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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stcard Feb 10. 2021

의미를 구하지 말고 용도를 찾아라?

더 슈퍼 뮤지엄 프로젝트   &  마더랜드 展

 

        의미를 구하지 말고 용도를 찾아라

        더 슈퍼 뮤지엄 프로젝트  &  마더랜드 (2017)  


공예과를 전공하고,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예술학 석사를 졸업한 유쥬쥬 작가는 목공, 도자, 금속, 유리 등 순수 공예의 소재와 기법으로 설치 작품을 구현하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소재를 만들거나 그대로 가져와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작업들을 진행해 왔다.

이에 필자는 2006년부터 이루어진 작업 포트폴리오로부터 최근 OCI 미술관에 이르기까지의 유쥬쥬 작가의 작품을 살펴보며, 80년대 이후 화두가 되어 온 삶이 예술이 되기 위한 조건에서의 한계점들이 작가의 공예적 작업을 통해 극복의 여지를 주고 있다고 보았다. 또한 동시대 미술이 구현하는 새로운 표현을 위한 매개적 재료로 일상의 사물들에 대한 재편집-리싸이클링과정에 주목 하고자 한다.

     


삶이 예술이 되는 작품의 딜레마 극복하기

유쥬쥬가 2012년부터 지금까지 지속해 오고 있는 대표적인 작업으로는 <슈퍼뮤지움 프로젝트>가 있다. <더 슈퍼 뮤지엄 프로젝트,Mixed media and print> 는 슈퍼마켓에 진열된 상품들이 언젠가 박물관에 고이 놓여있는 유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플라스틱을 이용한 짚공예 의상, 과자 포장지로 만든 옷, 그리고 일회용 은박식기에 새겨놓은 도자기 장식, 테이블 냅킨을 이용한 로코코 시대 복식 등 작가는 공장에서 찍어내는 대량 상품들을 이용해 소품을 만들고, 그 소품들과 더불어 작품에 등장한 사진을 남긴다.이러한 공산품과 같이 넘쳐나는 광고와 미디어 속에서 동일해진 현대인의 성향은 각자의 예술적 성향을 발휘하며, 그 자체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유쥬쥬의 작업에서는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다룬 레디메이드 작품의 대표인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의 「샘」이나 워홀의 「브릴로 박스(Brillo Box)」를 연상하게 된다.  삶이 예술이 되고자 하는 움직임 속에 현대미술에서는 기표보다는 기의적 측면에서 그리고 작품의 조형적 요소보다는 개념과 철학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물질적 오브제의 존재는 부차적인 것이 되어 예술을 완전히 비물질적이고 관념적인 경험으로만 인식하여 결국 신체적, 감각적인 것들에 대한 도전을 받아 왔다. 나아가 작품에 대한 지시적, 의미적 측면이 강조되는 철학적 해석은 작품을 그림 자체나 내적인 구조의 문제로 보는 기표적 측면을 간과하면서 기의들의 자족적인 향연이 되기가 쉬운 것이 딜레마였다, 이러한 ‘차용(appropriation)’미술과 달리  뮤지엄 프로젝트는 자신의 방식으로 과거의 형식들과 관련을 맺는다. 그 자신의 방식이란 곧 신체의 적극적인 참여이다.새로운 사물을 자신의 작업으로 가져올 때 그것과 다른 것을 결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드는 아이디어만을 떠올리게 되지만 그 결합의 물리적 기법-신체적 구체화에 대한 딜레마를 자신의 손작업으로 극복한다.

 유쥬쥬 작가의<슈퍼뮤지움 프로젝트>시리즈 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작업들-여러 사물들을 이용하여 꽃이나 화환을 만들었던-도 그렇고 OCI 미술관에서 전시한 <비가 오고 큰 바람이 불었다>, <The North>,<k2>(2017 거울 및 혼합매체)에서는 거울이라는 물질을 직접 자르고 붙이고 다듬어 자신의 작업의 서사를 형성 한다. 이러한 작업은 삶이 예술이 되는 과정에서 포기되기 쉬운 물질과 감각이라는 신체적 구체성을 확보하게 되고, 신체적 구체성을 통해 일상적 사물을 보여주는 비재현이라는 또 하나의 스타일로 재현하는 딜레마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는 것이다.


 의미를 구하지 말고 용도를 찾아라

서울시립미술관 신소장작품전 세마 살롱<더 슈퍼 뮤지엄 프로젝트>에서는 슈퍼마켓의 사물을 박물관의 유물로 탈바꿈시키는 설치와 사진 시리즈 작업을 한다 .<더 슈퍼뮤지엄 프로젝트-코리아1>는 공업사회의 상징인 플라스틱을 과거 선조들의 짚공예 기법을 이용하여 현대의 박물관에 가져온다는 발상으로 제작한 일상용품들의 전시이다.

 전시에 사용된 사진 작품들은 프랑스, 영국, 일본, 태국, 한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로 그 나라의 일상용품을 사용해 각 나라의 전통 복식을 형상화했다. 한국에서는 플라스틱을 이용한 짚공예 의상을, 일본에서는 과자상자를 이용한 일본 부채를, 태국에서는 과자를 이용한 태국 전통 장신구를, 영국에서는 은박지를 이용한 중세 유럽 갑옷을, 프랑스에서는 테이블 냅킨을 이용한 로코코 시대 복식을 보여준다. 대리석으로 만든 소시지에서는 독일 사람들이 느끼는 소시지의 깊은 맛을 단지 짜다고 밖에 인식하지 못하는데서 오는 문화적 이질감을 작품에서 덤덤하게 대리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일상의 사물들은 단지 뮤지엄 프로젝트에 필요한 이합집산적이고 일시적인 도구일 뿐이다. 이 작업들에서도 작가는 직접 손으로 사물들의 본래 쓸모를 제거하고, 새로운 쓸모를 부여하고 있다. 즉, 무의미의 의미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과일조각으로 재현된 17세기 유럽의 바니타스 정물화는 시간의 간격을 두고 촬영하여 자연적 요소로서의 시간뿐만 아니라 작가에 의해 조작된 사물들이 감각적으로 공존한다.

<The North>시리즈에서는 본래 성스러운 교리를 갖가지 죄로 물든 이들에게 전파한다는 의미로 생겨난 단어인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를 북한의 인쇄매체에서 따온 아이콘들과 더불어 거울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작업을 한다. 이렇게 만든 북한의 선전 문구들은 이념이 세속화되어 궁극적으로 통치의 수단이 되고 표상되는 이념의 허상을 드러내는데 사용될 뿐 문구의 본래적 의미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데미안 허스트의 다이아몬드 해골과 시베리안 허스키를 결합한 작품 데미안 허스키(2008)에서도 작가는 알려진 아이콘을 무심한 듯 가져오는 차용의 전략을 구사한다.

 이러한 슈퍼뮤지엄 프로젝트,꽃과 화환시리즈,그리고 프랜즈의 헝겊 인형들..등에 사용된 다양한 사물들은 오늘날 동시대 미술이 구현하는 새로운 표현을 위한 매개적 재료이다. 중요한 것은 이들로부터 원하는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가라는 방법의 문제이다. 작가는 사회가 생산해 낸 문법규정을 재사용하는 행위를 통해 이 문법을 그 내부로부터 전환시킨다. 창조한다는 것은 사물을 새로운 시나리오에 삽입하고 새로운 서사의 등장인물로 간주하는 것이라 볼 때, ‘차용 (appropriation)’이란 개념이 현대미술의 중요한 미적 전략으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기존 작품에 대한 차용 방식을 택하는 것은 그 예술작품에 대해 냉소나 풍자  아니라 그것을 활용하기 위해서라는 점에 주목 할 필요가 있다. 즉, 작품의 내용을 위해 필요한 모든 문장 ,사물의 형태, 재료 이런 것들을 재편집해서 사용하는 동시대 미술에서 다뤄지는 포스트프로덕션1)의 일부 방식을 사용하여 에디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대 미술 작품은 그 자체로 창조적 과정의 종결이 아니고 가는 길의 입구이며 발전기 역할을 하는 것으로서 기존의 이미지들의 기호를 통해 독창적인 자신의 길을 만든다. 마찬가지로 유쥬쥬 작가는 이용가능한 도구들을 조작하고 제시하여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고 있다는 맥락에서 동시대 미술로서 이해가능하다.

 “의미를 구하지 말고, 용도를 구하라 "는 비트겐 슈타인의 말이 떠오르는 이유이다.  

   


거울과 왜곡된 주체의 소외: 마더랜드 (2017)

 <The North>에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문구와 단어는 "세상 부럼 없어라", "주체사상", "아버지수령님께 경배하라" 등 북한의 상징적 프로파간다들이다. 북한의 표상인 프로파간다는 인민의 생사를 좌우하는 거대 이념으로서 공공의 적을 설정하고, 공동의 승리가 미래에 부여할 환희라는 일루전을 심어 놓는다. 대한민국 국군의 주력 소총을 본뜬 <K2> 여기에는 군대 문화의 경직성과 폭력성이 아버지와 아들과 손자가 대대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남한의 현실을 공예적 손놀림으로 담았다.<비가오고 큰 바람이 불었다 > 에서 거울 병풍은 남북의 대치 상황, 개인과 국가 사이에서 휘몰아 치는 이땅의 궂은 날을 반영하는 피날레이다. 이러한 유쥬쥬 작업 전반에 포착한 키워드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과 북의 실재이고 이것은 프로파간다를 담은 거울 작품들과 더불어 거울로 만든 18자루의 총과 5점의 병풍들로 구현된다 .

거울은 빛을 반사시키고 이미지를 반전시키는 매체이다. 거울로 된 그의 작업 앞에 다가서면 관객들은 자신의 모습을 제일 먼저 비춰보지만 거울에 비친 것은 실재 이미지가 아닌 반전되고 왜곡된 상이다. 거울은 자신을 가장 잘 비추어 주는 성찰의 매개물인 동시에 나를 반대로 비추어 준다는 역설이 바로 시인 이상의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 까지 조용한 세상.."에 한 귀절을 차용한 작가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나는 보여진다. 고로 작품이다."라는 말처럼 내가 응시를 하는 주체라고 착각하던 모더니즘 세계에서 다시 되받아오는 시선에 의해 내가 규정되고 있다는 주체의 소외2)는 초현실주의적 자아 분열이라는 구도를 형성한다. 이상의 시 “거울”의 종말은 결국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가 화해를 시도하지만 "..퍽 섭섭하오." 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작가가 드러내고자 한 것은 이상의 시 “거울”의 의미가 아니다. 단지 모순된 한반도의 상황을 그저 모순되게 드러낼 뿐이다. 대대로 유전되는 아들의 아들의 아들의 군대 생활.....그러한 것들이 총 이라는 상징적 매개물인 거울로 제작 되었다는 것은 아이러니이다. 분단국가 남한에 살고 있는 우리는 세계가 바라보는 대한민국과는 다르게 분단 현실을 무디게 인식하고 살아간다. 마치 거울이 우리를 왜곡되게 비추듯이 이러한 현실인식을 작가는 난데없이 "비가 오고 큰 바람이 불었다 " 는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의 한 문장을 가져와서는 거울로 병풍을 만들어 한반도의 큰 바람을 막아 본다는 발상을 한다. 위기를 막아보려는 자세는 곧 안일한 대처와 끝나지 않을 분단 의식에 대한 유희이고 냉소다. “마더랜드”-우리의 모국을 작가는 남한에서 살아가는 여성작가의 시각으로 거울에 비추이는 왜곡되고 불완전한 소재에 담아 사뿐히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이동하며 부유하는 소재들의 물성을 사용하고, 재편집하는 방법론을 취하는 작가의 태도는 오늘날 현대 미술에서 추구하는 비결정적이며 새로운 의미에서 예술 그 자체에 관한 것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하지만 이러한 에디터로서의 작품들이 어떤면에서는 무엇이든 된다는 식의 그릇된 상대주의로 나아가 자본의 상품화가 가속화 되는 최근 동시대미술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진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현재 작가는 새로운 기호의 탐험가로서 뉴욕 레지던시에서 또 다른 프로젝션을 하고 있을 것이다.   

  

1)니꼴라부리요, 『포스트프로덕션』,2002: 많은 미술작품들이 기존에 존재하는 작품의 문화적 가치 체계를 기반으로 제작되는 (이미지의 의도적 차용과는 달리)방법적 현상을 탐구한 저서이다

2) 라캉이 말하는 주체는 상상-상징-실재로 구성된 거울 단계이론에서 형성된다.

인간은 몸을 통해 나의 주체를 형성하는데 하나로 통일된 자신의 몸 전체를 보기 전에는 스스로를 하나의 통일된 개체로 인식하지 못하다가 6~18개월 유아기에 이르러서야 분리된 조각들의 구성이 아닌 하나의 통합된 자신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거울에 반영된 이미지는 다른 사람이 보는 나이고 자신은 거울 속의 공간 밖에 있기 때문에 자기로부터 소외 된다는 논리는 라캉의 정신분석학과 시각 미술의 연관성을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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