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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솔 SANSOL Nov 07. 2021

뉴 노멀 시대, 한 달 동안 휴대전화 없이 살기

자본주의 자아와 환경주의 자아의 대결

'21세기 뉴 노멀 시대,

휴대전화 없이 살 수 있을까?'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휴대전화가 켜지지 않았다.
그날부터 한 달, 휴대전화와의 지독한 밀땅이 시작됐다.



#1 사건의 발단

2021년 5월 30일 나의 생일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잠에서 깨 휴대전화를 확인했다. 방전이 된 건지 휴대전화가 꺼져있었다. 충전선을 연결하고 휴대전화를 다시 켜는데 켜지질 않는다.

‘.........?!?!?!?! 설마... 하아... 젠장’

알 수 없는 원인으로 휴대전화가 고장 나 있었다. 생일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지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그도 그럴 것이 2013년에 출시된 아이폰 5s를 사용하고 있었다. 휴대전화의 평균 수명보다 훨씬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던 터라 고장은 늘 염두에 두었지만 막상 고장 나버리니 지출 목록이 추가되면서 고민이 되었다. 자본주의 자아 VS 환경주의 자아의 싸움이 시작이 된 것이다. 낡은 휴대전화를 5년 가까이 사용하면서 이번에 고장이 난다면 정말 좋은 최신형 제품을 사겠노라 다짐했다. 하지만 막상 큰돈을(요금 약정이 싫어서 자급제를 사고자 했기 때문에) 지출할 생각을 하니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았다. 게다가 내 삶의 가치관과 환경문제를 생각하면 중고제품을 사는 것이 옳다. 이렇게 2개의 자아는 거센 충돌을 빚으면서 깊은 고민이 시작되었다.




#2 휴대전화는 어디서 어떻게 오는가

콩고 민주 공화국 북키드 나지센이 광산 지역의 콜탄 광산 / 출처 : Esdras Tsongo


휴대전화 없이 살기로 결심하고 나니 문득 도대체 이 기계는 어디서 오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다. 적당한 비유일지 모르겠으나, 하루에 고작 세 번 먹는 식사를 위해 장을 볼 때도 식재료의 원산지와 제조 성분을 살피면서, 왜 24시간 365일 함께하는 휴대전화에 원료의 원산지에 대해서 꼼꼼히 살펴보지는 않고 디자인과 기능에만 집중해왔을까? 그 사실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에 아차 싶었다.


자원 채굴로 인한 환경파괴

휴대전화를 생산하려면 엄청난 환경, 사회적 비용을 들여 자원을 채굴한다고 한다. 휴대전화 생산에는 금, 은, 알루미늄, 구리, 철, 코발트, 텅스텐, 탄탈룸, 팔라듐 등 약 20여 가지의 자원들이 꼭 필요하다. 이 자원들은 아프리카, 아마존, 러시아, 중국 등에서 생산된다. 특히 필수 중요 부속품인 콜탄과 코발트 공급의 51% 이상 차지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은 내전 중이다. 전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고릴라가 살고 있는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숲을 파괴하고 노동력을 착취하며 자원을 채굴하고 있다.


휴대전화 조립 공장 내부 / 출처 : 팍스넷뉴스 정민정 '베트남 휴대폰 조립사업 성장 주목'


제조와 조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

휴대전화의 성능이 나날이 발전하면서 그 구조는 더욱 복잡해졌다.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대용량 메모리, 압력 장치 변화에 따른 터치스크린과 홍채인식 센서 등 복잡한 기술이 필요한 부품 제조는 한국, 대만, 중국, 일본 기업들이 주도한다. 그리고 그 부품은 브라질, 중국, 인도, 베트남 등으로 운송되어 마지막 조립 단계를 거쳐 전 세계로 판매된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탄소발자국을 남기게 된다. 이산화탄소량의 배출 85~95%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휴대전화 한대를 생산할 때 배출된 탄소의 양은 휴대전화를 약 10년 동안 사용했을 때의 양과 같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휴대전화의 부품은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지고 팔린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작은 지구가 우리 손에 담겨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구가 내 손에 오기까지 발생한 환경 파괴의 주범이 바로 ‘나’인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휴대전화 없이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비록 일시적이지만 한 달 동안 휴대전화 없는 삶을 실천해보기로 다짐했다.




#3 휴대전화 없이 한 달 살기

집에 텔레비전도 없는데 거기에 휴대전화 없이 한 달을 살겠다고 하니 주변에서는 원시인이니, 러다이트(Luddite:20세기 신기술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사람들 혹은 이념)니 하며 내 도전을 의아해했다. 아쉽게도 나에겐 인터넷과 컴퓨터가 있기에 완전한 원시인과 러다이트가 될 수 없다. 개인적으로 휴대전화 없이 한 달 살기를 도전하는 의미를 온전히 실행하려면 인터넷도 없이 살아야 그 취지가 맞을 듯하다만 그 도전은 다음 기회에 다시 시도하기로 하며 한 달간 경험한 느낌 몇 가지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불편한 점 1. 알람

이럴 수가! 휴대폰 없이 살기를 시작하자마자 부딪힌 고민이다. 자명종도 없고 어떻게 일어나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다행히 멀티 오디오에 알람 기능이 있었다. 하지만. 휴대전화처럼 다시 울리는 기능이 없어 끄고 잠들어버린 탓에 회사에 지각을 하고 말았다. 그러고 나니 알람 소리 한 번에도 눈이 번뜩 떠지기 시작했다.


불편한 점 2. 은행 업무 및 개인 정보 인증 불가

코로나 이후로 웬만한 것은 은행 앱으로 처리할 수 있게 바뀌었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컴퓨터로 하거나 은행에 직접 방문해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컴퓨터로 별의별 본인인증 및 모바일 OTP가 필요했고 수도권 외곽 지역에서 차 없이 생활하는 나로서는 은행을 가는 것이 여건상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은행 업무 보기를 포기하게 되고 이체를 해야 할 때는 가끔 도시로 나가는 날 ATM에서 해결했다. 새로운 웹사이트의 회원가입과 국민청원 동의도 모두 본인인증이 필요하기에 지난 한 달 동안 본인인증이 필요한 활동을 모두 멈췄다.


불편한 점 3. 따릉이 사용불가

휴대전화 없이 살다 보니 휴대전화가 얼마나 많은 불평등을 자아내고 있는지 깨닫기 시작했는데 그중 제일 황당했던 불평등이 바로 따릉이다.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사업이라면 어떤 소수의 약자라도 소외시켜서는 안 되는 것이 맞지 않는가? 형편이 되지 않아서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 어린아이, 기계가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 등 소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따릉이를 이용해야 하는 것인지 분통이 터졌다. 시스템을 이렇게 만들려면 서울시 소외계층에게 휴대전화를 사용할 권리를 주고 국가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제도가 생겨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다행히 자전거를 가져온 지인의 전화로 따릉이 빌리기에 성공했지만 혼자 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불편한 점 4. 주변인들의 불편함

내가 받을 연락을 다른 직장동료를 통해 전해받아 난감했다. 또한 친구를 만나면 길을 찾거나 밥 먹을 식당 등을 찾을 때 혼자 가만히 있고 친구가 다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해 괜스레 미안했다.


불편한 점 5. 촬영 및 음성 녹음의 기록 불가

평소 사진이나 동영상을 많이 찍는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기록하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왔을 때 그 순간을 자료로 남기지 못하고 기억 속에만 남겨야 한다.


불편한 점 6. 위급, 응급 상황 대치 및 신고 불가

다행히 한 달 동안 아무 일도 없었지만 늦은 밤 혼자 집에 돌아오는 길을 걷다 보면 무슨 일이 생겨도 신고할 수가 없겠다는 걱정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걸었다. 너무 아파 쓰러져도 119에 전화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겠다고 생각했다.




좋은 점 1. 길거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평소 밖에 나가면 항상 이어폰으로 팟캐스트를 듣거나 음악을 들었다. 귀에서 이어폰을 제거한 뒤 길거리의 소리를 집중하니 잊고 도시에서는 듣기 힘들다고 생각했던 바람에 풀잎이 부딪히는 소리, 귀뚜라미 소리, 도시의 소음 등 다양한 소리를 만날 수 있었다. 가장 즐거웠던 점은 다양한 새소리의 차이점을 발견한 것이다.


좋은 점 2.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

휴대전화로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를 보며 멍을 때리는 대신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별의별 상상력을 발휘하는 시간이 늘었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다 보니 나는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되었고 어떻게 보면 의미 없을 수도 있는 상상을 하며 앞으로 하고 싶은 일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좋은 점 3. 책을 읽게 된다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창밖을 우두커니 바라보거나 책을 읽는 일뿐이었다. 스마트폰이 생기기 전 부모님 세대에는 왜 그렇게 책을 많이 읽고 편지를 쓰며 문학적 감성이 풍부했는지 이해가 가고 공감하게 되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것도 한계가 있어 심심해지면 틈틈이 책을 계속 읽게 된다.


좋은 점 4. 느린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살아남고자 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주린이로서 빠르고 많은 정보들을 습득하며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을 파악해야 하는 것이 정말 힘들고 지칠 때가 있었다. 매일 휴대전화로 뉴스와 수익률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마음이 가뿐하고 머리가 덜 아픈지! 주가가 오르고 내리는 것을 보며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었다. 대신 길을 걸으며 주변 풍경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길을 잃어도 여유를 가지며 길 잃은 그곳을 여행하게 되었다.


좋은 점 5. 계획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휴대전화가 있을 때는 약속 시간과 장소를 명확하게 정하지 않았다. 두루뭉술하고는 하루 전, 혹은 약속시간 몇 시간 전 오늘 약속을 잊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 약속 장소에 가는 중임을 상대방에게 알렸다. 하지만 휴대전화가 없이 약속을 잡으려면 정확한 사전 계획이 필요하다. 엇갈림을 방지하기 위해서 정확한 장소와 시간을 정하고 엇갈릴 때도 대비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습관도 하나 생겼었는데 바로 종이에 장소, 시간, 가는 방법을 메모하는 것이다. 휴대전화가 있었다면 불필요했을 과정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나는 이 과정이 재밌었다.


좋은 점 6.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휴대전화가 없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대중교통에서 하나같이 휴대전화만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 만남 중에도 계속 휴대전화를 확인하는 주변 사람들, 휴대전화가 없으면 업무가 불가능한 직장인들. 중요한 일은 죄다 그 작은 전화기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 모습들이 마치 나의 모습 같아 안타까움을 느끼며 다시 휴대전화를 사더라도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4 자본주의 자아 VS 환경주의 자아 , 승자는?

드디어 한 달간 휴대전화 없이 살기가 끝났다. 결국 자본주의 자아가 이겼다. 주변에서 드디어 휴대전화를 샀냐며 축하를 해줬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대로 된 휴대전화 없이 한 달 살기를 체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휴대전화가 없더라도 집에 인터넷과 컴퓨터가 있어 큰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온전히 휴대전화가 없는 불편함을 느껴보고자 했다면 컴퓨터와 인터넷도 사용하지 말았어야 한다. 가까운 미래에 인터넷 없이 한 달 살기 재도전을 해보고 싶다.

새 휴대전화를 선택하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았다. 하루는 새 휴대전화를 사자 다짐했다가도 다음 날 아침에는 중고 휴대전화를 사기로 다짐하기를 수백 번 반복했다. 다행히 환경주의 자아가 일부 승리하여 용산전자상가에서 중고 휴대전화(아이폰 SE2)를 구매했다. 다만 그것이 나의 선택이라 해야 할지 아니면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사정 때문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충분히 알아보고 가지 않은 탓에 구매한 중고 휴대전화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스스로 옳은 선택을 내렸다는 생각에 매우 기분이 좋다.

문명의 삶으로 돌아왔다. 다시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전처럼 이 작은 기계에 얽매인 채 살아가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휴대전화를 사자마자 밀린 은행 업무, 주식계좌 확인, SNS 게시물 업로드 등 이전과 똑같은 삶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이번 도전을 통해 그 정도를 조정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참조 : 『고릴라는 핸드폰을 미워해』(박경화,북센스)

           <그 많은 스마트폰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을까?>그린피스

           <스마트폰이 지구의 건강을 해친다?디지털 탄소발자국>GS칼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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