, 느낀 듯 아주 친근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천송이를 사랑한다면서 세상 다정한 법이 없고, 사랑한다는 말도 절대 하지 않는다. 심지어 400살이라는 나이가 말해주는 가부장적 사고방식은 어떡하나? 극 중에선 그 마저도 매력포인트로 승화되고 있지만, 얼굴이 김수현이니까 가능한 일이지, 얼굴이 김수현이 아니면 어떻게 가부장이 매력이 될 수 있냐 말이다. 드디어 19화 말미에 그토록 과묵하던 도민준이 천송이에게 반지를 건네며 프러포즈를 하는 장면이 시작됐다.


"천송이, 네가 듣고 싶어 하는 말들 다 해줄 순 없지만, 네가 그리는 미래에 내가 함께 하고 싶은 건 사실이야"

그리고 반지가 담긴 상자를 열자, 천송이는 반지를 끼워달라고 한다. 그리고 반지를 낀 천송이가 말한다.

"완벽하게 행복하다!"


그 진지하고 로맨틱한 장면에서 나 혼자 빵 터져 한참을 웃고 말았다.

아니, 남편에게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맛있는 걸 해줘도 맛있단 소리를 들을 수 없다. 공감받고 이해받고 싶어 이런저런 속 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아도 "그럴 수 있겠다. 많이 힘들었겠다."를 못해준다는데 완벽하게 행복하다니! 그제야 '별에서 온 그대', 도민준이라는 캐릭터가 왜 그렇게 익숙하고 친근했는지 드디어 답을 찾았다. 도민준 속에 내 남편 있다?!


"그래서 어떡하라고?"

"그냥 그럴 수 있었겠다. 힘들었겠다. 그렇게만 말하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해?"

"...  "

" 그냥 말만 하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해? 그게 그렇게 어려워? 한 번 해봐."

"... "

 

끝내 그 말을 못 하고, 한숨을 쉬는 남편을 보면 속에서 천불이 난다. 도대체 왜 저러나? 답답해 죽겠고

돌아버리겠다 싶었는데, 의외로 '별에서 온 그대'를 정주행 하다 답을 찾았다. 도민준도 천송이한테 말했다. 네가 듣고 싶어 하는 말들 다 해줄 수 없다고!

세상에서 내 남편만 그런 인간인 거 같아 억울하고 속상했는데, 로맨스의 끝판왕인 드라마 남주, 도민준도 그렇다니 조금 마음이 놓인달까? 하지만, 또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하는 상황을 맞닥뜨린다면, 난 또 돌아버릴 텐데...  어쨌든 드라마는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렸다. 시간 여행자가 된 도민준과 천만배우 천송이가 침대에 누워 행복한 일상을 보낸다는 마지막 장면. 근데 그 후로 11년이 흘렀으면 이 부부 슬슬 결혼 지옥에 나올 때가 된 거 아니야? 얼굴 뜯어먹고 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고, 천만 배우 천송이는 중년에 진입해 호르몬의 불균형이 찾아왔을 것이다. 이로 인해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천송이 옆엔 안타깝게도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줄 수 없는 도민준이 있다. 심지어 그는 400년 동안 그러했다! 이제 더 이상 주인공으로 추앙받지 않는 배우 천송이에겐 무엇보다 남편의 다정한 공감과 따스한 위로가 필요할 텐데... 남자,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다. 심지어 더 고집스러워졌을지도 모를 일. 그럼 이 부부 파국이 수순 아니야? 도민준 천송이 부부가 결혼 지옥에 나올 확률, 내 생각엔 100%다. 오은영 박사님, 이 부부의 일상을 영상으로 본 후, 이렇게 말문을 열 것이다.


"도민준 씨, 제가 이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어요. 가부장적인 면이 있으세요."   


별에서 온 그대도 결국은 결혼 지옥? ㅋㅋ 왠지 마음이 편안하다!   



* 이 글을 공감능력 없는 남편과 사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아내들에게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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