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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롬 Mar 24. 2024

창의적인 아이러니

<지구를 지켜라!>(2003)

2003년은 한국 영화의 전성기라고 볼 수 있다. <올드보이>, <살인의 추억>, <실미도>, <장화, 홍련> 등 오늘날까지도 회자하고, 수작 그 이상의 평가를 받는 작품들이 대거 등장한 해였다. 그리고, <지구를 지켜라!> 역시 그 수작의 반열을 충분히 갖고 있지만, 타 작품과는 달리 흥행과는 반비례한 비운의 수작이 돼버렸다. 작품 내용을 예측할 수 없는 포스터와 유치하게 느껴지는 의상은 모호함을 더한다. 하지만, 본 작은 유치한 장난과도 같은 겉모습 속 숨은 아픈 내면을 천천히 드러낸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IMDB

장르 총체론적 관점   

  

본 작의 개요 장르는 SF, 스릴러지만 다른 장르의 구성요소가 다양하게 들어있는 총체론적 영화다. 약국에서 싸우는 장면은 무협지 액션을 방불케 하는 액션을 보이고, 병구(신하균)와 순이(황정민)의 관계는 귀여운 로맨스 장르로 이어진다. 사건의 진실을 쫓는 추 형사(이재용)의 모습은 추리, 서스펜스 요소를 전달하기도 한다. 특히, 쓰러진 병구를 만식(백윤식)이 가슴을 발로 차는데, 이것이 심폐소생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인상적인 코믹 요소다. 다양한 장르 요소가 등장해도 메인 장르가 약하지 않다. 외계인이라고 생각하는 만식을 납치해 고문 같은 실험을 집도하며 벌이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은 SF 세계관에 스릴러를 매우 잘 녹여낸다. 탄탄한 메인 장르 플롯에 다양한 장르 요소를 유동적으로 선보이며 입체적인 재미를 전달한다.     


IMDB

정말 외계인일까?

    

외계인의 정체를 드러내기 위해 병구(신하균)가 만식(백윤식)에게 벌이는 기행은 그로테스크하다. 기행을 통해 병구는 자신만의 세계관에 갇혀 인간을 외계인 취급하며 살인 행각을 벌이는 정신이상자로 예상할 수 있다. 하지만, 각종 고문과 공격을 받고도 살아있는 만식의 체력과 기이한 행동은 점차 정말 외계인인지 아리송하게 만든다. 병구 역시 마찬가지다. 외계인을 광적으로 집착하는 초반부 순수하고 발랄한 모습에서 점차 사회와 인간관계에서 배척당한 복수에 불타는 염세주의적인 살인마로 이미지가 변화한다. 초반에는 예측할 수 있는 이미지에서 후반에 도달할수록 정체를 예측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한다. 병구는 지구를 지키는 영웅인가 혹은 살인자인가. ‘지구를 지켜라’에서 ‘지구’는 병구가 키우는 강아지 ‘지구’인가 혹은 행성 ‘지구’인가. <지구를 지켜라!>는 하나의 대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지를 고찰한다. 병구와 만식의 정체성을 아리송하게 대한 것처럼 긍정적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지구 세계 속 고통과 절망을 비추며 지구와 인간의 염세주의적 태도를 번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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