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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솔 SANSOL Mar 05. 2023

청년 셰프 지윤진의 음식에 대한 고민

슬로푸드운동을 지지하는 요리사

 'FICO(피코)'는 이탈리아어로 무화과를 뜻한다. '피코'가 지윤진 셰프의 작업실 이름이 된 사연은 그가 세계 음식문화와 지속가능한 음식을 배우고자 떠났던 이탈리아 유학 시설로 거슬러 올라간다. 학교 텃밭에서 자원봉사 하던 어느 늦여름, 가든 매니저가 준 작은 무화가로 해소된 갈증과 달콤한 행복. 그 기억을 간직하고 싶어서 작업실 이름을 '피코'로 지었다. 인왕산 풍경이 아름다운 피코에서 진지하게, 그리고 힙하게 우리의 음식을 고민하는 지윤진 셰프를 만났다. 


지윤진 셰프

 


#1 음식과 함께 걸어온 길

산솔 안녕하세요! 윤진님은 제가 처음 대면으로 만난 「슬로매거진달팽이」구독자세요!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지 몰라요. 슬로푸드 청년 커뮤니티 ‘슬로청춘’을 통해 ‘지윤진’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었을 때 역시 우리 구독자답게 「슬로매거진달팽이」의 가치나 방향성과 참 비슷하고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는 시간을 나누고 싶었는데요. 흔쾌히 인터뷰 요청을 수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진 네 안녕하세요. 저도 만나게 되어서 너무 반가웠어요. 제가 구독하는 잡지에 제 이야기가 담긴다니 너무 반갑고 신기하네요.    

     

인왕산이 보이는 서촌에 위치한 FICO 요리작업실


산솔 현재 서촌에 요리작업실 피코(FICO)를 운영하며 쿠킹클래스와 프라이빗 다이닝을 운영하시는데요. 맨처음 윤진님이 어떻게 요리에 흥미가 생겼는지 그 계기가 궁금해요.     

 

윤진 저희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고등학교 선생님이셔서 야자를 하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셨어요. 그러다 퇴직하시고 전업주부가 되셨죠. 그때부터 요리를 시작하셨는데 보통 부모가 아이들이 다치거나 사고를 칠까 봐 주방에 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달리 항상 저랑 같이 요리를 하셨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흥미를 많이 느낀 것 같아요.

      

산솔 그렇군요. 부모님께서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요리학교나 조리학과를 가는 것보다 대학교에서 일반 학문을 먼저 공부하기를 바라셨다던데 어떻게 요리 공부를 시작하고 요리대학으로 유명한 미국의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까지 가게 됐나요?

 

윤진 어머니께서는 제가 대학을 마칠 때까지 공부하면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졸업 후에도 요리를 공부하고 싶으면 그 때 결정하기를 바라셨어요. 그래서 음식을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가상 식품영양학과에 들어가 보니 조리나 음식에 관한 실질적 공부보다는 영양학이나 인체생리학 등을 배우는 생활과학에 더 가까웠어요. 좀 더 요리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무척 재미있었어요. 그러면서 요리학교에 진학해서 더 공부하고 싶다고 확신하게 됐죠. 마침내 부모님께서 제 요리에 대한 열망을 이해해주셨고 부모님의 지지를 받으며 미국에 있는 요리학교 CIA에 유학하러 갔습니다.


산솔 : 미국에서 공부하며 캘리포니아와 뉴욕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일하신 걸로 알아요. 언어도 다를 뿐더러 다른 나라에 정착해서 적응하는 게 정말 어려웠을 텐데, 미국에서 지낸 시간은 어떠셨나요?         


윤진 : 제가 다닌 학교가 워낙 빡빡하고 스파르타식 교육을 하기로 유명한 학교에요. 언어도 다르고 아시안 여성으로서 불리한 점도 있었지만, 무척 재밌었어요. 만약 과거의 한 시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요리학교에 다니던 그때로 가고 싶을 정도로요. 요리란 사무실에 앉아서 언어로 소통하는 일이 아니잖아요. 언어로도 소통하지만 퍼포먼스로 이루어지다 보니 언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눈치가 생겨서 요리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어요.물론 가끔 좌절했지만 그 시간이 모여서 제가 성장한 거죠. 저는 그 시절의 제가 스펀지 같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졸업 후 뉴욕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시기는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어요.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14시간 이상 일하면서 식사도 서서 할 정도로 계속 일했어요. 부족한 면이 많아 혼나기도 많이 혼났고요. 인생의 나락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힘든 20대의 시간이었습니다. 반면 학기 중간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인턴으로 일했을 때는 행복한 기억이 많아요. 햇살 가득한 창문 앞에 주방이 있는 곳이었는데 팜투테이블(Farm to Table)을 하는 식당이라서 밭엣 직접 채소를 따와서 요리했어요. 슬로푸드에 대한 관심은 이 식당에서 일한 경험이 씨앗이었다고 생각해요.

   

#2 슬로푸드의 가치를 지키는 어려움

산솔 : 윤진님의 뉴욕 유학 시절 이야기를 들으니 얼마나 치열한 시간을 보냈는지 느껴져요. 청춘 영화 한 편이 그려지네요. 그 시절의 윤진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치열함 삶 속에서 어떻게 슬로푸드에 관심을 갖게 된건가요?   

  

윤진 한국에 돌아와서 외식회사와 식품회사에서 음식 개발하는 일을 했어요. 회사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가장 값싼 식자재를 사용해 맛있는 음식을 대량으로 만들기 원해요. 어느 순간 싼 재료로 맛있는 식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좋은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야 좋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회의감에 자꾸 죄책감이 커졌어요. 그때부터 슬로푸드에 관심이 생긴 것 같아요. 오히려 슬로푸드와 정반대의 일을 하면서 관심이 생긴거죠.  그렇게 점점 대기업이 음식을 대하는 방식에 회의감이 들었어요. 재충전과 새로운 전환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에 회사를 그만두고 이탈리아의 미식과학대학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슬로푸드를 탐험하기 시작했어요.


산솔 윤진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이끄는 삶을 사신다고 느겼는데 그런 삶의 태도와 발자취에서 ‘나도 가슴이 이끄는 삶을 살아도 되겠다’라는 용기를 얻었어요. 현재는 요리 스튜디오 '피코'를 운영하는 사업가이자, 그 공간에서 요리하는 요리사, 메뉴 컨설팅과 대학교에서 강의하는 교육자까지 다양한 역할을 맡고 계세요. 큰 맥락에서 ‘요리’와 관련된 일을 하지만 역할별로 필요한 수행능력이 다른 것 같습니다. 슬로푸드를 지지하는 사람으로서 각 역할에 상관없이 슬로푸드라는 식문화 운동의 가치를 중점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지 아니면 역할별로 추구하고 전달하려는 가치가 다른지 궁금합니다.       


윤진 : 역할마다 다른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슬로푸드와 관련된 이야기도 하고, 철학적인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끔 노력을 많이 하지만 기술 위주일 수밖에 없어요. 아쉽게도 철학적인 부분은 학생들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에요. 그들이 관심 있는 부분은 어떻게 더 훌륭하고 화려한 기술을 배워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많은 보수를 받으며 요리사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하면 빨리 사업을 해서 내 가게를 차릴 수 있을지에 대한 부분이에요.

제가 식당 컨셉에 맞는 메뉴 레시피나 메뉴 목록을 정해주는 컨설팅 일도 하고 있는데, 이런 컨설팅도 슬로푸드의 가치를 담아내기 힘들어요. 그곳에 맞는 요리를 해야 하기도 하고, 단가를 맞춰서 운영이 잘 되는 요리를 개발해주기를 원하거든요.

저만의 색깔을 내는 일은 요리 작업실 '피코'에서 해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쿠킹클래스는 슬로푸드를 완벽히 담는 수업을 하기에는 아직 제가 부족하기도 하고, 재미 위주 수업을 바라는 수강생들의 요구를 맞추려다 보니 사업적 측면에서 쉽지 않아요. 하지만 피코에서 하는 프라이빗 다이닝은 대부분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제 손을 거쳐서 하는 느린 요리들이고 최대한 슬로푸드 방법대로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이런 점에서 요리 작업실 피코는 아직 슬로푸드운동을 100% 구현해내고 있지 않아요. 이점은 제게 현재 가장 큰 숙제이고 앞으로 제가 꾸려나가야 할 미래의 고민입니다.      


맛있는 요리가 탄생하는 FICO의 작업 공간


#3 바쁜 일상에서 쉽게 함께하는 슬로푸드

산솔 : 그렇다면 바쁘고 지친 탓에 퇴근 후 식사 준비를 하는 것조차 에너지와 시간 소비로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에서 슬로푸드를 실천할 방법이나 팁이 있는지 궁급합니다.   

  

윤진 : 사실 일상생활에서 진정한 슬로푸드를 지키며 조리해 먹는 일은 정말 힘들어요. 제가 권장하는 것은 사먹는 가공식품을 줄이고 원재료로 조리과정이 복잡하지 않은 요리를 해 먹는 거예요. 예를 들어 샐러드를 만든다고 생각했을 때, 귀찮으니까 손질된 채소를 사서 가공되어 만들어진 드레싱을 뿌려 먹잖아요. 물론 편하고 좋죠. 하지만 싱싱한 원재료를 직접 씻어서 손질하고, 드레싱 대신에 제철 과일을 으꺠 넣거나 치즈를 갈아 넣고 엑스트라버진 올리브유만 뿌리는 식으로 화학조미료 없이 재료의 싱싱함을 살려 정성 들여 만들고 감사함을 느끼면서 음미하며 먹는다면 그게 슬로푸드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슬로푸드를 떠올리면 장을 담그고 식초를 만들거나 전통주를 빚는다는 등 오랜 기간이 필요한 것만 생각해요. 물론 이런 것들이 대표적인  슬로푸드 재료라고 말할 수 있지만 우리가 매번 만들어 먹을 수는 없어요.      


산솔 : 정말 그러네요. 제가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이에요. 저 역시 윤진님이 말씀해주신 것처럼 슬로푸드를 떠올리면 장, 식초, 탁주가 먼저 떠올랐거든요. 발효식품을 만들어본 적도 없는데 과연 슬로푸드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싶어서 한편으론 늘 마음이 무거웠거든요. 


윤진 : 슬로푸드에서 ‘슬로’라는 명칭 때문에 산솔처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식초나 장류 혹은 프로슈토 햄과 치즈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슬로푸드운동의 진짜 핵심은 가공식품을 멀리하고 가까운 곳에서 생산된 식재료를 사용하며 생물다양성, 즉 다양한 식품을 섭취하자는 거예요. 예를 들어 서울이면 경기도권에서 생산된 푸드마일(*Food mile : 농산물 등 식자재가 생산지에서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이동 거리)이 적은 식재료를 구매한다거나 환경연합 같은 유기농 제품을 파는 곳에서 이력이 있는 식자재를 구매하는 거죠.    


산솔 : 좋은 말씀 감사해요. 저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푸드마일이 적은 식자재를 소비하고 원재료를 살린 식사를 하는 것에 더 초점을 둬야겠어요. 그렇다면 피코에서는 어떤 재료들을 사용하나요?     


윤진 : 저도 어쩔 수 없이 배송이 빠른 인터넷몰을 사용하기도 해요. 치즈나 파스타면 등 주로 공산품을 구매하죠. 하지만 농산물은 스튜디오 근처에 있는 두레생협이나 농협하나로마트에서 구매해요. 농협은 전부 국산 제품을 갖추고 식품 이력 나올 뿐더러 생각보다 신기한 식재료도 많이 팔아요. 또한 지역 농부에게서 특이한 채소나 과일을 사기도 하고, 해산물은 산지에서 구매해서 택배로 받기도 해요. 

    

산솔 윤진 님처럼 지역 농부나 어부들과 직접 연락해서 자료를 구매하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만날 기회가 없을 뿐더러 어떤 경로를 통해 구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윤진 님과 관련된 기사 중에 한국슬로푸드협회에서 인턴십을 하는 동안 학생들과 생산자를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프로젝트였는지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시겠어요?     


윤진 : 학생들과 연계를 해줬던 건 아니고, 슬로푸드협회에 가입한 멤버들이 있잖아요. 그중에는 생산자도 있고 일반 소비자도 있어요. 일반 소비자들은 생산자를 직접 접할 기회가 없어서 온라인 네이버 카페에 ‘슬로푸드장터’를 만들고 협회 멤버들을 이 장터에 소개하는 일을 했었어요. 전국 생산자들의 정보를 구글 지도에서 찾을 수 있게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소금을 구매하고 싶다면 어느 지역에 소금이 있는지 검색이 되는 거죠. 가령 ‘신안 천일염을 사겠다’고 생각 했다면 생산자의 정보와 연락처를 연계해주거나 댓글을 달아서 구매할 수 있도록 한 거에요.

한 가지 더 독특한 점은 소금과 같은 유형의 재료를 살 수도 있지만 무형의 인간문화도 교류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공예품 만드는 사람의 만들기 강의, 식초 만드는 법에 대한 강의를 접할 수 있는 거죠. 쉽게 말해 한국슬로푸드협회에서 슬로푸드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양지로 끌어내는 프로젝트예요.

     

산솔 : 소비자에게 정말 유익하고 필요한 시스템이네요. 저도 평소에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이런 플랫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당장 슬로푸드장터에 가입해야겠어요. 제가 듣기로는 이 프로젝트 때문에 곧 슬로푸드의 고향 이탈리아에 가신다고 들었어요.      

 

윤진 맞아요. 이탈리아에서 ‘테라마드레’라는 슬로푸드 축제가 열리는데요. 거기서 이 과업에 대해 발표하게 되었어요. 코로나 기간에 전 세계 슬로푸드협회에서 하는 과업 중 독특한 과업으로 뽑혔다고 하더라구요.         

식탁 커뮤니티가 이뤄지는 FICO의 식탁


#4 모두가 즐거운 식탁 커뮤니티의 꿈

산솔 축하드려요! 슬로푸드 축제에 가서 발표하신다니 무척이나 떨리고 기대될 것 같네요. 다녀와서 테라마드레 축제가 어땠는지 또 이야기해 주세요. 마지막으로 그동안 ‘지윤진’이 공부하며 걸어온 과정을 통해 배운 음식의 중요한 가치나 문화가 있을까요?     


윤진 일단 요리라는 게 불편하지 않고 어렵지 않아야 하는 것 같아요. 요즘은 혼밥도 많고 배달 음식문화도 발달했잖아요. 저는 다 같이 함께 자주 요리하고 앉아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하는 식탁 커뮤니티, 재미, 유희성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제가 추구하는 슬로푸드 또한 우선 음식에 대한 재미, 관심, 걱정이 있어야 실행된다고 생각해요. 요리에 대한 재미와 흥미가 존재해야 좋은 음식에 관심이 생기고 결국 그게 좋고, 깨끗하고, 공정한 슬로푸드에 대한 실천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산솔 윤진님이 추구하는 그런 식탁 커뮤니티가 많아지고 제 주변에도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생기네요. 귀한 시간 내서 윤진 님의 발자취와 슬로푸드에 대한 생각을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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