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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리콜라주 Jun 25. 2022

닭은 왜 멸종되지 않나?

날지 못하는 새의 생존, 그 섬뜩한 이유..

의학의 발달과 생활 수준의 향상 그리고 지식의 엄청난 보급은 이미 통제하기 어려운 수로 증가한 인류의 수명을 더더욱 늘리고 있고, 그로 인하여 지구는 온통 고통을 당하고 있다. 편하고 안락한 삶을 위한 인류의 욕심은 지구의 온도를 계속하여 높이고 있으며 그 결과는 자연재해, 그리고 '자원의 고갈'이다.


원래 '자원'이라는 말 자체가 인류의 교만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예전에는 그저 생태 시스템의 구성원으로서 '자원'의 일부였던 인류가 불을 가지게 되고, 집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기술과 지식을 언어로서 나누게 됨으로 인해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자연계에 군림하게 된 것이다. 


신에 필적한 능력을 가지게 되었지만 정작 신의 자질은 갖추지 못한 인류는 수많은 생물 종(species)들을 어려움에 빠트렸다. 그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기고, 그다지 필수적이지 않은 인류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사냥을 당한다. 게다가 인류의 욕심에 기인한 자연재해로 몰살까지 당하면서 많은 종류가 지구 상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21세기에만 해도 수많은 종들이 지구 상에서 사라졌으며(아래 참조), 지금도 벵갈 호랑이 (Bengal Tiger), 아프리카 치타 (African Cheetah), 자이언트 판다 (Giant Panda), 바다거북 (Sea Turtle)와 같은 동물들이 멸종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21세기에 멸종된 대표적인 동물들 (좌상단 부터 시계방향으로: 양쯔강 돌고래, 서부 검은 코뿔소, 피레네 아이벡스, 핀타섬 땅거북)

그런데, 이렇게 멸종된 동물들의 특징은 무엇일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두 가지가 생각이 난다. 첫째 인류와 경쟁의 위치에 있는 동물들이거나, 둘째 인류에게 효용가치가 있지만 '순응하지 않는 (가축이 되기 어려운) 종류'라는 것이다. 벵갈 호랑이나 아프리카 치타는 전자에 해당할 것이고, 코뿔소나 바다거북 등은 후자에 해당할 것이다. 


반면 우리가 가장 친근한 소, 돼지, 양, 닭 등은 전 세계적으로 번성하고 있다. 아마도 이 동물들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멸종될 일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위험하지 않고, 쉽게 그리고 가장 적은 돈과 노력을 들여 인류에게 필요한 물질과 영양소를 제공하는 동물들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특별히 닭이라는 동물에 주목하고 싶다. 닭은 새인데 왜 이런 처지가 되었을까? 즉, 닭은 언제부터 날지 못하게 되었을까? 원래 날지 못하는 종이었나? 그러나 'the flying chicken'이라는 검색어로 찾아보면 제법 먼 거리를 날 수 있는 닭도 있다는 것을 쉬이 발견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닭은 인류와 지내는 것이 편하고 행복하여 그렇게 적응이 된 것일까? 마치 들개와 야생 고양이가 인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개와 고양이와 닭의 처지는 너무도 다르다. 오히려, 멸종을 당하는 어떤 동물보다도 오히려 가장 참혹한 인생을 사는 것이 바로 이 닭이다! 

닭은 한국에서만 1년에 10억 마리가 '소비' 된다고 한다. 2015년 기준 한국인의 1인당 닭 소비량은 12.6kg, 삼계탕용 닭 기준 1년에 21마리 정도 수준이라고 하니 정말 엄청난 숫자이다.(출처: 중앙일보)

또한 치킨으로 소비되는 닭의 평균 수명은 35일이라고 한다. 35일!! 닭의 원래 수명이 20년~30년이라고 하니 사람으로 따지면, 태어난 지 3달 만에 누군가의 입으로 들어가기 위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내가 닭이라고 생각해보니 소름이 돋고 치가 떨린다.


종(species)의 스케일로 보면 '영원히 멸종하지 않는' 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개별 개체로 볼 때는 최악의 생을 살고 있다. 이러느니 멸종되는 것이 오히려 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는 끊길 수 있어도 자기 인생을 살다 스러지는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거니깐..


필자는 비교적 안전하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서, 남들 한다는 것은 다 겪고, 해보는 인생을 살고 있다. 문득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과연 나는 닭인가? 멸종 위기의 독수리인가? 


나 스스로는 치열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스스로 나는 방법을 잊은 채 누군가의 입을 즐겁게 하고 배를 채워주기 위해 사육되고 희생되는 닭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순간 매트릭스의 명장면이 떠오른다.  

Neo : What truth?

Morpheus : That you are a slave, Neo. Like everyone else you were born into bondage. Into a prison that you cannot taste or see or touch. A prison for your mind.

이번 주말엔 매트릭스와 치맥이나 한잔 때리며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을 해봐야겠다. 독자분들도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시길... Chicken? Or something else?


끄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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