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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형 Jul 16. 2020

12. 3막 2장 <나의 얘기>

3막 2장 (2011-2015)


#2. 대학교 3-4학년


"외국 대학은 입학은 쉬운데 졸업이 어렵다"라는 설이 있다. 일부 동의하고 일부 동의하지 못하는데, 이는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이 철저히 자본주의 국가다 보니, 유학생은 '비교적' 쉽게 입학한다고 볼 수도 있다. 유학생과 자국민 학생 학비가 적게는 1.5배, 많게는 3배 차이가 났고 (라떼는 3배였다) 당연히 돈을 더 많이 내는 학생을 유치하고 싶은 건 같은 마음일테니까. 졸업이 어렵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처럼 계절학기라든지 학점 지우개라든지, 학점을 어떤 방식으로든 메꿀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일 거다. 영국은 첫 시험에서 일정 점수를 받지 못하면 재시험 딱 한번 기회가 주어지는데, 여기서도 점수 미달이면 예외 없이 유급을 시키거나 퇴학을 시킨다. 마지막 학년에 퇴학을 당하는 학생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게다가 두 번째 시험에서 만점을 받더라도, 재시험이기 때문에 40점(Pass)으로 기록된다. 한번의 실수가 주홍글씨처럼 계속 따라다녀, 전 학년 평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모든 점수가 있는 그대로 성적표에 모두 기록돼서, 과거 행적(?)을 지우거나 숨기지도 못하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펼쳐진다. 마지막으로, 많은 한국 학생들은 졸업논문을 쓰지 않았던 것 같은데, 영국에서는 대부분의 과가 졸업논문을 쓰도록 설계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전공마다 차이는 있다.


TMI로, 영국대학은 한국, 미국과 다르게 대부분 3년 학제로 구성되어 있다. 1학년 성적은 최종 성적에 아예 들어가지 않거나, 들어가더라도 5-10% 미만으로 아주 미미하게 들어간다. 자교 경제학과의 경우 2학년 40%, 3학년 60%였다. 하지만, 학부 졸업 후 최상위권 대학원 내 최상위 전공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1학년 성적도 보는 경우가 많다.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3-4년 내내 성적에 대한 압박과 스트레스를 이겨내야 한다. 영국대학은 드라마틱한 성적 곡선을 보여주는 것보다, 전 학년 내내 꾸준히 고학점을 유지하는 학생들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이러한 이유로, 졸업 학년이 되면 공부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나 또한, 후임 회장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학업에 전념했다. 순수 경제학 세 과목을 필수적으로 수강해야 했고, 나머지는 선택 과목이었는데, 졸업 학년에는 법학, 정치학, 개발경제학을 수강했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과목 선택 자유도가 높아져서, 오히려 더 재미있게 공부했다. 긴장감과 압박감은 저학년 때보다 더 높았지만 말이다.


배운 이론을 실무에 적용하고 싶어 다양한 단체에 몸담아 업무 프로세스를 익혔다. 서울대학교 경제학 조교를 시작으로 민관을 오가며 적성을 탐구했다. 서울대학교 우수 조교로 추천받아, 한국석유공사 하계 인턴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다. 인사팀에 배정받았지만, 솔직히 배운 것은 없다. 하긴,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무언갈 배우는 것도 이상했다. 공기업의 생리 정도만 알아가도 큰 수확이라 생각했다. 첫날은 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노트북으로 관련 기사만 찾아봤다. 페이스북을 몰래 할 때면 등이 너무 따가웠다. 여섯시 쯤 되니 퇴근하라고 했다. 주섬주섬 대충 눈치 보며 집으로 향했다. 업무 적인 것보다, 회식이나 봉사활동에 참여해서 여러 인생선배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그 안에서도 재미난 인연들이 많은데, 이건 추억으로만 남기도록 하겠다. 풉.


국회에서 보좌관 인턴도 했다. 아마 지금까지 한 인턴 중에 가장 박진감 있고 보람 있는 인턴이 아닐까 한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수석 보좌관님을 보조하며 피감기관들을 대상으로 기업 일감몰아주기, 장애인의무고용법 준수 현황을 감사하는 업무를 맡았다. 처음에는 일일이 담당자에게 전화해서 정보를 요청하는 것도 부끄러웠다. 적막한 의원실에, 내 목소리만 울려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것이 어색했다. 창피하지만, 화장실에 가는 척하고 계단 통로에서 전화를 주고 받은 적도 있다. 나중에는 요령과 자신감이 생겨 기계처럼 업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며, 청문회 질의서 초안을 작성했다. 젊은 감성으로 2030 세대를 타겟하여 의원님 SNS 콘텐츠 기획도 했었고, 홍보 기사 작성도 해보았다. 신기했던 점은, 한국석유공사 인턴이 끝나고, 의원실로 왔을 때, 담당 피감기관 중 한국석유공사가 있었던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을에서 갑(?)으로 승격하게 된 것이었다. 인턴 당시 친해진 선배 누나와 전화를 주고받으며 낄낄 웃었던 것이 생각난다. 마지막 날 의원실 식구들에게 손편지를 써서 나눠주었다. 아직도 그 인연을 이어나가고 있고, 여의도에 갈 일 있으면 꼭 한번씩 들린다.


한국행정연구원에서는 우즈베키스탄 공공부문 혁신을 위한 전자정부, 스마트오피스 제안 전략 수립 프로젝트를 맡았다. 나라별 전자정부, 스마트오피스 성공 및 실패 사례 분석을 하고, 월말 컨퍼런스 발표에 쓰일 자료를 준비했다. 대부분 영어를 활용하는 업무여서, 영어 구사 능력이 요긴하게 쓰였다. 당시 담당 박사님께서는 융통성 있고 유쾌하신 분이었는데, 공공기관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해소해주신 분이다.


최종적으로는 '꽤 괜찮은' 점수로 졸업하게 됐다. 아슬아슬했는데, 그래도 내 희로애락이 녹아든 성적표였고 이에 만족한다. 초심을 잃을 때 바로바로 볼 수 있게, 자취방에 졸업장을 액자로 만들어 전시해뒀다. 힘들 때마다 더 힘들 때도 있었지 하며 스스로를 격려하기 위함이다. CC도 해보고, 외국 친구들도 많이 사귀고, 공부도 한인회 활동도 열심히 하며, 후회없는 대학생활을 마감했다.




https://brunch.co.kr/@hopeconomist/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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